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니 없는 하루, “빨리 와달라는 소리 밥 먹지 말라는 소리로 들려”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짐의 무게 때문에 뛰는 것보다는 천천히.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위탁 집배원 D 씨는 연신 종종걸음이다. 그의 1톤 트럭에는 평소의 2배에 달하는 물건이 쌓여있다. 보통 배달하는 물량은 하루 평균 130개. 일요일만 빼고 주 6일을 근무하니 한 달에 약 3,000개에 달하는 물건을 전달하는 셈이다. 적게는 1개, 많게는 5~6개의 물건을 품에 안고 4, 5층의 건물을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한다. 배달할 곳에 도착하면 호수를 확인하고 벨을 누른다.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물건 받을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물건을 품고 내려온다. 제일 곤란한 경우는 물건을 트럭에 놓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전화가 걸려올 때. 먼 거리가 아니라면 차를 돌려 다시 배달하지만 동선이 꼬이고 시간이 든다.
점심은 챙기지 못한다. 대다수 날이 그렇다. 3년 넘게 몰고 있는 트럭 바닥에는 끼니를 대신해 자주 먹는 삼각김밥의 말라비틀어진 밥 알갱이가 붙어있다.
“배달 언제 오느냐고 빨리 갖다 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밥 먹지 말라는 소리로 들려요. 편의점에서 김밥에 라면을 먹으려다가도 라면을 먹으려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라면 먹는 시간도 사치 같아 대충 삼각김밥만 사 들고 나오죠.” 바닥에 뒹구는 삼각김밥 봉지를 치우며 그가 말했다.
배달 다섯 시간 만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는 내부 규칙상 택배 차량이 들어가지 못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택배 차량‘만’ 들어가지 못한다.
“택배 차량이 위험하기 때문이래요. 택배 차량보다 더 큰 쓰레기 차, 가전제품을 배달하는 회사 차량은 다 들어가는데 택배는 못 들어가요.” 택배로 가전제품을 배달할 경우에는? 역시 못 들어간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곳에 트럭을 주차하고 손수레에 짐을 싣고 옮기는 수밖에 없다. 손수레를 끌고 아파트 입구에 섰지만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경비가 문을 열어줘야 갈 수 있는데 마침 경비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몇 분을 서성이다 문이 열렸다. 그제야 수레가 아파트 문턱을 넘었다. 10개가 안 되는 동이지만 수레에 모든 배달 물량을 싣지 못한다. 두세 번 트럭을 오가는 수밖에 없다. 오가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택배 차량이 몰릴 때도 곤란하다. 주차할 곳이 부족하기 때문 이다. 더 먼 곳에 차를 대고 손수레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
10개 동 배달을 마치고는 다시 다른 아파트로 향한다. 약 30개 동 4,000세대가 넘게 거주하는 대단지다. 그는 이 중 6개 동을 담당한다. 중천에 있던 해가 저물고 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배달이 끝났다.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8시간 30분의 배달이 마무리됐다. 이 시간은 배달‘만’한 시간이다. 배달 외의 노동은 조금 더 일찍 시작한다. D 씨는 새벽 6시 30분, 우편집중국으로 출근한다. 택배 물량을 분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배달보다 분류가 제일 힘들어요. 지역마다 팀이 있는데 그 팀으로 물건이 오면 그걸 다시 동으로 분류해요. 동으로 어느 정도 물건을 나누고 나면 그때부터는 개인이 자신의 담당 지역 물건을 챙기는 거죠.” 개인 분류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D 씨는 트럭에 짐을 싣고 담당 구역으로 향할 수 있다. 하루 평균 11시간이 넘게 그는 우체국의 표식을 달고 산다.
# 우정사업본부, ‘낳긴 했지만 모르는 자식’
우편집중국으로 출근해 물건을 받고 분류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우편집중국에 트럭을 세워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지만 D 씨는 우체국 소속이 아니다. 그가 입은 조끼에도, 착용한 모자에도 우체국 마크가 있지만 우정사업본부(우본)는 등기나 우편 없이 택배만 배달하는 그를 ‘위탁택배원’이라 불렀다. 배달 위탁은 우본이 집배 업무 가운데 일부를 외주화하면서 생긴 제도다. 위탁택배 배달원은 고중량 소포를 담당한다.
위탁택배원은 우본과 위탁 계약을 체결한 업체로부터 재위탁을 받는 ‘개인 사업자’다. 우본이 공개 입찰을 통해 택배 운영사와 계약을 맺으면, 택배 운영사들이 택배 기사에게 재위탁하는 식이다. 우본은 위탁택배원을 배달 개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로 규정했지만, 마음껏 벌 수는 없다. 우본이 위탁택배원의 물량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우본이 월급을 한정하는데 개인사업자라니 너무 웃긴 거 아니에요? 3,000개 이상 받지 못하도록 물량 조정해가면서 그 이상은 벌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제일 나쁜 건 다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D 씨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퇴직금도, 연차도, 그 외 복리후생도 없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이들의 설움은 또 있다. 지입료, 일명 번호판값이다. 택배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업용 차량임을 확인할 수 있는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화물차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업용 화물차 신규 공급을 ‘허가제’로 운영해왔지만 얼마 전 이를 ‘신고제’로 바꿨다. 수천 만 원 까지 거래되던 영업용 번호판의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위탁택배원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토부는 우체국 택배 위탁택배 기사가 소속된 우본이 국가기관이므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어 신청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우체국 택배차는 우편법의 적용을 받아 흰색 번호판으로도 영업할 수 있지만, 우본은 위탁택배 기사는 개인사업자라며 흰 번호판을 내주지 않는다. 우편법을 적용할 수 없으니 노란색의 영업용 번호판을 구해서 영업하라는 것이다. 결국 위탁택배 기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2500만 원 가량을 주고 기존의 번호판을 사거나 택배 운영사에게 번호판을 임대하는 방식이다.
