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솔 기자
강남역 주변. 도로변의 풍경이 기이하다.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한쪽 노점상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구의 작품일까. 힌트는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행정 구역이 나뉜다는 사실에 있다. 한강 방면을 바라보고 서면 왼쪽이 서초구, 오른쪽이 강남구다. 서초구 노점상도, 강남구 노점상도 다 같은 노점상이지만 10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강남구쪽 노점상은 쫓겨났다.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노점상들의 운명이 갈린 것이다.
강남구청은 재작년 10월부터 용역 직원을 동원해 노점을 철거했다. 3개월 만에 수십 개 노점상을 부수고 물건을 압수했다. 노점상 단속은 2011년부터 강남구의 역점 사업 중 하나였다. 일명 ‘선진 시민 의식 정착 운동’은 강남구가 정한 5대 불법 무질서 행위(불법 광고물, 불법 노점 및 쓰레기 무단 투기, 불법 주정차, 불법 건축물, 불법 퇴폐 업소)를 추방해 깨끗한 거리 질서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특히 도시 미관을 강조하며 ‘시민은 노점상을 불법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홍보했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은 불법 광고와 무단 투기 쓰레기, 퇴폐 업소 등과 함께 추방돼야 할 것으로 취급됐다. 노점 상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나왔다고 외쳤지만 기업형 노점, 세금 도둑 이미지가 계속 덧씌워졌다. 전국 노점상 80%가 차상위 계층이라는 통계도, 세금을 내고 장사하고 싶다는 이들의 주장도 힘이 없었다. 생존권은 보행권과 도시 미관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들 길에서 일하고 싶을까. 더울 땐 더 덥고, 추울 땐 더 추운 게 길 위다. 삶에서 삐끗해 내려오고, 내려오다 결국 찾는 곳이 노점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노점이 많아졌다. 사람을 내몬 자리엔 시민을 위해 만들었다는 돌 화단과 원형 의자가 놓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를 맴도는 노점 상인들이 있다. 나이가 많아 취직이 어렵고, 다른 곳에 노점을 펴기도 어렵다. 그리고 여전히 삶의 터전이었던 강남, 바로 그곳에서 다시 장사하고 싶어 한다.
떳떳하게 허가받고 세금 내면서, 언제 뺏기고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장사할 순 없을까? 외국 손님들이 왔다고 밀리고, 철거당하지 않고 장사할 순 없을까? ‘위클리매드코리아’는 노점상에 도전하기로 했다. 기자와 윤지연 기자가 강남대로로 나섰다. 《워커스》 과월호와 헌책 등을 팔기로 했다. 성인 2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돗자리와 팔 물건, 손으로 쓴 가격표를 들고 강남역으로 출발했다.
노점 시작 9분 만에 나타난 단속반
대형 쇼핑몰에서 귀걸이도 팔아 보고, 마트에서 면도기도 팔아 봤다. 남의 물건 아닌 내 물건을 팔면 좀 더 의욕적으로 팔지 않을까 생각했다. 4월 20일 수요일 오후 4시 45분, 자신 있게 개시한 첫 노점. 1제곱미터의 작은 노점이었지만 주위에 노점이 딱 하나여서 그랬는지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문제는 날씨였다. 분무기로 뿌리듯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기 시작했다. 노점에 관심을 줄 여지도 없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리를 편 지 30분 만에 장사를 접어야 했다. 매상은 4천 원.
