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술방망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가진 건 그런 요술방망이는 아닙니다. 지금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나마 차상위 소득까지를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마련된 안입니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 5월 28일 국회 본회의)
눈물의 무게는 개악된 최저임금만큼 가벼웠다. 지난 5월 28일 국회 본회의.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최저임금법 개악안’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렸다. 주변 동료 의원이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로 줄곧 개정안 통과를 호소하고 주도해 온 인물이다. 이날 재석 의원 198명 중 160명이 찬성, 민주당 의원은 90명 중 76명이 찬성해 개정안은 ‘무사히’ 통과했다. 그가 흘린 눈물은 죄책감이었을까, 아니면 안도와 기쁨이었을까.
정부와 민주당이 결국 사용자의 소원을 풀었다. 기업이 지난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된다며 주장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본격 수용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 5일 국무회의를 열고 개정안을 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수일간 집회를 열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줬다 뺏은’ 문재인 대통령과 160인의 국회의원. 이들은 여전히 최저임금법 개정은 ‘개악’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워커스》가 이들의 목소리를 곱씹어 봤다.
국회가 가져온 산입범위 의제…최임위 탓?
“그간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개선TF를 만들어 산입범위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환노위가,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산입범위 조정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가져간들 여기서 합의되지 못하면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내년에 조정조차 못 합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겨 달라는 것은 오만입니다.”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 5월 28일 국회 본회의)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과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까닭에 국회가 나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말처럼, 최저임금위가 논의를 포기해 국회가 나선 걸까? 정확한 사정을 살펴보자. 최저임금위 전문가TF는 지난해 12월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복리후생비 산입은 합의하지 못했다. ‘포함’과 ‘불포함’, ‘현금 지급성 복리후생비만 포함’ 세 의견이 남았다. 당시 근로자위원이었던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임금 자체를 하향 평준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산입범위 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와중에 국회가 노사 당사자 동의 없이 논의를 가져온 것이다.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까지 당황해했다. 특히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인 민주노총은 “당사자가 배제된 채 국회가 일방 처리하려는 상황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또한 최저임금위 TF는 ‘산입범위’만을 권고안으로 다룬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및 구성 개편, 업종지역별 구분 적용 방안, 준수율 제고, 가구생계비 계측 방법 등 6가지 내용을 담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처럼 다른 쟁점들도 노동계와 경영계가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는 이중 경영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산입범위 의제만을 쏙 빼 처리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5월 21일 환경노동소위원회에서 “최저임금위 TF는 여섯 가지 의제를 다루고 있었다”며 “모든 의제를 함께 논의하다가 국회로 와 있는데, 산입범위만 다시 논의하게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 오히려 총구 겨눠
“월 157만 원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를 보호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나온 안이 최저임금 대비 상여금 300%(월 25%), 복리후생비 7%입니다. 157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 2500만 원 정도가 됩니다. (…)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고 차상위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한정애 의원, 5월 28일 국회 본회의)
연 2500만 원과 ‘25%’, ‘7%’가 나온 배경은 이렇다. 민주당 서형수 의원은 중위소득인 25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확대로 노동자는 산입범위 확대로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시에 복리후생비는 중식비 등 비과세 소득 10만 원을 감안했다고 알려졌다. 올해 월 최저임금은 157만3770원의 7%가 약 10만 원이다 이를 더하면 167만3770원. 연으로 따지면 2008만5240원이 된다. 중위임금 2500만 원까지 약 491만4760원이 남는다. 이때 상여금이 연 300%라면 이에 근접한 472만1310원이 나온다. 다시 300%를 12개월로 나누면 25%라는 수치가 나온다. 2500만 원을 ‘때려 맞추기’ 위해 ‘25%’와 ‘7%’가 정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연봉 2500만 원이 ‘고임금’과 ‘저임금’ 노동자를 가르는 기준인 것도 의아하나, ‘25%’와 ‘7%’가 과연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1년 차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연봉 약 2359만 원을 받는다. 국회의원들이 말한 대표적인 2500만 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다. 이들의 급여는 기본급 164만 원, 복리후생비 19만 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2019년 최저시급이 16.4%(전년 동일) 오른 8,760원일 경우, 복리후생비 7% 초과분 61,841원이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현행대로라면 약 202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최저임금 산입으로 약 195만 원밖에 받지 못한다.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전액 산입되면 향후 6년간 입는 손실액은 약 928만 원에 달한다. 고용노동부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수익이 줄어드는 연 소득 2500만 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가 최대 21만6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고임금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 혜택 본다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 흐름에 반발하는 사용자들이 ‘기본급은 적은데, 수당 또는 상여금이 많은 노동자’들을 핑계 삼아 최저임금 인상에 저항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의 저항에 부딪혀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아진다면, 실제 최저임금제의 직접적인 대상자이자 임금 인상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자들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 6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회와 사용자들은 ‘고임금 노동자’를 통제하겠다는 핑계를 댔다. 