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보다 감옥이 안전한 시대의 병역 거부 운동
명숙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활동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해외 파병 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흥행했다. 잘생긴 남자 배우의 얼굴, 화려한 전투 장면 등으로 사람들은 군대 – 전쟁 – 살인을 떠올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전쟁과 군대를 수용했다. 사람들은 2003년 11월 이라크에 파병된 현역 이등병 강철민 씨가 병역 거부를 선언했던 일도 지워 버렸다. 강철민은 군대가 “침략 전쟁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내고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그의 행위는 모든 전쟁과 군대를 거부하는 완전 거부는 아니지만 특정 전쟁이나 행위를 거부하는 ‘선택적 병역 거부’였다. 서구에서 병역 거부는 처음에 총을 드는 것을 거부하는 행동에서 시작했다가 군사 훈련 일반을 거부하고, 현재는 군사적 목적과 관련된 활동을 거부하는 행위로 넓어졌다. 병역 거부의 역사는 전쟁과 군대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병역 거부 운동, 대중을 만나다
유럽에서 병역 거부가 평화주의에서 종교적, 정치적 신념으로 확대되어 왔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 병역 거부를 이어 온 것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그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전쟁과 전쟁 준비를 위한 모든 일을 거부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들의 신념을 듣지 않고 종교적 배경만 보았다. 병역 거부가 지향하는 전쟁 반대와 평화의 메시지는 듣지 않았다. 병역 거부가 봇물 터지듯 선언되고 사회적 수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12월 불교 신자였던 오태양 씨가 공개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면서부터다.
“여호와의 증인 중 1만 명 이상이 병역 거부로 수감됐지만 인권운동에서조차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그러다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오태양 씨가 병역 거부를 하면서 시민의 지지를 모을 수 있었죠. 그래서 2002년 2월 여러 인권 단체들이 모여 ‘병역거부연대회의’를 만들 수 있었던 거고요.”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에 따르면 ‘병역거부연대회의’를 만들고도 병역 거부에 대한 운동 사회 내의 편견은 여전했다. “제가 대학생일 때, 병역 거부 인정 및 대체 복무제 마련 10만인 서명을 받으러 민주노총 집회에 갔는데 노조원들이 남자라면 군대 갔다 와야지 하며 서명을 안 하는 분도 있었어요. 좀 점잖게 얘기하시는 분들은 군대 갔다 와서 이런 거 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조언하기도 하고.”
당시 병역 거부 운동은 운동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병역 거부를 설득하는 언어도 온건했다.
“‘군대를 없애자는 게 아니다’, ‘사회를 뒤집자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했죠. 병역 거부 소견서에도 꼭 ‘대체 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어갔어요. 징병제든 모병제든, 운동으로서 병역 거부는 군사주의를 약화시키고 군대를 축소시키는 것인데 당시에는 ‘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러니 대체 복무제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했죠.”
군사주의 반대와 평화운동으로
2003년 5월 15일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가 생겼다. 병역 거부 공부도 하고 가족 간 갈등을 어떻게 풀까 고민을 나누던 병역 거부자 비공개 모임이 주축이었다. 여러 인권 단체들이 병역 거부 운동도 하고 있는데 병역 거부자들이 직접 나서서 활동하자는 생각이었다. ‘전쟁없는세상’이 중심이 되어 병역 거부 운동을 활발히 벌였고, 그 결과 2005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대체 복무제를 허용하라고 정부에 권고한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2007년 대체 복무제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국방부는 여론 조사를 들먹이며 대체 복무제 시행 약속을 뒤집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징병제가 아니거나 이미 대체 복무제를 시행하고 있어 대체 복무제는 급진적 요구가 아니지만 한국은 이 벽을 넘기가 어렵다.
“일단 대체 복무제가 빨리 시행되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사회의 병영 국가화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 군대를 가야 하는 사회에서 군대를 안 갈 수도 있는 사회로 바뀐다면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도 변화의 틈이 생기잖아요. 제도 변화가 없다 보니 병역 거부 운동이 쳇바퀴만 돌다 미궁에 빠진 느낌이에요. 병역 거부자들을 비국민으로 두지 말라는 요구에서 나아가 평화운동으로 더 다가갔으면 해요.”
최근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는 과거보다 개인적이고 솔직하다. 개인적인 경험과 두려움을 말한다. 병역 거부 이유도 페미니스트이거나 크리스천, 성소수자 등 다양하다. 특히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이나 용산 철거민 참사와 같은 국가 폭력을 보며 병역 거부를 하게 됐다고도 적는다.
“병역 거부의 계기를 만드는 건 국가죠. 국가 폭력이 존재하는 한 병역 거부는 계속될 거예요. 윤 일병 구타 사건 같은 뉴스가 나오면 엄마한테 전화가 와요. 군대 안 가고 병역 거부 하길 잘했다고. 씁쓸한 얘기지만 예전에는 병역 거부를 하면 짊어져야 할 위험이 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감옥 가서 취업 선택의 제한이 생기기 전에 실업이 만연하고, 감옥 가서 죽을 확률보다 군대 가서 죽을 확률이 훨씬 더 높잖아요. 슬프지만 살기 위해서 병역 거부를 해야 하는 세상인 거죠. 최근 병역 거부자들은 나약함이 어떻게 평화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나약하고 겁쟁이이기 때문에 폭력에 민감하고 그에 저항할 수 있는 거라고 봐요. 원래 용기라는 게 나약함과 두려움이 없다면 생기기 어렵잖아요.”
‘전쟁없는세상’은 단체의 목적과 지향을 분명히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병역 거부 외에도 비폭력 직접 행동, 무기 거래 감시 운동을 하며 평화운동 단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병역 거부 운동은 개인적이고 개량적인 운동이지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운동이라고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시대, 나약함이 운동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워커스 6호. 20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