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청각 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는 누적 관객 수 460만 명을 기록했지만, 그 영향력은 천만 영화들을 훌쩍 넘어섰다. 2011년 이 영화가 개봉하고 대한민국은 장애인 시설의 비리와 인권 유린에 공분했다.
정치권과 행정 기관도 그 공분에 반응했다. 국정 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한 번씩은 이 문제를 언급하며 시설 인권 유린에 대해 지적했고, 장애인 생활 시설 등에 대한 인권 실태 조사가 강화됐다. 인권 유린 시설에 대해서는 엄벌하겠다는 대책도 나왔다. 정확한 통계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당시 사회 복지와 관련 종사자들도 자의 반 타의 반 한 번씩은 이 영화를 봤다. 당시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아래 말과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 절대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감시 기능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 나갈 것.”
이 말은 지난 2011년 10월 7일 당시 김완주 전라북도지사가 도내 장애인 생활 시설장들과 함께 <도가니>를 단체 관람 하고 나와서 밝힌 말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1년 후 장애 여성 수 명을 원장 2명이 수 년간 성폭행한 전주 자림복지재단 성폭력 사건이 밝혀졌다. 자림원 관계자들은 김 전 지사와 함께 <도가니>를 보기도 했다. 자림복지재단과 전라북도는 현재 법인 취소를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전라북도에서 영화 <도가니>는 현재 진행형이다. ‘전주판 <도가니>’ , ‘ 남원판 <도가니>’, ‘익산판 <도가니>’ , ‘ 김제판 <도가니>’ …. 복지 시설에서 인권 유린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대책들이 발표되지만, 제2의 <도가니>는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5일 저녁 김병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를 만났다. ‘전주판 <도가니>’ 자림성폭력대책위 집행위원장과 ‘남원판 <도가니>’ 평화의집전국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노동 학대 피해자들의 전원 조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다. 김병용 활동가는 전북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시설 인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전북시설인권연대 초대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발전한 전북시설인권연대는 김제 영광의 집 등 영화 <도가니> 흥행 이후 제2의 도가니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그가 처음 시설 문제에 발을 디딜 당시에는 김제 영광의 집 성폭력 사건이 이슈였다. 그로부터 굵직한 시설 문제는 해마다 터졌다. 기독교 김제 영광의 집 성폭력, 예수재활원 아동 학대, 영산복지재단 공금 횡령, 사랑원 장애 아동 상습 폭행, 자림복지재단 내 시설 성폭력,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예수보육원 아동 학대 및 유기, 익산 미인가 시설 지적 장애인 착취, 마음건강복지재단 인권 침해, 남원 평화의 집 폭행 사건.최근 5년간 전북에서 벌어진 장애인 및 아동, 노인 시설에서 벌어진 <도가니>와 같은 사건들이다. “왜 ? ”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가장 먼저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왜 시설에서는 이렇게 인권 유린이 반복해서 벌어지는가?
“법과 제도적으로는 사회 복지 법인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공공의 영역인데, 이게 법만 그렇게 되어 있지 원장과 운영하는 법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도 시설은 원장 혹은 법인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간섭을 못 하고 개입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을 해요.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기준으로 내용이 구성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자기가 주인이니까 자기 기준으로 만드는 것이죠. 시설 생활인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기 기준에 맞게 돈도 쓰는 거죠. 시설 생활인들에게 쓰라는 목적으로 보조금을 받고 다른 목적으로 쓰고… . 물론 내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까 잘못된 것은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이 기부해서 시작을 한 것이니까 관여를 하지 않고, 괜히 하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 그렇게 시설에는 높은 담이 생기는 것이죠.”
