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을 원했는데, 수술이 돌아왔다
신나리 기자 / 사진 이승훈
“턱 끝 길이 축소하시구
요, T 절골 수술하시면 돼요.”
“저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아, 네. 앉으세요. 턱 끝 길이 축소하시구요, T 절골 수술하시면 돼요.”
진단은 빨랐다. 조막만 한 얼굴에 오뚝한 코, 늘씬함을 뽐내고 있는 상담실장은 복잡할 것 없다는 식이었다. 반짝이는 조명을 익숙하게 받는 연예인 옆에 선 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얼굴처럼만 된다면, ‘시키는 대로 할까’ 하는 마음이 5초 정도 들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진단을 내렸지만, 그는 다시 내 얼굴을 뜯어봤다. “잠깐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세요. 저를 정면으로 봐 주시고요. 왼쪽 한번 볼까요.” 주문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 정면을 그에게 맡겼다. 어떤 부분의 시술이 있는지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1차 견적(?)을 내는 것이 급했을 테니 별 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 ‘위클리 매드 코리아’(위매코)는 성형 수술이 주제다. 젊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탓할 생각은 없다. 나부터도 가득한 욕망이다. 문제는 각자의 미가 아니라 일반화된 미, 정형화된 미를 강요하는 시선에 있다. 나대로 예쁘게 살아갈 기회를 박탈하는 건 나 스스로가 아니지 않나. 조금만 높이고 조금만 깎으면 완벽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시선. KS 마크가 찍힌 공인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쉽게 지적하고 가벼이 던지는 조언을 가장한 화살.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자존감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더 쉽지 않은 일 아닌가.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20대 남녀 459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성의 경우 ‘주변의 권유’로 성형을 결심했다는 응답이 23.9%로 1위를 차지했다. 여성은 ‘타인 외모 부러움’이라는 응답이 44.5%로 1위에 올랐다. 위매코를 시작하기 전, ‘성형 붐’의 중요한 문제는 생긴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 이 사회와 ‘시선의 폭력’에 있다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미를 보완하고 싶다면?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소 느끼는 아쉬움을 시술 혹은 수술로 보완할 수 있다면? 한두 가지의 불만이 늘 발목을 잡았는데, 이를 시술이나 수술로 보완할 수 있다면? 성형외과에서 내가 원하는 정도의 보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과도하지 않고 똑같지 않을 수 있는 ‘정도껏’의 보완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총 네 곳의 성형외과를 찾았다. 지인들의 추천과 인터넷 후기를 참고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빌딩 전체가 성형외과인 A 병원, 재수술이 많지 않고 작고 알차기로 소문난 B 병원,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한다는 C 병원, 광고와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D 병원이다. 다행히 이들 병원은 신사역 언저리에 다 모여 있었다. 이 병원의 건물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저 병원으로 가는 식이다. 새삼 전국 성형외과의 35%인 400여 곳이 서울 강남구에 밀집해 있다는 통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깎으시고 넣으시죠”
평일 저녁, A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예약하고 갔지만 20분을 기다려야 상담실장을 만날 수 있었다. 실장을 만나기 전 거쳐야 하는 과정도 있다. 내원 기록 카드에 어떤 경로로 병원을 찾았는지 묻고 간단한 신상 정보를 쓰는 것이다. 이후 어떤 수술 혹은 시술을 원하는지 체크하는 부분이 있었다. 병원마다 조금씩 항목이 다르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눈 / 코 / 동안 성형 / V라인 성형 등 관심 있는 항목을 체크하면 됐다. 대기실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성형 뒤 새로운 삶을 사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짧은 드라마로 구성돼 반복해 흘러나왔다. 코에 붕대를 감싼 두 명의 중국인과 그 영상을 바라봤다.
상담실장은 노련했다. 턱 끝 길이 축소와 T 절골을 권한 그는 수술에 대해 잘 못 알아듣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은 보통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병원을 찾는데, 성형할 생각이 있기는 하냐는 타박이었다. 1차 견적을 생각보다 빨리 말하는 그에게 어버버 하고 있었다. 성형 수술의 최종 목적을 묻는 그에게 “전반적으로 좀 부드럽고 어려 보이고 싶다”는 속내를 고했다. “그럼 깎으시고 넣으시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턱을 깎고 지방을 넣고 턱 끝의 보형물을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1100만 원이면, 만족할 만한 동안으로 20대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말도 속삭였다. 다행히 부가 가치세는 포함된 가격이었다.
B 성형외과는 다른 진단을 내놨다. 이곳에서는 상담실장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 상담실장은 내원 카드와 성형의 목적만을 간단히 묻고 구체적인 것은 의사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의사는 얼굴을 좀 더 꼼꼼히 봤다. 여전히 오른쪽과 왼쪽 얼굴 면을 확인하고 내 턱을 만져 보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경우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양악입니다. 저도 경험이 많지 않으면 권하지 않아요. 다른 데도 방문해 보셨죠? 거기서는 뭐라던가요?”
“아 네, 뭐 턱을 깎으라고….”
