신자유주의 대표 정책인 민영화(privatization)는 국가 소유의 기업이나 자산을 민간자본에 넘겨주거나 공공서비스를 영리목적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런 민영화는 그 자체로 자본의 이윤 확대를 목표로 하면서도 국민에 대한 거대자본의 수탈적 성격 때문에 거센 저항을 받아 왔다. 국가는 공적 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하게 제공했지만 민영화 후에 자본은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또한 민영화는 수익구조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노동력을 축소해 노동자를 일터에서 내쫓고 노동 강도를 강화했다. 설사 노동력을 축소하지 않더라도 수익성 개선을 위해 요금을 인상했다. 대다수 민영화는 요금 폭등, 서비스 제공 범위와 질의 축소를 불러와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반발을 일으켰다.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인 민영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벌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고 정부 부채를 줄인다는 명분하에 대다수 알짜 공기업들을 민영화했다. 은행과 금융기관을 비롯해 포항제철, 한국통신,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전력 등 기간산업을 담당하던 공기업, 국유기업들을 줄줄이 민영화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 등 소유권 매각 중심의 민영화도 있었지만 양적으로는 상당수 줄어들었다. 하지만 공기업 운영을 이윤 중심으로 바꾸고 외주, 하청을 대폭 늘리면서 공공서비스 자체를 영리화 하는 방식으로 민영화가 이뤄졌다. 이러한 민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계속 유지됐다. 심지어 촛불혁명 정부라고 하는 문재인 정부도 민영화를 오히려 더 확장했다. 20년 전에는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민영화가 이뤄졌다면 지금은 ‘혁신’과 ‘(공적자금)환수’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민영화로는 첫째, 최근 불거진 국유기업 대우조선의 매각인 대우조선 민영화, 둘째, 우리은행 완전 민영화와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셋째,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한 에너지 산업 민영화, 넷째, 병원 지주회사 설립 등 의료 민영화, 다섯째, 공공기관과 사기업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개인정보 민영화’를 들 수 있다. 영역별로 살펴보면 국유기업, 은행, 에너지, 의료, 데이터 등 우리 사회 주요영역에서 민영화가 계속되고 있다.
국유기업 대우조선 민영화
지난 3월 8일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인수합병하는 본 계약을 체결했다.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의 중간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들어가고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주식 대신에 현대중공업 중간지주회사의 주식을 받는다. 대우조선 합병은 현재 3사 체제인 조선업종의 과잉경쟁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조선업종 불황 속에서 3사는 도크를 줄이고 규모를 축소했다. 하청노동자 10만여 명을 해고했고 정규직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지속해 왔다. 대우조선은 최근 2년 동안 수주량도 늘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다. 오히려 현대중공업보다 수주량이나 영업이익도 더 많이 남겼다. 현재 상황에서 무리하게 합병까지 하면서 과잉경쟁을 해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대신 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정몽준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에 올라설 수 없도록 했다. 산업은행의 현대중공업 주식 처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고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 거래가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 변동 등을 초래하는 거래는 금지됐다. 다시 말하면, 정몽준 일가의 경영권을 확실히 보장해 주는 가운데, 13조 원 가까이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을 2조7000억 원의 현대중공업 중간지주 회사의 주식을 받고 대우조선을 넘겨 준 것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7조 원이 넘고 출자전환, 영구채 발행을 포함하면 10조3000억 원이다. 이번 유상증자와 자금 지원으로 2조5000억 원이 추가되면 12조8000억 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이번 합병으로 추가 투자하는 자금은 고작 4천억에서 6천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산업은행의 이번 매각은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을 갈아치우는 식이라 산술적으로 따지면 10조 원 손해를 보면서 대우조선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정몽준 일가에 모두 넘긴 것이다.
우리은행 완전 민영화와 은산분리 완화
우리은행의 모체는 상업은행으로 국책은행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상업은행은 한일은행과 합병하면서 민영화 됐고 다시 부실이 심각해져 국가소유 은행으로 전환됐다. 그러다 박근혜 탄핵 촛불이 한창 타오르던 2016년 11월 정부는 IMM PE와 한국투자증권·한화생명·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과점주주에 지분 27.22%를 매각해 일부 민영화했다. 그럼에도 현재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 주식 18.4%를 보유하고 있고 과점주주는 각각 5% 내외의 주식을 갖고 있어 정부가 사실상 최대주주다. 국민연금도 우리은행 주식 9.29%를 갖고 있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우리은행의 완전한 민영화 즉, 예금보험공사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민영화에 들어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조속한 시일 내에 예보가 보유하고 있는 잔여지분을 매각해 우리금융의 완전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 참석해 “금융분야와 신산업의 혁신성장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새로운 물줄기가 될 것”이라며 인터넷 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천명했다. 이후 국회에서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상한을 기존 은행법 기준인 10%(의결권 있는 주식은 4%)에서 34%로 높인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이 통과됐다. 이로써 K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의 산업자본 소유가 가능해졌다.
