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세입자들의 난亂
정은희 기자
최근까지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한 89세 호세 라코스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한때 스타일리스트였다. 니나 시몬, 제임스 브라운과 마일즈 데이비스 등 걸출한 미국 재즈 가수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그의 집을 종종 방문했다. 그가 고령인데다 병세가 악화돼 더는 치료가 무의미해지자 주치의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집 임대료는 한 달에 3700달러(약 450만 원)로 뛰어올랐다. 결국 그는 20년 동안 살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라코스비의 사례처럼 대다수 세입자들은 부동산 개발로 임대료가 오르면 쫓겨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값비싼 돈을 내야 했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에선 참다못한 세입자들이 임대료 인상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공영 주택 세입자들이 임대료 삭감 운동인 일명 ‘미드타운을 구하라’ 행동에 돌입했으며 영국에선 런던칼리지 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 기숙사 학생들이 기숙사비 삭감 운동을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미드타운 아파트 단지(Midtown Park Apartments)는 1960년대 다른 지역에서 쫓겨난 빈민들이 모여들면서 시 당국이 만든 공영 주택이다. 시 당국은 수리비가 많이 들어간다며 2년 전 한 비영리 재단에 이 단지를 위탁했다. 그러나 이후 임대료는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300% 이상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당국이 정한 인상률 상한가를 넘는 임대료가 부지기수였다. 이 때문에 아파트 단지의 65가구 세입자들은 논의 끝에 2015년 8월부터 임대료 증가분 납부를 거부하기로 결정했고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집이요? 세입자에게서 현금을 갈취하기 위한 수단이죠.” ‘미드타운을 구하라’를 조직한 이 지역 거주자 제이 마이토프는 “부동산 뚜쟁이들이 힘없는 지역 사회 주민들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되찾을 겁니다”라고 장담한다. 미국에서는 포틀랜드 등 다른 지역 활동가들도 샌프란시스코 미드타운의 사례를 쫓고 있다.
“부자만 공부할 수 있나요? 기숙사비 낮춥시다”
영국에서도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며 싸우는 이들이 있다. 런던칼리지 대학 학생 150여 명은 기숙사비 40%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런던칼리지 대학 기숙사비는 2009년부터 급격히 상승해 지난 6년 동안 56%나 올랐다. 현재 이 대학 기숙사비는 주당 158.97~262.43파운드(약 27~45만 원)에 달한다. 기숙사비로만 월 100만 원에서 200여만 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기숙사비가 오르면서 대학은 매년 1600만 파운드(275억 원)를 벌었지만, 치솟는 기숙사비에 낡은 시설과 바퀴벌레까지 득실거리면서 학생들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급기야 지난해 1월 런던칼리지 대학 기숙사 2개 동에 사는 학생들이 기숙사비 삭감 운동을 시작했고 4개월 후인 2015년 5월부터 납부를 거부했다. 학생들은 대학 본관 앞에 텐트를 치고, 서명 운동과 피켓 시위 등을 벌였다. 학생들은 다양한 항의 행동으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40만 파운드의 보상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납부를 거부한 기숙사비는 모두 25만 파운드, 약 4억 3000만 원에 달한다.
기숙사비 삭감 운동에 참여하는 19세 니마 머리(예술사 전공)는 “지난 학기에는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해야 했어요. 부자가 아니면 공부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도 어려워요”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생 데이비드 달본은 “기숙사에 사는 이들은 학생이지 소비자가 아니”라면서 “대학은 학생들을 완전히 벗겨 먹고 있다”고 꼬집었다. BBC에 따르면, 런던에서 학사 3년 과정을 졸업할 경우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포함한 생활비로 평균 5만 3000파운드, 한화로 약 9100만 원의 빚을 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