4월 23일 토요일 오전 11시, 다시 한 번 노점을 개시했다. 물건을 늘리기로 해서 헌 옷도 가져오고 첫날보다 자리도 더 늘렸다. 그런데 9분 만에 강남구청 소속 용역 직원들이 나타났다. 2명의 용역 직원은 노점상 단속반으로 강남대로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강남대로 주변에선 홍보나 판매 행위 모두 금지예요. 여기서 상행위를 하게 되면 저희가 수거해야 합니다. 다 치워 주세요.” 근거를 묻자 용역 직원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도로법> 74조에 따라 장사는 무조건 안 됩니다. 지금 무단 판매 행위를 하고 계시잖아요?” 도로 맞은편에서 핸드폰 케이스 등을 팔고 있는 노점상을 가리키며 도로법이 왜 여기에만 적용되는지 물었다. 생각나는 대로 명동 노점상까지 물고 들었다. 본인들은 강남구 직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와중에 헌책을 사 가는 손님이 있었다. 용역과 대치 중인 모습을 보고 “길 건너 서초구 쪽은 많이 오픈하고 있던데. 강남구청은 다 막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경기 촌년인 난 강남이나 서초나 다 같은 강남 아니냐고 물었다. 손님은 말했다. “강남엔 강남구청장이 있잖아.” 무슨 뜻인지 추가 질문을 할 시간도 없이 손님은 떠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우리는 당황했다. 이렇게 빨리 알아챌 수 있나 싶었다. 짐을 주섬주섬 챙겨 뒤쪽 골목으로 올라갔다. 용역 직원들이 곧 올라왔다. 자리 펼 곳을 찾지 못하고 결국 철수했다.
‘올 게 왔구나’… 도로법을 근거로 한 강제 집행
4월 25일 월요일 오후 6시 20분, 세 번째 노점을 시작했다. 물건을 차려 놓기 무섭게 첫 마수걸이를 했다. 헌책, 헌 옷을 각각 천 원에 팔았다. 윤지연 기자가 소싯적 입던 옷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한 손님은 어머니 옷을 가져왔냐고 묻기도 했지만 강남 멋쟁이들이 두세 개씩 집어간 맵시 있는 옷들이었다. 만족한 얼굴로 물건을 사 가는 손님을 보면 진짜 노점상이 된 것처럼 잠깐 행복했다. “여행 다니는 분들이세요?” “1000원이래. 하나 사고 싶은데 뭘 사야 하죠?” 흥미로운 눈을 하고 사람들이 다가왔다. 물건 10개 정도가 30분 만에 나갔다. 우릴 걱정해 주는 시민도 있었다. 강남역에서 노점상 강제 철거를 목격해 본 사람들이었다. 한 중년 여성은 “대로 옆에 있으면 단속반이 곧 잡아간다”며 노점 하기 좋은 장소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저 윗 골목 ㅅ편의점 옆에 구석진 데가 있거든. 사람은 여기보다 더 많이 지나가. 거기로 빨리 옮겨요.”
그렇게 드문드문 손님을 받으며 두 시간을 보냈다. 텅 비어 있을 때가 많은 돌 화단 원형 의자에 앉아 쉴 때 노점상 단속 용역 직원 2명이 다가왔다. 주말에 봤던 그 직원들은 아니었다. 우리와 물건을 한번 쓱 보더니 빨리 치우라고 말했다. “여기 옛날에 노점 많았던 거 아세요? 그거 다 철거됐어요.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하기 시작하면 그분들 다시 나와요. 그럼 책임지실 거예요?” 이유를 물으면서 머뭇대자 계속 쏘아붙였다. 사정도 해 봤다. “이 자리 요만큼만 쓰면 안 될까요?” 용역 직원은 돈 얘기를 꺼낸다. “혹시 여기 현수막 걸려 있는 거 보셨나요? 이만큼이든 요만큼이든, 2천만 원 벌금 낼 수 있어요.”
실제 강남역 현수막엔 간담이 서늘해지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이 지역(강남대로)은 불법 노점 특별 금지 구역으로 불법 노점 행위 즉시 강제 정비와 동시 과태료가 부과(150만 원 이하)되며 형사 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됩니다” 관계 법령도 적혀 있다. <도로법> 제74조(행정대집행 특례), 제114조(벌칙), 제117조(과태료)에 의해서란다. 과태료나 벌금이나 노점상에겐 막대한 돈이다. 2010년 도로법 시행령 개정으로 ‘과태료의 부가 기준’ 조항(제74조)이 신설되면서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물건 등을 도로에 일시 적치한 경우”에 해당하는 노점상은 위반 1회당 15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당시 기존 과태료가 7~30만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많게는 스무 배 이상 인상된 금액이다.
