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전 세계적으로 BTS(방탄소년단)가 인기라는데 다들 궁금해 한다. 대체 어느 정도로 대단하길래 인기가 있는 걸까. 미국 미디어에서는 비틀스의 충격을 회상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팬덤 때문일 것이다. BTS 팬덤 ‘아미’는 네트워크 곳곳을 누비며 그들의 아이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 자체로도 놀라운 현상이다. ‘BTS 좋아’하면서 단순히 감정을 표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BTS, 나아가 K팝의 미학적 지위를 제고시키기 위해 음악 콘텐츠라는 장(場) 내에서 투쟁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움은 비틀스 신드롬을 연상시키지만 그 양태는 독특함 또한 지니고 있다.
대체 성공비결이 무얼까. 이제는 대중들도, 심지어 업계 관계자들도 궁금해 한다. 빼어난 외모? 뛰어난 퍼포먼스? 자체적인 작사·작곡 능력? 청년 세대의 감수성을 후벼 파는 퍼포먼스? 뮤직비디오의 미학적 성취? 소셜 미디어를 통한 지구적 전파? 이 모든 것들은 BTS가 얼마나 훌륭한 아이돌인지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BTS가 어떻게 해서 글로벌한 영향력을 갖게 됐는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당장 이런 반문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아미들에게는 유감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지만) ‘요즘 K팝 아이돌이라면 그 정도는 다 하지 않나?’
국내의 반응은 언제나 그렇듯 호기심 투성이다. 돌이켜보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도 그랬다. 처음엔 그냥저냥 싸이의 음악이었지만, 미국에서 열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 열풍은 국내로 역수입됐다. 2012년 싸이의 서울시청 앞 광장 콘서트엔 (아무리 무료 공연임을 감안하더라도) 무려 8만여 명의 군중이 운집했고 그들은 싸이의 호령에 맞춰 떼창을 부르고 말춤을 췄다.
BTS 역시 싸이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애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2013년에 데뷔하고 해외에서 인기를 사기 전부터 저연령대를 중심으로 막대한 지지를 얻기는 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BTS는 싸이의 경로를 뒤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글로벌한 영향력은 싸이와는 분명한 구분점이다. BTS는 ‘원히트원더(한 곡만 알려진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점, 무엇보다 글로벌 팬덤을 동반하며 영향력을 확대·강화한 점 등 때문이다.
결국 BTS에 이르게 되면 팬덤을 빼놓고선 모든 설명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요즘 추세로 보자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대중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제법 놀라운 사실일 텐데, 요즘 잘 나가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제작자가 아니라 사실상 팬들에 의해 주도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세 번 네 번 보는 관객, 심지어 트와이스나 아이즈원 같은 몇몇 아이돌들은 팬들의 투표에 의해 멤버가 구성되고 데뷔가 확정됐다. 정확히 말해 BTS는 스타덤과 팬덤의 경계를 허무는, 적어도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어떤 정점 위에 서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오늘 소개할 이규탁의 「BTS :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소통 방식, 그리고 감정노동」은 제목 그대로 그 원천을 소셜 미디어와 감정노동에서 찾는 듯하다. 그의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BTS의 성공비결은 소위 ‘떡밥’과 ‘360도 마케팅’이라는 전일적 감정노동,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진 ‘성장 서사’에서 찾을 수 있다.
2. 이것은 오늘날 음악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셜 미디어 등 음악 외적인 부분까지 콘텐츠화해야 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3. 오늘날 청년들이 경험하는 문화적 압박을 비판하는 BTS의 메시지는 고스란히 발신자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측면도 있다.
