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솔, 윤지연 기자
2010년 간병인 A 씨가 자신이 돌보던 치매 노인을 사망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A 씨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노인을 물리력을 사용해 제지했고, 노인은 갈비뼈 골절로 사망했다. 같은 해, 간병인 B 씨가 치매 노인의 가슴을 밟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언론은 B 씨가 치매 노인의 ‘거슬리는 말’에 분을 못 이겨 우발적인 살해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환자가 간병인을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13년,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60대 환자는 잠을 자던 간병인 C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환자와 간병인 사이에서 종종 발생하는 여러 극단적 사건들은 줄곧 개인적 혹은 우발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사건이 반복된다는 것은 구조적인 동기가 잠복해 있다는 의미다. 간병 노동은 대표적인 감정 노동이다. 환자를 돌보는 육체노동과 함께 감정 노동이 뒤따른다. 노동 강도가 높아질수록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커진다. 그래서 환자와 간병인이 서로의 감정을 갉아먹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악순환의 고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왜 간병인은 분신을 시도했나
올해 2월 2일 오전, 청주시청 본관 앞에서 청주노인전문병원 간병인 권옥자(62) 씨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다. 권 씨는 현재 폐원한 청주노인전문병원노조 분회장이다. 권 씨가 분신을 시도하며 요구한 것은 원직 복직. 병원에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2010년부터 청주노인전문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다. 그 전에는 정부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일자리인 재가 요양보호사 일을 했다. 하루 4시간으로 제한된 노동을 하며 월 45만 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전일제로 일해야만 했다.
청주노인전문병원은 청주시가 무려 156억 원을 들여 건립한 시립 병원이다. 열악하다고 소문난 민간 요양 병원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특히 청주노인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간병인, 간호조무사 등은 모두 직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다.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대다수의 민간 요양 병원 간병인들의 처우와 비교하면 천국이었다. 하지만 판단 착오였다. 권 씨가 발을 들인 그곳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직고용 정규직의 타이틀은 민간 위탁 앞에서 쓸모가 없었다. 청주시는 백억 대의 예산을 들여 지은 병원을 민간에 위탁했다. 운영자로 들어온 병원들은 줄줄이 문제를 일으켰다. 수탁 계약 기간인 4년을 채우지 못하고 번번이 위탁을 해지했다. 그때마다 간병인들도 부당 해고로 잘려 나갔다. “직고용자일 뿐이지 정규직은 아닙니다. 4년짜리 비정규직인데 그것조차 위탁 운영자가 4년을 채우지 못하니 우리의 고용도 1년이 될 수도 있고, 2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새로운 운영자가 들어올 때마다 간병인들은 ‘고용 승계’가 아닌 ‘신규 입사’로 재계약을 했다.
아비규환의 노동
권 분회장은 이곳에서 24시간 이상 격일로 노동했다. 오전 7시 30분에 병원에 들어가 다음 날 8시 30분에 나왔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장, 야간 수당도 받지 못했고 휴게 시간에도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어쨌든 나중에는 170만 원까지 줘야 하니, 노동 강도를 높였습니다.
한 사람이 병실 1개를 관리하던 걸 3개까지 관리하라는 거였죠. 한 사람이 적게는 15명에서 많게는 24명까지 환자를 돌보게 됐습니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도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 환자를 돌보기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자다가 한 분이 일어나면 다 같이 일어나요. 한 분이 식사하면 다 식사를 하시겠대요. 현장은 난리도 아닙니다. 환자들이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에요. 뒤집어 주고, 소변 치우고…. 밤에도 난리가 나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새벽에 CCTV에 찍힌 영상을 보면서 울 정도니까요.”
식사 시간이 되면 간병인이 2명씩 뛰어 내려가 20분간 식사를 했다. 가장 서러운 건 25시간가량 병원에 갇혀 있는데도 세끼 밥을 못 먹게 하는 거였다. “두 끼밖에 안 줘요. 그래서 밥 안 먹는 동료들 식권을 주고받으며 밥을 먹으니 나중에는 식권을 색깔로 구별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간병인들은 환자를 직접 옮기는 과정에서 다치기도 했다. 인력 부족 시 장시간 노동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산재 처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력이 부족해서 한 직원이 일주일간 집에 못 가고 일을 하다 쓰러져 일반 병원으로 실려 갔던 일도 있어요. 그런데 병원은 구급차 비용까지 받아 내더라고요.”
그러다 지난해 5월, 병원은 노조 때문에 경영난이 왔다며 병원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100명에 달하는 직원이 해고됐다. 1년이 지난 올해 5월 26일. 청주시는 청주병원을 청주노인전문병원의 새로운 수탁자로 선정했다. 1년 전 쫓겨난 직원들은 청주병원과 청주시에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으나 병원과 시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배제되는 인력
3차 의료 기관 같은 대형 병원이나 민간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대다수 간병인은 직업소개소나 간병인협회의 알선을 통해 구직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같이 정부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수 고용 노동자 신분이라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월요일에 병원으로 출근하면 토요일에나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D 씨는 “24시간 일을 해도 일당이 7만 원이다. 수당도 없다. 유료 소개소를 통해 일을 얻은 사람은 회비(소개비)를 업체에 또 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간병인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시달린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전국 종합 병원과 병원급 요양 기관에서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포괄 간호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포괄 간호 서비스에 건강 보험을 적용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간병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현재 민간 의료 기관 108개와 공공 의료 기관 26개 등 총 134개의 의료 기관에서 포괄 간호 서비스 사업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포괄 간호 서비스에 간병 인력이 제외됐다는 것이었다. 이 서비스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한 팀이 돼 24시간 환자를 간병하는 시스템이다. 보건복지부는 그간 간병인 등의 의견을 반영해 포괄 간호 서비스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범 사업 초기와는 달리 실제 시행 과정에서 간병인 인력은 배제됐다. 약 20만 명에 달하는 간병인들은 또다시 고용 불안이라는 악재를 만나게 됐다.
(워커스20호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