30분 뒤 강남구청 건설관리과 가로정비팀 공무원이 도착했다. 공무원은 계도 시간을 충분히 드렸다며 아까 그 용역 직원들에게 물건 압수를 지시했다. 그리고 압수 전과 후를 사진으로 남겼다. 뺏긴 물건은 14일이 지나고 15일째 되는 날 구청에 와서 찾으라고 했다. 단, 물건을 찾으려면 1제곱미터당 십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뺏긴 물건이 고가가 아니라면 찾는 데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
노점상 단속반은 24시간 운영한다. 두 명씩 조를 짜 돌아다니는 듯했는데 이미 두 팀에 걸렸다. 초짜 노점상이 온다는 사실이 이미 그들 사이에 공유됐는지 우리 물건을 수거한 용역 직원은 “주말에도 왔었죠?”라고 물었다. 이제 한 번 더 노점을 차리면 경고도 없이 수거당할 것 같았다. 주임은 그 자리를 떠나며 이의 신청은 건설관리과로 하라고 했다. 사실 노점 상인들이 노점상 문제를 직접 대면해 논의하고 싶은 사람은 신연희 강남구청장이다. SNS 댓글에 하나하나 답변을 달아 주는 소통력을 보이고 있지만 노점상에 대해선 어떤 창구도 열어 놓지 않았다. ‘불법 노점은 철거 대상’이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지난해 13만 명이 결집한 민중 총궐기를 이끈 민중 총궐기 본부와 민주노총은 강남구청을 5적 중 하나로 선정했다. 5적은 민생과 민주주의 파괴 주범이다. 강남구청 외에 청와대, 전국경제인연합회, 국회, 새누리당이 함께 꼽혔다. 지방 자치 단체 중 강남구가 특별히 거론된 것은 노점상 탄압 등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철거된 노점상들과 총궐기 본부, 민주노총은 노점상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강남구청 앞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고 했다. 이들은 항의 서한을 들고 구청을 찾았지만 구청장은 자리에 없었고, 셔터도 닫혀 있었다. 굳게 내려진 셔터가 신 구청장의 태도 같다고 생각했다. 철거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어떤 말도 차단하는 태도.
강남은 정말 ‘강남 특별 자치구’로 등극할까
‘강남 특별 자치구’는 지난해 10월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처음 꺼낸 말이다. 당시 강남구는 서울시와 한전 부지 개발에 따른 공공 기여금 사용처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신 구청장은 박원순 시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한전 부지 개발에 강남구가 참여하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차라리 강남구를 서울시에서 추방시켜 달라”고 했다.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속마음은 확인한 셈이다.
올해 2월엔 노점 금지 구역을 추가 지정했다. 구청장 지시는 법이 된다. 기존 금지 구역인 테헤란로 외에 강남대로, 압구정로, 수서역, 양재역, 선릉역 등 5개 구간을 ‘불법 노점 특별 금지 구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이 지역은 단속을 더 강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노점상에 대한 해법은 강제 철거만 있는 게 아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이익을 누릴 방법이 이미 논의되고 있다. 송영균은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논문 당선작인 <노점상의 인권적 권리 구제방안에 대한 연구>에서 노점에 대한 양성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13년, 서울만 8000개가 넘는 노점상이 집계됐다. 대부분 노점이 불법으로 전락한 탓에 이들에 대한 관리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다. 미국은 노점상에 치안을 제공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등 제도권 경제 내에 적극적으로 편입시켰다. 그 결과 이들은 도시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서울 8000개 노점상도 도시 경제의 한 축이 되지 않을까.(워커스 8호 2016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