목사인 원장이 여성 장애인을 성폭행하고 임신을 할까 봐 자궁 적출 수술을 시키는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발생한 김제 기독교 영광의 집. 이곳에서 김병용 활동가가 들은 말은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집을 조사하려고 하느냐 ? 우리 장애인들은 내가 잘하는데 왜 참견을 하냐?”였다. 이 말은 다른 사건의 시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사유 재산 혹은 이윤을 내기 위한 기업. 시설 내에서 학대와 인권 유린, 횡령 등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지만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면 시설은 곧 재산이라는 점이다. 이런 생각이 시설을 곧 치외 법권으로 만들어 버린다. 치외 법권 시설 앞에서 행정은 무기력하다.
“행정도 지금의 구조 아래 길들어 있어요. 종교가 시설 관련 복지를 장악하면서 많은 것을 위임했죠. 행정이 나서서 복지 시설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 보겠다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자신들의 담당 지역의 시설 규모를 파악하고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그것에 맞게 지급하면 끝.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봐요.”
남원 평화의 집 폭행 사건은 지난 5월 세상에 공개됐다. 사회복지사들이 발달 장애인들을 폭행하고 학대하는 일이 CCTV에 포착됐고 세상에 알려졌다. 5년간 이런 일이 있었고 CCTV로 확인된 폭행과 학대만 100건이 훌쩍 넘었다. 그 5년간 남원시는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약 8억 원의 보조금이 매년 들어갔고 시설 점검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지난 6월 초, 피해자 가족들이 평화의 집을 방문하자마자 발견한 것은 유통 기한이 한참 지난 식품들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몇 차례 점검했다고 밝힌 남원시청 공무원들은 그 식품들을 처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은 상상 이상이다. 남원 평화의 집은 사건 이후 현재까지 약 20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머물고 있다. 폭풍처럼 들쑤셔진 자리를 메꾸기 위한 후속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시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등 발표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병용 활동가는 가장 무력감을 느낄 때가 바로 피해자들에 대한 후속 대책을 볼 때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복지 시설 인권 유린을 목도한 김제 영광의 집의 피해 여성 장애인들은 시설 폐쇄와 함께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 거처를 옮겼다.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체. 2년 후인 2013년 5월 김제 영광의 집 피해자들은 전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 유린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 전남의 한 시골 농장에서 혼자 돼지 2, 500마리를 키우며 노예 생활을 하다가 SBS <긴급 출동 SOS>를 통해 구출된 한 피해자도 전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4년을 살았다. 그는 여러 차례 자립 생활을 요구했지만, 연구소는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버렸다.
“한국 사회 복지 시설은 자본주의가 만든 산물인 것 같아요. 점점 복잡해지고 효율과 빠른 것만 찾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불편한 존재로 낙인이 찍힌 것이죠. 이 사회가 함께 살 방법을 찾기보다는 이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어요. 행정에서 문제가 된 시설의 피해자들을 또 다른 시설로 보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돈을 주고 맡기는 것이죠. 자신들이 어떤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서 자립을 도울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그것이 더 빠르니까요.”
그런 점에서 김병용 활동가는 이 사회가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와 같이 사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속도와 돈을 중하게 여기는 시스템에서 복지 시설 인권 유린은 같이 사는 고민이 없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 시설과 행정이 장애인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탈시설과 자립을 위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복지 시설 인권 유린은 없어지기 힘들 거예요. 한 인권 유린 시설에서는 지적 장애인의 손과 발을 묶어 관리했어요. 사회복지사는 자해가 심해 묶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을 했죠. 묶이려고 시설에 입소한 것도 아니잖아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건물 운영비도 주는 것인데… .제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적 장애인이 보이는 행동에는 반드시 그 이유와 배경이 있어요. 특히 임팩트한 현상은 더욱 그렇죠.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니고, 자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그 시설에서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그 시설로는 충족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탈시설과 자립을 위해 사회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병용 활동가는 “일상에서 서로가 만나서 듣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립 생활 센터가 지역마다 있고 그곳에서 자립에 대한 정보를 주기도 하죠. 그런데 그보다 하루하루 같이 있으면서 서로 묻고 정보를 나누는 것을 통해 더 많이 알아 가는 것 같아요. 그동안 자립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요. 그렇게 이 사회와 융화되어 가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