기본급은 최저임금이지만, 상여금은 이보다 훨씬 많은 고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불필요한 혜택’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산입범위를 확대하면 이들의 임금 상승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6년 기준 상위 20~40% 노동자 중 5만1천 명이 최저임금 대상자라고 밝혔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노동부 정책자문위원회에서 “최저임금제도 개편은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 실제 지급받는 임금이 (최저임금에) 반영되도록 해 고임금 노동자까지 최저임금인상 혜택을 받는 불합리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부가 밝힌 최저임금 산입범위로 기대수익이 감소하는 저임금 노동자는 21만 명이다. 고임금 노동자 5만 명의 임금 상승을 막으려 최저임금 노동자 21만 명의 임금을 깎겠다는 셈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박주민 의원이 말한 고임금 노동자는 연봉이 높은 사무직이나 언론종사자 같은 사람이 아닌 ‘제조업 노동자’인데 이들의 임금체계는 매우 왜곡된 것”이라며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잔업 특근을 시키되 수당은 적게 주려고 기본급을 적게 책정한 것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 하니 기업도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상여금을 산입범위에 넣으면서 급격한 임금인상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 개악의 명분은 고임금 노동자 전체가 아니라, 임금체계 왜곡으로 손해를 봤던 노동자들의 급격한 임금인상을 방지하는 목적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도 보호 못 하는 개악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에 따른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으며, 현행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음.” (하태경 의원 등 10인, 2017년 12월 발의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이유 중)
국회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세상공인들의 부담을 강조해 왔다. 한편 산입범위 확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없애는 개악이라는 여론이 강해지자, 국회는 상여금 25%, 복리후생비 7% 초과분만 산입한다는 ‘보호 장치’를 만들었다. 이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대부분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소상공인에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영세상공인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대부분은 상여금, 복리후생비 없이 최저임금만큼의 기본급만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세상공인 대책의 핵심인 대기업의 가맹수수료, 임대료 등의 언급은 없었다. 영세상공인의 처우를 개선해야 하지만, 대기업은 건드리지 못하니 노동자 임금만 삭감한 셈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통상임금 제도화 돕는다고?
“이번 최저임금 개정안은 무엇보다 복잡한 임금체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 또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는 제외되는 부조리를 고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최저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었으니 통상임금에도 상여금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있고 설득력도 강합니다. 제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활용한다면 분명 다수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될 부분입니다.” (박주민 의원, 6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개정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기본급에 ‘녹이는 것’이 아닌 최저임금 범위에 ‘포함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주는 여러 종류의 급여는 그대로 두고, 추가 지출을 줄일 여지만 생겼다. 박 의원은 개정안이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최저임금이 상여금,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하면 통상임금에 각종 수당을 포함하는 것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는 논리다. 통상임금은 그간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 온 의제다. 노동계는 상여금 등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초과근로수당, 휴일수당 등이 통상임금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사용자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혜진 활동가는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은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며 “‘임금’을 쪼개며 연장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한 ‘통상임금’ 개념과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법은 완전히 다른 목적이 있다. 입법 목적이 다른 두 가지를 왜 일치시켜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설령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도 잔업 특근을 하지 않는다면 크게 상관이 없다. 잔업을 하는 노동자가 수당을 더 받더라도 개악으로 인한 임금 삭감분보다 크지 않다. 노동자들에게 각각 효과가 다른데 통상임금에 수당과 상여를 포함하기 위해 왜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하는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떠도는 최저임금 개악이라는 유령
모든 논쟁의 출발점은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시각이었다. 2020년에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엄살이 산입범위 확대의 계기가 됐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김동연 부총리는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언급하고 나섰다. 근거 없는 최저임금 유언비어가 노동자들에게서 임금을 빼앗고 있다. 민주노총의 개악 저지 투쟁은 압박 효과는 아직까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국민의 3분의 2가 최저임금 개악에 반대한다는 여론 결과도 있지만, 국정지지율은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정부와 노동자가 함께 외쳤던 ‘최저임금 1만원’ 구호는 한쪽 날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또 한 번 촛불정권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