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오른다.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꺼지나 싶다가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헛바람이 불씨를 살리고, 부풀리고, 태운다. 2009년 1월 20일 검붉게 타오르던 용산 남일당 망루의 불은 삽시간에 모든 삶을 태우고 꺼졌지만, 부동산 욕망의 불은 불패 신화 속에서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도시개발 폭력의 역사와 현 시기 도시재생의 문제를 돌아봤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우리가 어떻게 개발의 폭력과 강제퇴거로 내몰리는 이들에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들이 따라왔다.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집과 부동산 사이에서 시작돼야 한다. 부동산 버블과 독점이라는 광기의 시대에 우리의 주거권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집과 땅, 부동산 독점의 시대
얼마 전 발표된 개인 주택 보유 현황에 따르면,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 수는 4,599채로 1인당 560채에 달한다. 상위 1% 개인이 소유한 주택은 총 90만6천 채로, 1인당 평균 6.5채를 보유하고 있다. 9년 전 상위 1%가 37만 채를 보유해 평균 3.2채를 보유했던 것에 비하면 2배가 증가한 셈이다. 집을 50채 이상 소유한 자도 3천 가구나 된다. 1%에 의한 집의 독점뿐 아니라 집이 서있는 땅의 독점도 심각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50년간 쌀값이 50배 오르고, 휘발유 값이 77배 오르는 동안 토지가는 3천 배가 올랐다고 발표했다(2015년 기준).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개인 보유 토지는 5.9% 감소한 반면 법인 보유 토지는 80.3% 증가했다. 특히 상위 1% 법인이 보유한 토지는 지난 10년 동안 2.4배 증가했다. 땅값 기준으로는 350조에서 980조로 늘어났다. 1%의 부자들이 집을 독점하고, 1%의 재벌들이 땅을 독점하고 있다.
1975년 한국은행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2016년부터 한국의 가계의 이자지출은 이자수입보다 그 비중이 더 커졌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채무자가 양산됐다. 2017년 기준 가계부채 1,300조 중 주택담보대출이 744조를 차지했다. 은행대출의 73%가 주택담보대출이다. 은행은 사실상 주택 전당포로 전락했다. 통계적으로 절반이 집을 소유하고 있고 절반은 소유하지 못하고 있지만, 집을 소유한 이들도 그 집은 우리은행 집, 국민은행 집이나 다름없다. 집과 땅을 독점한 소수 기득권 세력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집 때문에 걱정한다. 부동산 독점과 상품화는 주거권을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사는 곳’인 주택이, ‘사는 것’인 부동산으로 거래되면서, 주거는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장에서의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상품으로 여겨진 지 오래다. ‘사는 것’이 된 주택은 공인중개사무소 유리벽에 상품으로 전시돼 소비를 유혹하고, 주식 거래 중개처럼 주간단위로 발표되는 주택 가격 동향은 지금 놓치면 안 된다고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버블과 모르핀, 도시 공간의 약탈
한국에서 부동산 독점 현상은, 강남 개발과 강남처럼 되고 싶은 도시 개발의 욕망 속에서 불패의 신화가 됐다. 다큐영화 ‘버블 패밀리’는 거품의 욕망에 위태롭게 올라타다 몰락한 중산층의 가족사를 통해 강남 개발을 통한 부동산버블 경제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감독에겐 ‘부동산에 집착하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고’,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혼 후 계약한 아파트가 2년 만에 3배가 오르는 최초의 ‘놀라운 경험’을 겪은 엄마와 아빠에게 부동산은 어쩌면 ‘로또’의 욕망보다 더 ‘현실’적인 욕망이었다.
‘버블(Bubble, 거품)’은 실물의 내재한 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에서 과대평가되는 과열 현상을 일컫는다. 실체에 비해 가격이 상승하는 비이성적 과열이 투기적 버블을 유발하며 팽창한다. 단단한 쇠공이 아닌 거품은 결국 가라앉거나 터지기 마련이다. 버블경제의 시초는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버블’이라고 한다. 당시 귀족과 상인뿐 아니라 빈곤층까지도 튤립에 투자하면서, 튤립 한 뿌리가 마차 1대와 말 2필보다 비쌀 정도로 폭등하다가 이듬해 폭락한, 그야말로 광기의 역사였다.
‘버블 패밀리’에서도 가족은 ‘부동산’에 집착하지만, 결국 가족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월세와 이사걱정이라는 ‘주거’, ‘집’의 문제였다. 전 국민의 절반이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에 신음하는 무주택 가구인 시대에, 우리의 안정된 ‘주거에 대한 권리(주거권)’를 ‘부동산’이라는 욕망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사이, 우리는 강남 3구 미성년 26명이 497채를 소유하고 집부자 상위 10명이 평균 560채의 집을 소유한 나라에 살고 있다.
모든 가구가 한 채씩 집을 갖고도 남는다는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됐다. 통계적으로는 가구 수보다 주택이 남아돌지만, 역대 정부마다 ‘서민 주거안정’을 내세우며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공급부족론’은 주택난 해소의 주문처럼 따라붙어 개발을 부추긴다. 문재인 정부의 신도시 공급 발표도, 부동산 개발을 통한 경제성장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발·부동산 경제는 당면한 고통을 피하려고 모르핀(마약)식 처방을 해, ‘중독’에 빠져드는 파국을 불러온다. 지난 50년간 개발과 부동산으로 부풀려진 거품의 욕망은, 우리 모두를 ‘중독’에 빠뜨렸다. 1978년의 ‘난쏘공’과 2017년의 ‘버블 패밀리’의 40년 간극에서도, ‘집’을 ‘짐’으로 둔갑시키는 요술은 부동산 개발을 통해 가능했다. 부수고 짓고,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며 부동산 독점을 가능하게 해온 역사, 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모호한 호명으로 도시공간을 약탈해온 역사에서, 살만한 집에 살 권리인 주거권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 된 지 오래다. 개발을 통해 만든 부동산 불로소득과 검은돈이 판치는 부동산 독점의 시대에서, 삶의 편안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은 짐이 됐고, 땅과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헬조선’이 됐다. 결국 개발로 집을 빼앗긴 사람만이 주거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철거민이건 아니건 부동산 독점의 시대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의 집과 땅을, 우리의 도시공간을 약탈당한 사람들이다.
