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 덕분입니다’라는 담담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달력은 다름 아닌 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내놓은 2016년 달력이다. 달력에는 조합원들의 글과 그들의 투쟁 현장을 담은 정택용 사진가의 사진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기념일이 담겨 있다.
사실 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 어떤 작업보다 숙연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었고 어설픈 디자이너의 욕망으로 그들의 진정성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정도 디자인이면 나도 하겠네’라고 이죽거려도 크게 대꾸할 마음도 없었다. 디자인을 응당 화려한 표현의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디자인은 때로 있는 그대로를 오롯히 드러내고자 부재(不在)의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동지들 덕분입니다’를 작업하는 동안 디자인은 늘 부재의 자리에 서 있었다. 되려 달력 첫 장에 쓰인 조합원들의 글은 완벽한 디자인에 가까웠다. 내가 하는 디자인은 그저 그들의 기록과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담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껍데기에 불과한 디자인을 두고 말하기가 초라한 까닭에, 조합원들의 마음이 담긴 글로 남은 이야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동지들 덕분입니다.
사실 우리는 늘 두려웠습니다.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덩치가 산만한 용역 깡패들과 싸워 나갈 때, 헬기에서 쏟아져 내리던 최루액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주먹만한 볼트가 머리를 향해서 날아올 때 우린 두려웠습니다. 이길 수 없을 거라며 밤사이 몇십 명씩의 동료들이 공장 밖으로 나갈 때, 사측에서 민주노총도, 금속노조도 너희들을 버렸다고 밤새도록 선무 방송을 할 때도 우린 두려웠습니다. 경찰특공대가 동료들을 짐승처럼 곤봉으로 내리치고, 방패로 찍고, 발로 걷어찰 때, 이제 버티면 죽겠다는 공포가 공장 안팎을 뒤덮을 때 참 두려웠습니다. 공장 밖으로 쫓겨난 뒤 빨갱이, 폭력 시위자, 불법 파업이라는 낙인 때문에 죽어 간, 28명의 죽음을 목도 할 때마다 두려움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 죽음들이 이어질수록 우리 싸움의 미약함이 두려웠고, 방법을 찾기 위한 몸부림 또한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해고되고 지난 7년 동안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싸워왔던 그 지난 일들이 문득 후회스러워질까 봐 우린 늘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싸움을 포기하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강박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었고, 해고자들의 삶을 응원하는 이들 또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수많았던 두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찾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 응원과 연대의 힘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동지들 덕분입니다.
모든 쌍용차 해고자들이 공장 문턱을 넘을 때까지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껏 응원해 주시고 연대해 주신 것처럼 쌍용차 문제 해결에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마지막 해고자가 공장 문턱을 넘는 날 동지들과 함께 승리보고대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