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인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을 연구하면서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세기 후반에 ‘자유론’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한국 사회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의 저서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미다스북스, 2012)가 번역된 이후이다. 이 책을 마르크스의 평전 중에서 최고로 꼽는 이유는 정곡을 찌르는 간명성, 균형 잡힌 시각 그리고 폭넓은 지성사적 맥락 등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마르크스는 매력이라고는 거의 없으며 행동도 촌스러운 편인 데다가 늘 맹목적인 증오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강렬하면서도 정력적인 성격, 개념이 분명하면서도 포괄적인 견해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폭넓고 탁월한 분석에는 적들조차 매료되었다”(20쪽)는 게 마르크스에 대한 벌린의 평가다.
하지만 벌린이 사상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자유’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정치철학을 재편했기 때문이다. ‘자유’는 근대 혁명 이후 산업 자본주의에서 현재의 정보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인류 보편의 화두이다.
벌린의 정치철학적 입장을 구성하는 두 축은 역사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독특한 견해이다.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박동천 옮김, 아카넷, 2006)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벌린의 주요 글로 구성되어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1958년에 발표한 <자유의 두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은 벌린의 이름을 알린 가장 유명한 논문이다.
여기서 그는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와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의 구분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이 구분에서 생겨난 여러 귀결은 이후 서구 정치 철학의 진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벌린에 있어서 소극적 자유란 “주체(the subject) ─ 한 사람 혹은 일군의 사람 ─ 가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또는 스스로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방임되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343쪽)라는 질문을 통해 드러나는 자유의 의미와 내용을 말한다. 그것은 외부의 강제(restraint)가 없는 상태 즉, 타자(the other)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개인은 불간섭의 범위 안에서만 자유로운 것이다. 타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개인에게 보다 많은 선택과 기회가 가능함으로써 보다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 주체와 객체를 명확히 구분한다. 따라서 욕망은 내부에서 오는 것이며, 주체인 자아가 지니는 것이다.
반면 적극적 자유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 말고 저것을 하게끔, 이런 사람 말고 저런 사람이 되게끔 결정할 수 있는 통제 및 간섭의 근원이 누구 또는 무엇인가”(343~344쪽)라는 질문에 의해서 생겨나는 자유의 개념이다. 개인은 간섭의 원인이 자신의 내부에 있을 경우에만 자유롭다. 따라서 적극적 자유란 자신이 자신에 대해 온전한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본래적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소극적 자유는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이고 적극적 자유는 “~로의 자유(freedom to)”이다.
그는 소극적 자유를 옹호한다. “자유의 근본적인 의미는 타인에 의한 사슬로부터, 감금으로부터, 노예 상태부터의 자유이다. … 자유란, 적어도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위협(bullying)이나 지배(domination)의 부재와 같은 말이다(Isaiah Berlin. 1969. Four Essays on Liberty).”
여기서 ‘비지배(non-domination)’의 개념을 벌린에게서 가져와 공화주의 자유 이론이 1980년대 이후에 등장했다. 벌린의 구분을 따른다면, 신로마 공화주의의 자유는 ‘간섭의 부재’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도, 정치 참여를 통한 ‘시민적 능력의 행사’를 의미하는 ‘적극적 자유’도 아니다. 신로마 공화주의의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비지배’를 뜻하고, 이때 시민적 책임성은 비지배적 조건을 향유한 개인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시민적 덕성이다.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 공동선을 실천하는 덕을 발휘할 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주장이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따라서 공화주의에서 자유는 공동체의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간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오늘날 자유의 의미에 대하여 세 가지 개념이 일반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벌린은 자신의 소극적 자유를 밀(J. S. Mill)의 자유 이론과 동일시하였다. 벌린은 밀의 ‘해악의 원리(harm principle)’ 주장을 소극적 자유라고 주장함으로써 모든 간섭을 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해악의 원리란 타인에 대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 한,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간섭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특히 적극적 자유로 이해했을 때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침해하는가를 지적함으로써 적극적 자유를 부정한다.
벌린의 자유는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는 법이나 권위를 통해 획득 불가능하다. 벌린의 관점에서 모든 법은 자유의 침해이다. 따라서 법은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런데 벌린의 자유 개념은 평등과 양립하지 못한다. “자유는 자유일 뿐 평등, 공평, 정의, 문화, 인류의 행복, 마음 깊은 곳의 양심 등 그 어느 것과도 동일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계급 또는 내 나라가 자유를 누리는 대가로 다른 사람들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야 한다면, 그런 식으로 자유를 증진하는 체계는 부도덕이며 불의이다(박동천 옮김, 348~349쪽).”
불간섭(non-interference)으로서의 자유 개념의 중요성은 사실 홉스의 자유 개념에 그 맥이 닿아 있다. 홉스는 소극적 자유론의 전통에서 선구자다. 그는 불간섭이라는 시작의 권리인 “개인적 자유”가 모든 권력의 뿌리요 근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신재일 옮김, 서해문집, 2007)의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제21장은 소극적 용어로 정의된다. “자유인(freeman)이란 ‘스스로의 힘과 지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 인간’을 뜻한다.” 하지만 홉스가 구상했던 자유 국가의 시민은 자신이 법을 만드는 데 자유롭게 참여하기 때문에 법에 복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홉스가 주장한 자유는 ‘도시의 자유’나 ‘국가의 자유’였지 ‘개인의 자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벌린의 자유 개념과 그 차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벌린의 관점을 ‘냉전 자유주의’라고도 하는데, 그가 우파적 자유주의의 관점을 바탕으로 전체주의의 위협과 공포에 대한 경종을 지속적으로 울렸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영혼을 위한 단 하나의 건강하고 효율적인 조건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개인의 영혼과 역사적 필연의 법칙의 조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벌린은 ‘이성에 입각한 자기 지배’를 적극적 자유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것이 민족주의, 공산주의 및 전체주의 등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논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서병훈, 《자유의 미학 –플라톤과 존 스튜어트 밀》, 나남출판, 2000).
그의 논의는 자유 개념을 더욱 명료화했으며,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벌린의 논의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오해의 여지가 많다. 소극적 자유란 적극적 자유보다 유용한 것이지 그것과는 다른 별개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둘을 구분 짓기에는 애매한 점이 많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설령 그 구분을 인정하더라도 소극적 자유가 불간섭을 배타적으로 의미하며 자유를 위한 조건과 능력 문제를 고려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유주의적 자유를 단순히 선택의 자유 문제로 국한시키는 논의들은 재고해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자유는 무척 소중하다. 그것이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개인주의일 수도 있고, 적극적 자유를 주장하는 공동체주의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의 전일적 지배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 자아의 개념은 정치적으로, 인식론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과연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워커스10호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