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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빼앗긴 노동자에게 미래는 없다

2016년 4월 21일Leave a comment시평By 김용욱

양규헌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의장을 역임했고, 현재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확산된 민주노조 운동은 노동 해방 쟁취를 내걸었던 전노협과 민주노총을 거치며 한국노총과는 다른 전국 중앙 조직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형식적으로는 산업별 노동조합이 완성되어 계급적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허약한 모습이 반복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은 잃어버린 언어가 되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양적 발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운동의 기풍과 역사성 계승은 요원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고 한다. 위기의 원인과 이유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노동조합 집행부의 관료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질화, 조직화의 한계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의 진단과 평가들이 반복되어 제출되고 있다.

민주노조 운동 30년이 경과한 오늘, 무엇이 달라졌을까. 노동자 정치가 실종 상태에 놓였는데 ‘야권 통합과 연대’는 고장 난 레코드판이 되어 수십 년간 귓가를 윙윙거리고 있다. 노동자를 억압하는 보수 여당의 품에 안기는 소위 노동 귀족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자 대중을 팔아 입신 출세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한국노총 출신들만 나무랄 문제는 아니다. 민주노총 출신 일부의 정치적 행보 또한 보수 야당에 빨대를 꽂아 대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새롭게 노동운동에 신념을 갖고 운동사를 공부하려는 동지들에게는 참으로 민망하다.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를 향한 행위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암담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밑으로부터 파괴된 노동자 문화

인간의 삶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상호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영역 중에 사회적으로 도외시되거나 의미를 축소시키는 영역이 문화다. 명사 뒤에 문화만 붙이면 다 문화가 되는 꼴이다. 음식 문화, 항공 문화 등 삶의 행태 뒤에 무조건 문화를 붙이면 문화가 되는가? 문화와 문명은 다르다. 문화는 인간이 이룬 정신적 영역이고 문명은 과학 발달 등 물질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래서 문화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문화에는 지배 계급의 문화가 있고,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존재한다.

지배 계급의 문화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이나 발전보다는 ‘경제적 부가 가치 창출’에만 주목한다. 나아가 문화 산업에 대한 과도한 편중은 경제 인구와 시장 및 자본의 크기에 의해 싸움이 판가름 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특성상 ‘약육강식’의 악순환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된다. 자본이 강조하는 대중 문화 산업은 방송 매체, 음반 시장, 인터넷 매체를 통해 개인 욕망을 충족시켜 왔다. 반면, 노동자란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하고, 노동력을 판매해 살아가는 존재다. 노동자들의 문화는 경쟁, 차별, 소외, 착취, 소비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문화와는 달리, 공동체성, 투쟁성, 주체성, 생산성 등의 속성이 있다. 따라서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문화는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문화의 대립은 ‘문화 전쟁’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자신의 문화를 잃어버린 계급은 타 계급에 종속된다’는 말은 진리이다. 내부가 속절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이윤 추구와 동시에 노동자를 통제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갖고 있다. 이 중에 가장 비중 있고 위력적인 무기는 공권력을 앞세운 총칼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문화를 들이대며 노동자 민중의 문화를 없애는 것이다. 자본주의 소비 문화, 이것은 노동자 민중의 삶과 아무런 관계없는 문화적 가치들을 상품화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가 계급을 위한 문화 정책의 표본이다. 이를 통한 이데올로기 공세와 문화의 시장경제화는 전 국민으로부터 노동자를 문화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를 낳으며, 노동조합 조직 속에서 커 나가고 있는 노동자 문화의 싹을 밑으로부터 파괴한다.

민주노조 운동 정신, 노동자 문화 통해 싹틔워

민주노조 운동이 열기를 더하며 확산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를 앞세운 노동자 문화다. 노동 문화를 통해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확인해 왔고, 노동자 문화를 통해 노동자의 동질성과 계급성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 문화를 통해 현장을 조직했으며 노동 문화를 앞세워 투쟁의 장을 열기도 했다. 노동 문화라는 매개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투쟁 전략과 전술을 생산해 냈으며 노동자 대중을 조직적으로 결속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노동자 문화가 안 보인다. 지배 계급의 문화에 노동자 문화가 잠식당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자주, 민주, 투쟁, 계급, 변혁 지향성)도 빛을 잃어 간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문화 정책을 연구 개발하여 문화 신상품을 출시함으로써 노동자를 포섭과 배제의 대상으로 분할·관리하는 데 성과를 거뒀다. 또한 노동 현장의 분위기를 달궜던 노동자 문화를 각 지역의 지자체나 문화 공간을 통해 앗아 갔다. 결국 노동자를 자본의 따까리로 분류하고 통제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의식은 불순한 것, 빨갱이로 규정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문화 정책은 연구 개발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잃어 가고 있다. 노동자 문화는 소위 ‘딴따라’나 놀이가 아니라 의식을 생산하고 조직을 추스르며 대중을 조직하는 매개다. 때문에 어떤 조직 사업과 투쟁도 노동자 문화에 대한 뒷받침 없이는 성과를 모아 내기 어렵다. 노동 문화 운동 속에 노동자 의식이 있으며 노동 문화 속에 노동운동의 미래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위기로 표현되는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와 노동자 문화 운동의 후퇴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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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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