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것은 컵라면이 아니다
성지훈 기자
6월 8일 오후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는 국화꽃이 가득 쌓였다.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용역 직원 김 모 씨의 발인을 하루 앞둔 날이다. 구의역에는 청년 단체와 노동 단체를 비롯한 시민 사회 단체 회원 100여 명과 시민이 모여 발인 전 마지막으로 김 씨를 추모했다. 추모를 마친 시민들은 고인의 빈소가 있는 건국대 병원까지 행진했다. 행렬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행렬에 따라붙기도 했고 병원 앞 추모 행사에 함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삶을 영위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어린 청년’을 가여이 여겼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는 오보를 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추모 행사를 멀리서 구경하고 있는 중년 남성에게 ‘구의역 사건’에 관해 물었더니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가방에서 나왔다는 컵라면과 숟가락 이야기도 꺼냈다. ‘어린 나이’와 ‘불쌍함’, ‘가난’은 이 사건을 지칭하는 기호들이다.
구의역에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던 지난 6월 1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철 공사 현장 지하에서 17명의 노동자가 철근 조립 작업을 준비하던 중 가스가 폭발해 일용직 노동자 4명이 죽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모두 하청 업체와 계약한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사고가 난 곳은 철도시설관리공단이 발주하고 포스코 건설 시공, 매일ENC가 하청으로 있는 공사 현장이다. 폭발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났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시공사 포스코는 보상과 장례 절차에 대한 합의를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이뤘지만 사고 당시 사용한 가스 종류 등 현장 안전 관리에 대한 발표는 미루고 있다. 이 와중에 경찰 압수 수색 과정에서 경찰이나 사고위원회 조사에 대비, 답변 요령을 교육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사건을 ‘수습’하는데 방점이 찍히고 있는 셈이다.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에만 5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3명이 하청노동자다. 2014년에는 현대 미포와 현대삼호를 포함한 현대중공업 산하 조선 사업 분야에서 모두 13명이 숨졌다. 작년에도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2014년 3000억 원을 들여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 조선업계 불황으로 수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비용이 드는 안전 대책은 뒷전에 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잇따른 사고의 원인이 안전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는 하도급 체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량은 적고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안전에 대한 경계보다는 각자 자기 일하기 바쁜 것이 하도급 현장의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하청 노동자들의 산업 안전과 고용 문제를 풀기 위해 원청에 단체 교섭을 요구했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에는 울산지방법원에 “현대중공업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구의역 사고는 예측된 인재였다는 지적이 많다. 애초에 김 씨가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는 것이다. 안전문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하청 업체 직원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규직인 역무원을 통해서만 열차 주의 운전을 요청할 수 있다. 안전문 유지 보수 담당자가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열차 주의 운전 요청을 종합 관제실에 직접 했을 것이며, 2인 1조 점검이 지켜졌을 것이다. 서울도시철도는 서울메트로와 달리 안전문 유지 보수 업무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서울도시철도에선 업무 중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구의역 사고가 발생하고 서울메트로는 팀장급 이상 180명의 사직서를 받았고 그중 임원 2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책임자 5명을 직위 해제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경정비 업무를 포함한 위험한 업무에 대해선 장기적으로 직영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엄정한 대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일 순 없다. 사고의 근본 원인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도 잇따르는 산재 사고를 막겠다고 나섰다. 올해 들어서만 5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노동부는 특별 근로 감독을 했다. 노동부 특별 감독관, 안전 보건 전문가 등 35명을 투입해 8일 동안 진행했다. 그 결과 노동부는 위법 사안 185건을 처벌하는 한편, 42건에 대해서는 2300만 원 상당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정작 산재 사고의 가장 큰 피해 원인인 하도급 구조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남양주 폭발 사고의 원인도 하도급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고 당일은 물론 평소에도 폭발사고 위험 등에 관한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건설 현장에서 중대 재해가 반복되는 것은 중층적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한 안전 공사비 절감 등의 악순환 때문이다. 하청 건설사들은 저가 수주의 손해를 공기 단축으로 만회하려 한다. 또한, 공사 비용 중 안전 관리비를 줄여서 안전 교육은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안전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하청 비정규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산재 예방과 산재 사망 처벌의 책임에서 원청은 빠져나가는 구조다.
구의역 사고와 남양주 폭발 사고, 조선업계의 산업 재해까지 빈발하는 사고의 피해자는 하청,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이 사고들이 지칭하는 기호는 ‘비정규직’이지만 사회 전반은 이 같은 근본적 원인은 도외시하고 ‘불쌍한 노동자들의 죽음’에 ‘심정적 애도’를 표하는 것으로 알리바이를 마련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사고가 발생하고 여론이 일면 해결 방책들을 내놓지만 대부분 미봉책이다. 은 하청 업체 안전 사고에 원청이 책임 있는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하청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은 물론, 하청 업체도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구의역 사고 추모 행사가 열린 8일 저녁, 행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김 씨의 사연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김 씨의 컵라면에 집중하는 만큼 김 씨가 외주 용역 직원으로 싼 값에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본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정부와 기업에 대한 문제 제기엔 인색한 것 역시 사실이다. 추모 행사를 지켜보던 한 여성은 김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면서도 비정규직, 외주 용역만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현실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들어간 직원들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남양주에서 일어난 사고는 여론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새 원청과 유가족 간의 합의가 끝났다.
문제는 생명과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을 우선하는 기업의 풍토다. 그리고 비용 절감을 ‘값싼 노동력’인 비정규직, 하청, 용역에게 넘기는 관행이 비극을 생산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에게 위험을 전가하면 안전을 위한 노력은 허사가 된다. 결국 현장에서 제거해야 할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비정규직’이다. 이어지는 산업 현장의 비극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고작 컵라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