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현장에 나가면 꼭 듣는 말이 있다. “다치니까 여자들은 뒤로 빠져요.” 일일이 대꾸하기 귀찮아 무시하면, 굳이 다가와 몸을 밀친다. 한창 경찰과 충돌하는 와중에 들리는 남성들의 다급한 외침. “남자들이 앞에 서서 밉시다!” 아, 분노보다는 민망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도대체 왜 집회까지 나와 ‘흑기사 코스프레’를 하고 있단 말인가!
시위 때 기똥차게 싸움을 잘하는 여성 활동가 A 씨. 남성 시위대의 ‘뻘 매너’에 코웃음을 치곤 한다. “아니, 자기들끼리 민다고 그게 밀리겠냐고.” 경찰 방패 백날 밀어 봤자 날만 샌다. 방패는 미는 게 아니라 뜯어내는 게 효율적. 여성들도 두세 명 달라붙으면 경찰 방패 하나쯤은 뜯어낼 수 있다. 그리고 경찰과 대치 중에 피곤이 몰려오면 경찰 방패에 기대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 경찰들의 팔뚝 힘을 빼놓는 전술이다. 그래야 충돌이 시작될 때 수월하게 방패를 빼앗을 수 있다.
여성들도 싸움을 한다.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농성을 하고, 93일간의 최장 기간 단식도 한다. 용역 깡패와 매일매일 대거리를 하기도 하고, 사지가 붙들려 끌려 나오기도 한다. 환갑의 여성 노동자들은 노래방 기계를 빌려다가 작업장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청국장을 끓여 대며 관리자에게 ‘빅엿’을 먹이는 투쟁을 한다.
날이 갈수록 온건해지는 시위들. 더 이상 화염병도, 쇠파이프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거대한 물대포를 뚫고 차벽을 넘어야 한다. 이제 힘센 남성 몇 명으로는 승산 없는 싸움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물대포와 차벽 앞에 서면 똑같이 나약해진다.
“집회에서 ‘여성은 빠져라’는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랜 시간 투쟁 사업장을 이끌며 빡센 투쟁을 해 온 여성 노동자 B 씨가 대답했다. “그럴 때는 일관되게 답변합시다. ‘함.께.하.자’고요.”
윤지연 기자/ 정운 기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