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좁아 터진 동네를 벗어나 전국을 유랑하고픈 충동이 일곤 한다. 에이, 다 때려치우고 배낭 메고 떠나 볼까나? 하지만 충동이란 발작적 감정일 뿐,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당장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일 테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 축에 낀다. 가장 큰 문제는 정보도 없고 돈도 없고 각오도 안 돼 있는데 전국 순회 투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단체가 있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무일푼 전국 순회를 떠나야 한다.
만약 당신이 무일푼으로 전국 순회를 떠나야 한다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텐트와 침낭과 깔판이다. 한기와 허리 배김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 장의 깔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바늘과 실. 걷다 보면 양말에 구멍도 많이 나고, 배낭끈이 떨어지기도 하고, 옷이 찢어지기도 한다. 다 살 수 없으니 하나하나 기워 입어야 한다. 가장 쓸모없는 준비물은 바로 책. 끼니도 장담할 수 없는데 마음의 양식이 웬 말인가. 무겁기만 하고 제대로 펴 보지도 않는다.
과거 텐트 치기 가장 아늑한 장소는 초등학교 교정이었다. 하지만 강력 범죄 때문인지 요새 웬만한 학교는 개방하지 않는다. 공원은 잠자리로는 최악의 장소다. 공원에 놀러 온 사람들이 자꾸 텐트를 들썩거리거나 들여다볼 거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대화 소리도 꽤 난감한 소음이 된다.
그나마 안정적인 숙박 장소는 아스팔트 바닥이 있는 건물 뒤편이다. 밤이면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무실 건물이면 좋다. 다만 대도시일수록 텐트 칠 장소를 찾느라 애를 먹게 된다. 땅값이 비싸 높은 공간 활용도로 텐트 치기가 쉽지 않고, 주민들의 배척도 심하다. 정서적, 공간적으로 가장 유랑 투쟁이 힘든 도시는 대구. 그나마 핫 플레이스는 전남 해남, 진도 지역. 해남이나 진도는 사람들도 꽤 친절하다는 얘기가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텐트 치기 좋은 장소는 공중화장실 근처다. 건드리는 사람도 없고 물 길어다 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만약 휴대 전화가 방전됐다면, 근처 도서관이나 시청 같은 관공서 건물로 들어가면 된다. 비를 피하거나 배터리 충전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하지만 가끔 야박한 공무원이나 동장 같은 사람들이 행색을 보고 내쫓을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 이 기사는 유랑 투쟁가 둥글이(박성수)에게 자문을 구해 작성했습니다.
(워커스4호 201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