“효과가 확실한 걸 권하지는 않았군요. 자, 이 사진 좀 보시죠. 턱을 깎고 턱 보형물을 넣으면 개 턱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한 여자 연예인의 사진을 보여 주며 개 턱의 가능성에 관해 설명했다. 개 턱은 보통 길게 곡선형으로 턱뼈를 많이 깎아 아래턱의 각이 사라지는 경우를 말한다. 턱을 친다고 다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나의 강한 인상이 하관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살짝 돌출된 입이 문제이니 양악밖에 답이 없다는 투였다. 양악 수술은 교정과 함께 진행되니 지방 이식을 더하면 얼굴이 ‘전진’한다는 설명이다.
“전진이요?” 얼굴이 전진한다는 말이 재밌어 ‘풉’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전진은 실제 의학 용어입니다. 사람 얼굴은 전진해야 입체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이 되는 겁니다. 이마나 턱 한 곳만 전진하면 이상하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전진, 그 전진을 아름답다고 하죠.” 전진이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큰 단어인 줄 몰랐다. 나의 전진하지 않는 얼굴이 큰 문제인 줄도 몰랐다.
“선생님, 저는 사실 지방 이식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보세요. 볼에 지방을 넣는다 칩시다. 그렇다고 얼굴이 부드러워 보이지 않아요. 그냥 둥그렇고 빵빵할 뿐이에요. 반복해 말씀드리지만, 저도 양악을 막 권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열 번 말하면 그중 한 분만 하세요. 그만큼 무서운 수술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지방보다야 더 효과가 확실한 수술이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결국 그는 양악과 교정, 지방 이식으로 내 얼굴의 견적을 냈다. 삼십 대에 턱을 깎는 수술이라 더 어린 나이에 비해 뼈가 아무는 정도나 회복이 더디지 않을까 걱정을 드러냈더니 그는 한마디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제가 얼마 전 양악 수술한 환자 나이가 54세였습니다.”
“지적이 제 직업병입니다”
C 병원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강남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남에서 이런 전경을 보려면 얼마나 비싼 음식점, 혹은 카페를 가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조금 부끄러웠다. 시원하게 뚫린 창과 아늑한 카페처럼 느껴지는 소파,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국 환자보다는 중국 환자가 많았다. 중국 환자 4명과 강남의 전경을 감상했다.
상담실장은 친절했다. 그들은 어느 항공사의 제복과 비슷한 옷으로 맞춰 입고 있었다. 그는 나를 살피더니 일단 CT를 찍자고 했다. 자세한 상담은 의사와 하겠지만 3D CT를 찍어야 선생님과 좀 더 꼼꼼한 상담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비용은 무료였다. ‘지잉’ 하는 기계음이 몇 번 울리고서 대기실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그는 내 얼굴보다 CT를 더 많이 바라봤다. 진단 역시 명확했다.
“부드러운 얼굴을 갖고 싶으시다고요? 턱이라는 게 사람의 인상을 많이 좌우합니다. 볼이 빵빵하다고 얼굴이 부드러워지는 게 아니에요. 자 보세요. 여기 걸린 사진들. 다들 얼마나 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지 아십니까. 저는 수술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더 확실한 만족을 원하신다면 제일 좋은 선택지를 권해 드리는 겁니다.”
“좋은 선택지를 택하면 제가 많이 바뀔까요?”
“삶이죠. 극적인 효과는 극적인 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
그 역시 양악을 권했다. 3곳의 병원, 각 병원마다 상담실장과 의사를 거치면 결국 6명에게 최소 30분 이상씩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친 건 나였다. 수술을 권하는 의사를 붙들고 “아니 선생님, 제가 30년을 이 얼굴로 살면서 사실 큰 콤플렉스는 없었는데요. 제 얼굴이 그 정도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움찔하며 몸을 뒤로 하고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저는 김태희를 보고도 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게 제 직업병입니다.”
D 병원도 비슷했다. 내가 먼저 내 문제점을 고백할 정도였다. “선생님 저에게 턱이나 양악 권하실 거죠?”라고 물었을 때 상담실장은 끄덕였다. “둘 다 쉽지 않은 수술이지만, 상대적으로 턱은 어렵지 않아요. 2주면 사회생활도 가능합니다.” 그녀는 다정하게 턱 수술의 장점에 관해 설명했다. 물론 보형물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하셔도 휴가를 다 쥐어짜면 2주 정도는 가능하시지 않으세요? 그 시간이면 충분해요. 큰 부담 없으실 거예요.” 내 휴가까지 고려한 그녀는 수술 가능한 날짜와 시기를 물었다.
결국 진단은 다르지 않았다. A 병원에서 D 병원까지. 기껏해야 턱에서 양악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다. 대동소이한 진단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쉬운 점이야 있지만, 큰 불만 없이 살았던 내 얼굴을 바라봤다. 시술로 조금 더 부드럽고 가능하면 어려 보이고 싶은 욕망이 치른 대가는 처절했다. 사실 자존심이 상했다. 병원에서 들은 내 최대의 위로라고는 “눈, 코 베이스는 참 좋으신데요” 정도였다. 정확한 진단을 들으러 굳이 병원을 찾아 놓고 상처받을 게 뭐 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적당한 보완을 꿈꾼 것이 바보 같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깎고 썰고 넣었을 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들의 설득 앞에서 혹했던 것도 사실이다. 비포와 애프터. 나와 비슷한 환자들의 사진을 놓고 극적인 변화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성형외과에서 확인한 것들은 ‘예뻐지면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반복적인 광고와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눈, 코, 입의 배열. 전진하지 못한 외모에 대한 확인이었다.
(워커스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