재생에너지를 빌미로 한 에너지 산업 민영화
기존 발전소 민영화는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됐다. 5개 화력발전소와 1개의 원자력 발전소로 분리됐지만 어찌됐든 완전 민영화는 아닌 형태로 유지됐다. 그러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발전소의 정비·운영 부문을 민영화했는데, 발전소 정비·운영을 독점하던 한전KPS의 신규 수주물량을 민간부문에 넘겼고 외주, 하청 형태로 운영했다. 그러다 올해 초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발전소 민영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민영화 계획이 재검토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분야는 모르지만 적어도 에너지에서는 민영화가 사그라들고 다시 공영화, 국유화 되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그런데, 에너지 전체 부문을 보면 민영화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원전은 물론이고 석탄 화력 발전 비중도 줄일 계획인데, 기존 발전을 대체하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대규모 민영화 된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태양광 사업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25GW(기가와트) 태양광 설비를 새로 깔 계획이다. 이미 지상 태양광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농지와 임야 구분 없이 시설이 지어졌고 이 때문에 토사 유출과 환경파괴 등의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수상 태양광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전국 저수지 3400곳 중 900여 곳에 4GW, 새만금 간척지 내에 2.4GW가 예정돼 있다. 태양광 패널 2300만 장이 전국 저수지와 댐 등에 깔린다. 이 태양광 패널 설치는 지역주민이나 공공기관 외에 민간기업의 투자유치 형식으로 깔린다. 새만금 태양광에는 전체 약 2/3에 해당하는 1.5GW가 민간기업에 배정돼 있다.
국내에서 500메가와트(MW) 이상 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들은 총 발전량 중 일정 비율을 태양광 등 신재생 설비를 통해 공급해야 한다.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뿐 아니라 SK, GS, 포스코 등 21개사가 해당된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지역 주민과 공공기관이 일부 참여하지만 사실상 에너지 재벌기업들(여기에 발전사업자뿐 아니라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한화큐셀 등도 포함된다)의 밥그릇으로 채워지고 있다. 기업이 시설투자를 일부 했어도 한전에 도매로 넘기는 전력에 원가를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로 돌아갈 전망이다.
병원 기술지주회사 설립과 의료 민영화
지난해 7월 정부는 병원과 합작해 돈벌이에 나설 수 있는 산병(산업체 병원)협력단과 병원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보건의료 단체 등은 병원 기술지주회사가 설립되면 의약품·의료기기 자회사도 허용되고 병원은 자회사의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더 많이 처방·판매하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사실상 영리 목적의 사업이 가능해져 의료 공공성을 해치는 민영화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연구개발 중인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시험을 손쉽게 해 비용을 들이지도 않고 이를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루트가 허용된다.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에게는 인체시험에 해당하는 수십억의 비용절감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곧 환자에게 검증되지 않은 치료기술의 위험성과 비용을 전가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약탈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권조차 이런 사회적 비난을 우려해 병원 기술지주회사와 산병협력 정책은 추진하지 못했다.
삼성은 의료기기 사업이 병원 등 대상 간 사업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엑스레이, 모바일, CT, 체외진단기기 등을 생산하는 의료기기사업부를 독립해 별도 사업 확장을 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은 자회사 삼성메디슨과 함께 삼성 의료기기사업부를 삼성의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병원의 의료기술지주회사 허용은 ‘삼성헬스케어’에서 추진하고 있는 ‘삼성의료원-삼성의료기기자회사-삼성메디슨’이 자회사로 연결되는 구조를 허용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개인정보 민영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 활용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대통령이 수용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개인정보를 익명정보와 가명정보로 나누고 가명정보의 비식별처리를 통해 연구 목적 등에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는 새로운 기술, 제품, 서비스 개발 등 상업적 목적도 포함된다. 이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와, 사기업이 이런 저런 이유로 보유한 개인정보들을 정보주체인 국민들의 동의없이 상호 결합하여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영리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동안 국회가 공전되면서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이 법률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민 고유번호제도인 주민등록번호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개인정보의 거의 모든 것이 식별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정보의 상업적 이용에 대한 우려는 매우 크다. 금융정보와 의료정보를 포함해 각종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일부 비식별 처리되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해 손쉽게 재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의 매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렇게 생성된 개인정보의 대량 유출 사고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빅데이터 대기업들의 이윤확보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민영화의 이유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이유로 국유기업이나 국유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정부 재정은 흑자였다. 걷은 세금을 다 쓰지도 못하고 남겼다. 공적자금을 무리하게 회수하지 않는다고 사라질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대우조선과 우리은행을 민영화하려 했다. 최근 대우조선 매각은 이런 명분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매각은 그저 주식을 바꿔치기 하는 것으로, 공적자금 회수와도 관련이 없고 오직 현대중공업 총수 일가에게 한국의 조선업 전체를 내주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이처럼 민영화는 공적자금 회수 또는 ‘혁신’을 위한다는 명분을 말하지만 재벌에게 국가의 자원을 헌납하는 것과 같다. 우리은행 민영화와 인터넷 은행 산업자본 참여 확대에 대해서도 이것을 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에서는 재벌 외에는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에너지 민영화도 대기업들로 이뤄진 민간 발전사들의 돈벌이 수단을 확대시켜 주는 것이며, 의료민영화는 삼성 그룹의 신수종 사업 확대와 맞물려서 진행하고 있다. 개인정보와 공공데이터 민간 활용(민영화)도 가장 반기는 곳이 개인정보를 가장 많이 다루는 SK 같은 통신재벌이나 삼성생명 같은 재벌 보험사들이다. 소득주도 성장, 노동 존중의 사회는 어디가고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이 들어섰다. 재벌 적폐 청산은 끝났고 이제는 노골적인 재벌 프렌들리에 나선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