빈 주머니를 뒤집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부동산 가격이 또 오를 기미가 보일 때에 대비해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 출범 100일을 맞는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부동산 시장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왜곡된 경제 구조 속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반, 이전 정부와 달리 규제를 강화하며 ‘투기억제’를 기조로 8.2대책을 발표했다.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는 이름의 8.2 부동산 정책과 후속 정책들을 내놓으며,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선언했다. 박근혜가 ‘불어터진 국수’라고 표현한 부동산 3법의 규제완화 정책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면서 ‘다주택자들은 빨리 집을 파는 것이 좋을 것이다’는 투기 억제의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투기시장은 잠시 관망할 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만에 문 대통령의 주머니에 든 것이 빈주먹의 다짐뿐이라는 의심은 확증이 돼갔다. 2017년 12월 13일 ‘더 강력한 대책’을 넣어뒀다는 ‘주머니’를 빈주머니 뒤집듯 까뒤집는 정반대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상생하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임대주택 등록 유도라는 명분으로 임대사업자에 과도한 혜택을 줬다. 민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다주택자들에게 양도세 중과 배제, 종부세 합산 배제 등 과도한 세제 혜택과 함께 투기과열지구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을 80%까지 받을 수 있는 특혜를 줬다. 민간 임대주택 등록이 투기꾼들의 조세 회피처로 기능하도록 했다. 결국 8.2 규제대책 이후 4개월 만에 다주택자 규제를 무력화시켜, 다주택자들이 세제혜택을 노리고 추가로 집으로 집을 사는 투기를 불러와 미친 집값이라 불린 집값 폭등을 불러왔다.
그에 앞서서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역대 정권마다 발표하던 정권 발 주택공급 정책처럼, 문재인식 공급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공적임대주택’이란 용어를 사용해 공급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공공임대주택’과는 판이한 유형의 임대주택 정책이다. 공적임대주택은 박근혜가 만든 부동산 적폐인 ‘뉴스테이’(기업형임대주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뉴스테이는 임대주택 공급이 라는 명분으로 공공택지 및 금융지원 등 공공자원을 투입하면서도, 브랜드 분양아파트 건설사들에게 브랜드 임대주택을 건설해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해주는 대기업 특혜사업에 불과했다. 임대료도 높고 거주기간도 짧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일부 공공성을 추가하는 정도로 유지하면서 이를 이름만 바꿔 시행하고 있다.
집값 폭등이 정권의 지지율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자, 문재인 정부는 그 동안 사용에 미온적이던 종합부동산세 강화(여전히 미흡하다) 카드를 포함한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8번째 부동산대책으로 발표했다. 보수언론들은 9.13대책에 종부세 폭탄을 운운하며 거짓 선동을 했지만 한편에선 이 또한 98%의 국민과는 전혀 상관없다며 “차라리 종부세 좀 내 봤으면 좋겠다”는 자조 섞인 말들도 나왔다. 여전히 주택시장에서 구매력을 갖춘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방안으로서의 부동산 정책만 있을 뿐, 통제되지 않는 민간임대주택의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세입자들, 주거권이 박탈 당한 사람들의 권리 보장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공공임대 주택이 5%에 불과해 집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간임대주택의 세입자로 살고 있지만,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제도’ 등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대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 당론으로도 주장했고, 지난 촛불 정국 당시 임시국회에서도 촛불 민생 개혁 입법 과제라고 내세웠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의 주거권은 여전히 부동산에 저당 잡혀 있다.
“여기, 사람이있다”, 말하는사람들
정권이 바뀌었지만, 삶의 공간에서 불안해하거나, 쫓겨나고 내몰리는 이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4만 원 더 저렴한 고시원의 창문 없는 방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들이 죽어서 말하고 있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포구 아현동 재건축 지역의 서른일곱 박준경이 죽어서 몸부림 치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최소한의 주거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여전히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말과 몸부림과 안간힘은 거품(Bubble)을 꺼지지 않을 단단한 쇠공으로 착각하게 하는 모르핀의 환각에서 벗어나, 부동산 독점의 시대에 반기를 드는 ‘헬조선’ 탈출을 위한 몸부림과도 같을 것이다. 지금도 각자의 하늘 끝 망루에 올라 외치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과 몸부림, 안간힘에 대한 연대는, ‘부동산’이 아닌 우리의 ‘집’, 약탈당한 우리의 ‘주거권’을 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욕망을 끄집어내는 데서부터 우리의 탈출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노동과 권리가 토지와 건물을 독점한 자들에게 불로소득으로 헌납당하는, 극심한 부동산・자산 불평등과 독점의 사회에서, 우리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하기로 이 불평등과 독점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의 빼앗긴 집과 땅의 권리를, 약탈당한 도시 중심부를 되찾기 위해 말하자. 용산참사 10년, “여기, 사람이 있다.”(워커스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