10년째 위탁택배 일을 하는 E 씨는 업체로부터 번호판을 빌렸다. 그는 번호판을 달아주는 값으로 업체에 500만 원을 상납했다. 여기에 매달 15~20만 원 임대료를 낸다. 우본이 ‘우리 소속이 아니’라며 부인하는 위탁택배 기사들은 오늘도 우체국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모자를 착용하고 물건을 배달한다. 휴일도, 연차도, 퇴직금도 없이 제 살을 택배 운영사에게 상납하며 하루를 보낸다.
# 법원의 ‘우체국 소속’ 판결, ‘우체국’의 끝없는 부정
2000년대 들어 수도권 신도시를 비롯해 세종특별자치시 등 새로운 행정구역이 생겼다. 집배원이 모자랐다.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우정사업본부는 재택위탁 집배원을 모집해 운영했다. 주로 아파트단지 등에서 보통 우편물을 담당하는 일이다. 재택위탁 집배원의 90% 이상이 여성인데, 이들에게 재택위탁 집배는 매력적인 일자리였다. 10년 넘게 일을 하는 F 씨는 “근무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라 아이들이 학교가 있는 동안 하기 좋은 일이라고 소개받았다. 가정 주부가 하기 좋아 보여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대는 쉽게 무너졌다. 지난 13일 F 씨의 일과를 동행했다. 그는 오전 9시 30분에 우편을 배달을 시작했다. 전날 오후에 우체국에서 집으로 가져다준 우편물이다. 우체국은 매일 오후 재택위탁 집배원의 집으로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전해준다. F 씨는 배달이 끝나면 매일 집에서 다음날 우편물을 분류해야 한다. 묶음으로 전해진 우편물을 일일이 확인해 아파트 동마다 나눈다. 이를 작은 수레에 실어 단지를 돌아다닌다. 그가 담당하는 단지는 24동, 2000세대가 넘는 곳이다.
반송 우편물을 살피는 것도 F 씨 몫이다. 반송함에 놓여있는 것도 있고 우편함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것도 있다. 계단 위로 올라가 까치발을 들고 우편함 위도 살핀다. 보통 반송함에는 이사 간 이를 찾는 우편물이 많다. 이사한 사람이 신고했을 경우 그들의 새로운 주소록이 온다. 새 주소를 붙여서 우편물을 전송하거나 주소가 없는 경우 다시 우체국에 보낸다. 도장을 찍고 새 주소를 적고 하는 일들은 배달이 끝나고 해야 할 일이다.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으면 (정규직) 집배원이 F 씨에게 등기를 갖다 준다. 등기는 하루 평균 50~60통이다. 우편물과 함께 도착해 전달하면 수월하겠지만 등기가 언제 그의 손에 쥐어지는지 예측할 수 없다. 집배원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날은 9월 재산세가 나왔다. 평소 분량의 곱빼기다. F 씨는 5시간 넘게 한 집 한 집 벨을 누르며 등기를 전달했다.
“우리 소속이 아니다”라는 우본의 입장은 F 씨가 단체행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개인사업자라면서 부가세를 떼는 상황을 보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특수고용직인 우체국 재택위탁 집배원이 자영업자가 아니라 우체국 소속 노동자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우체국이 전해준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자영업자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조가 만들어지니 우체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매년 조끼와 셔츠, 동복과 하복, 신발까지 넉넉히 지급했는데, 이제는 아무리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다. 위탁집배원은 이동수단이 두 발이다. 이 동과 저 동 사이를 끊임없이 걷는다. 운동화는 6개월도 못 가 헤진다. 지급해오던 운동화와 셔츠를 달라는 것인데 쉽게 주지 않고 애를 태운다. 여름에 요구한 여름 조끼는 12월 겨울에야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법원에 판단을 맡겼다. 우체국 재택위탁 집배원 5명은 국가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 지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2014년 연차휴가 수당 중 우선 1만 원씩 지급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2월 나온 판결에 우정사업본부는 즉각 항소했다. 재택위탁 집배원은 우본과 위탁계약을 맺고 우편물 배달 물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라고 주장했다.
우본의 주장대로면 F 씨는 자신이 재량권을 갖고 업무량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F 씨는 우체국이 정해준 물량만 배달하고 있다. 재택위탁 집배원들이 우본의 지휘·감독을 받는 종속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본 소속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2심은 아직 진행 중이다. F 씨는 늦어도 11월에 판결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다. 우본의 ‘우리 소속이 아니다’는 주장은 어떤 판결을 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