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면 모두가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문재인 후보는 사회 연대노동포럼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보수계의 새로운 아이돌로 떠오른 안철수 후보는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친노동 발언을 속속 내놓는다. 구로공단 출신의 심상정 후보의 선거 구호는 아예 ‘노동이 당당한 나라’다. 과연 ‘친노동’을 자임하는 유력 주자들의 노동공약이 우리의 현실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워커스》의 노동무식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이번 대선은 야당 간의 싸움이잖아요. 그리고 야당들은 친노동 정당들로 알려져 있고요. 만약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경우 노동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변화가 있겠죠.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지 않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아예 노정 관계나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노조를 파괴하고 활동을 차단하는 게 정부의 노동 정책이었죠. 지금은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는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주요 정책에 당사자들과 협의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규모 축소든 차별 해소를 위해서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변화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나 노동자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개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요. 항상 해왔듯이 새 정부가 노동 친화적인 정책을 이행하도록 투쟁도 준비해야 할 겁니다. 그 변화에 우리가 넋 놓고 있다가는 언제든지 자본의 역공을 당할 수도 있죠.(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노동계가 요구하는 가장 시급한 노동 개혁 과제는 뭔가요? 그리고 이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우선적인 과제로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 보장을 꼽을 수 있어요. 촛불이 헌법 제1조를 살려냈듯이 이제 헌법 제33조 노동3권을 살려내야 할 때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서는 노조파괴와 탄압, 구조조정과 부당한 해고에 맞서 풍찬 노숙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합니다.
각 당 후보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에요.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실현이 필요한데, 문재인과 심상정 후보는 2020년에나 1만원으로 인상한다고 해요. 안철수 후보는 2022년을 목표로 하는데 사실 박근혜 정부 때 인상 속도와 비슷하죠.
비정규직 문제는 규모 축소를 위한 ‘입구’ 규제가 중요 합니다. 문재인, 심상정 후보는 둘 다 상시지속업무를 정규직화 하고, 사용사유를 제한한다고 했어요. 이 점은 긍정적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사용사유 제한을 유보해서 대단히 아쉽죠. 노동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특수고용,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이 중요해요. 문재인, 심상정 후보는 노조법 개정에 동의한다고 밝혔지만, 안철수 후보는 특별법을 제정해 단체결성권과 협의권만 보장한다고 해요. 상당한 문제가 있죠.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 금지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얘기는 하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노조할 권리는, 안철수 후보는 소극적이어서 대단히 아쉬워요. 문재인이나 심상정 후보는 전체적으로 산별 교섭 제도화나 단체 협약 효력 확장제에 동의하고 있다고 보죠. 전교조, 공무원의 법외 노조 철회는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봐요.(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대선 후보들의 노동개혁 정책들을 보면,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를 위해 정규직의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해요. 정규직이 많이 양보를 하면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될까요?
그러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해요. 돈이 없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기업이 재원을 마련하면 비정규직 고용을 보장할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니에요.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돈 때문이 아니라 효율성을 중시한 국가정책의 문제로 양상된 것이죠. 공공부문의 가치를 무엇으로 삼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현재는 효율성을 내세우며 인건비를 줄이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양보하더라도 이 양보 분이 비정규직에게 돌아가지는 않을 거예요. 효율성을 이유로 다시 삭감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공공부문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이상 양보는 양보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에서도, 돈이 없어서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아니에요. 단기 이익을 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중소업체는 정규직의 노동조건도 그리 좋지 않잖아요. 원청이 단가를 후려치고 하청 업체를 경쟁시켜 지배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조건이 악화해 왔어요. 만약 중소기업 정규직이 양보하면 어떻게 될까요? 원청은 또 다시 단가 인하 압력을 행사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우리 사회 산업구조가 수직계열화 돼있고 원청의 수탈 구조가 일상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비정규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이런 처지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양보의 결과가 실제로 어떻게 수렴될지를 잘 못 보기 때문이에요.(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정권이 바뀐다고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전 부분에 만연한 불법파견, 간접고용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기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요?
비정규직을 금지한다든가 위반 시 강력한 처벌 조항을 도입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제도 개선을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업의 힘이 워낙 거대해서 어디로든지 다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겁니다.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 원청이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 권리.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노동 3권을 명확하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대선 후보 대다수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한 쪽에서는 반감도 들어요. 그리스는 공무원 연금 부담으로 경제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오고, 국민들도 공무원과 공공부문에 세금 쓰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는 꼭 필요한 건가요?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에요. 지금 일자리가 부족한데 청년이나 많은 구직자들을 위해 민간과 공공 모두가 일자리를 늘려야 하죠. 원래는 민간이 더 많이 늘려야 하지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고용시장에 책임 있는 정부가 먼저 일자리를 늘려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에 비해 공공부문이 과도하게 작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죠. 공공 부문이 작다는 것은 서비스가 평균 수준에 미달한다는 얘기에요.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를 OECD 평균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증대해야 한다는 겁니다.(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많은 부담이 있지 않을까요? 학교비정규직이나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진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어렵게 시험 쳐서 들어온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부딪힐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
재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정부 예산을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쓰자는 것이기 때문에 사대강이나 해외 자원 개발 같은 소모적인 예산과는 다르죠. 대선 후보들도 재벌 개혁 등을 통해 노동 친화적인 일자리 정책 재원을 마련해야 할 거예요.
기존 공공부문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화 한다는 것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일자리도 늘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제한을 두거나 입사시험 같은 것을 새로 도입한다면 오히려 고용불안이나 해고가 늘어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오히려 노동자들끼리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총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할 문제입니다.(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