대중음악에 대해 그나마 좀 안다는 사람들도 ‘빅 히트’라는 중소기획사가 어떻게 이 엄혹한 시장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못 궁금하다. 한국의 대중들은 SM, YG, JYP 출신이 아닌 이상 신인 아이돌에 좀처럼 시선을 두지 않는다. 결국 뜰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자금력은 필수조건이다. 일각에서는 기획사의 리더 방시혁의 업계 평판과 자금력이 BTS가 뜰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결국 뜨지 않으면 무소용이다.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위 아래> ‘팬 직캠’으로 이른바 ‘역주행’ 신화를 쓴 ‘EXID’, 멤버 유주의 빗물 미끄러짐 투혼으로 반등에 성공했던 ‘여자친구’처럼 말이다.
직캠, 리액션 동영상, 커버댄스 등이 스타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은 결국 팬이 스타를 만든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자, 이제 여러분이 기획사 관리자라면 이 시장에서 어떤 전략을 짜겠는가. 이규탁의 지적처럼 무수한 ‘떡밥’이 뿌려지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떡밥은 팬들이 직접 찾아내기도 하지만 그런 게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아예 처음부터 판이 깔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다수의 기획사들은 유튜브 등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 안무 연습 영상, 일상생활 등을 찍어 올린다.
‘360도 마케팅’이란 아이돌이 음악적 역량 외에 음악 외적 측면까지도 노출해야만 하는 현실을 가리킨다. BTS는 이러한 환경을 가장 극한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케이스로 손꼽힌다. 유튜브와 네이버 브이앱 등을 통해 BTS는 멤버 전원이 또는 멤버 개인별로 콘텐츠를 꾸준히 공급해왔다. 그리고 여기서 일정한 서사와 세계관이 창출되기에 이르렀다.
먼저 서사. “중소 기획사 소속으로 대형 기획사의 거대한 힘을 등에 업은 다른 그룹 및 그들의 팬들과의 경쟁, 굉장한 미남이나 교포 혹은 외국인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능력 있고 의욕적이며 더불어 소탈한 한국 청년들의 성장기” 그리고 아이돌씬과 힙합씬에서 겪는 이율배반적 고군분투 등이 팬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세계관. 유사-연애 감정이 각종 떡밥 및 서사와 만나게 되면 무궁무진한 파생적 이야기들이 창출되는 건 시간문제다. 팬들은 BTS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상징적 관계를 분석해내고 그런 식으로 음악 외적 콘텐츠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돼 간다.
물론 이들의 상업적·음악적 성공이 그 자체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방관하기는 곤란하다. 수많은 변수들이 돌출하면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정말로 비틀스처럼 괄목할 만한 음악적 성취를 이뤄낼 수도 있다. 뉴키즈온더블록이나 백스트리트보이즈를 넘어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갈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당장의 콘텐츠 산업 환경이 주의를 품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의 뒷모습을, 그것도 24시간 내내 노출해야 하는 아티스트의 감정노동이라는 쟁점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규탁 역시 BTS의 산업적 문법은 ‘글로벌한 차원의 연중무휴 감시 체제’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했다.
BTS와 더불어 360도 마케팅이라는 문법이 생긴 이래로 이제 더 많은 아이돌이 전일적인 감정노동을 기본적인 조건으로 삼게 됐다. 팬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팬에 대한 겸손과 헌신, 그리고 팬들의 요구에 응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나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태도’는 K팝 아이돌의 기본적인 덕망이 됐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아이돌은 더욱 더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음악 콘텐츠 생산이라는 창의노동 외에도) 팬들에 대한 감정노동 속으로 더 많이 갈아 넣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BTS는 한국 대중음악의 획기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더 많은 쟁점들을 남기는 질문이기도 한 셈이다.
(굳이 아미가 아니더라도) 이제 아이돌 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 역시 일정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 같다. 나의 아이돌이 착취당하는 건 불쌍해서 볼 수가 없다. 나에겐 더 많은 떡밥이 필요하다. 나의 아이돌을 굴리기만 하는 기획사 나쁘다. 떡밥도 안 내놓는 기획사가 일해라. …. 언제나 그래왔듯 한국 대중음악 산업은 또 하나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다음에는 말단의 누군가에게 사회적·경제적 리스크가 쏠리지 않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