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경 홈리스 노동팀
“홈리스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거리에서 매일 먹고 자고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이 필요할까 싶다가도, 담배 피우고 술도 마시는 거 보면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은 아닌 듯하고. 그럼 일을 하나? 저렇게 맨날 술만 먹고 씻지도 않고 도대체 일을 할 수 없어 보이는데 돈은 어디서 나나? 상상하기 어렵다. ‘벌어먹고 사는 존재’로서의 홈리스라니….
일요일 새벽 6시 20분 봉천역
김 아저씨를 만나기로 했다. 일명 짤짤이(‘꼬지’라고도 한다). 교회를 돌며 교회에서 제공하는 구제금이나 음식물 등의 지원을 받는 것을 뜻하는 홈리스들 사이의 은어다.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모른다. 구제금을 동전으로 받는 경우가 많아 걸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난다 해서 짤짤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주머니에 돈을 꽂아 준다 해서 꼬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홈리스들 사이에서는 유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수입원인 듯하다. 오늘 하루 김 아저씨의 짤짤이에 동행하기로 했다.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다. 교회 안에 들어갈 것인지, 밖에 있을 것인지. 동행만 할지, 아니면 나도 구제금을 받을 것인지. 구제금을 받는다면 이런 옷차림은 괜찮은 것인지. 씻지 말고 나올 걸 그랬나. 다른 홈리스들이 혹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을지…. 이 모든 걱정이 바로 ‘나라는 존재’와 ‘홈리스라는 존재’ 사이의 거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나는 홈리스가 아니지만, 오늘 하루 홈리스가 되어 보려고 하지만, 홈리스라 여겨질까 걱정이고, 홈리스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이내 다른 불편함들이 잠식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짤짤이도 노동이다? 걷고, 뛰고, 다시 걷고, 뛰고 엄청난 육체노동!
첫차를 놓친 아저씨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7시 예배에 맞춰 가기 위해 우리는 봉천동 고갯길을 뛰다시피 했다. 봉천동은 재개발로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반쯤 부서진 건물들 사이를 지나 꼭대기에 올라서니 다시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다닌다. ‘아~ 마을버스가 있는데…’ 하는 원망도 잠시, 마을버스를 탈 수 없는 아저씨 처지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원거리를 이동할 때는 지하철 같은 무료 시설을 이용하고 한 지역 내에서는 대부분 이렇게 걸어 다닌다.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달려 교회에 도착했다. 이미 예배는 시작했다. 큰 교회에 성도들은 100여 명쯤 돼 보였고, 그중 3분의 2는 홈리스들로 보였다. 예배당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다른 홈리스들 사이에 섞여 버린 김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다. 잘 모르는 찬송가를 몇 곡 부르고, 비몽사몽 떠도는 목사님 말씀과 마음 편히 졸 수 있는 기도 시간이 지나자 예배는 끝났다. 앞에서부터 아저씨들이 차례로 줄을 서 무언가를 받아 다시 줄지어 교회를 나선다. 교회 밖에서 아저씨가 보여 준 1,000원. 마음의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우물쭈물 하다가 모든 순서가 끝나 버리고 말았다. 나는 왜 그토록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던가. 지하철 첫차를 타고 고갯길을 넘어 한 시간 남짓의 예배를 본 뒤 김 아저씨는 1,000원이 생겼다. 나는 1,000원을 받지 못했다. 첫 번째 교회는 실패다.
보통 교회는 일요일에 네 번의 예배를 본다고 한다. 교회마다 시간은 다르지만 대체로 오전 7시, 9시, 11시, 오후 3시 이렇게 네 번의 예배를 보는 모양이다. 아마도 아저씨는 이 시간에 맞춰 교회를 찾아다니는 듯하다. 예배 보는 시간 1시간, 이동 시간 1시간 이렇게 2시간씩의 차이를 두고 움직인다.
봉천동의 교회를 나와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흑석동으로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또 한참을 걸었다. 이 길을 다 외우고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 골목골목을 지나니 주택가 사이에서 갑자기 큰 교회가 하나 튀어나왔다. 이곳에서는 들어갈 때 이름을 적으면 입장권 같은 것을 나누어 준다. 이것이 있어야만 나갈 때 돈을 준다고 했다. 김 아저씨가 들어가며 당부한다. “입구에서 이름 적고, 노란색으로 된 거 받아가지고 2층으로 올라와야 돼.”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입구에서 이름을 적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일반 성도들은 1층으로 들어간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노란색으로 된 표식을 든 아저씨 30여 분이 앉아 계신다. 제법 더웠는데 선풍기만 연신 돌아간다. 1층은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 같은데…. 몇 곡의 찬송가, 말씀, 기도 시간이 끝난 뒤 양복을 차려 입은 젊은 청년이 와 노란색 표식을 확인하며 돈을 나누어 준다. 돈을 받은 아저씨의 손이 빠르게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2,000원이다. 나에게도 2,000원이 생겼다.
짤짤이도 노동이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엄청난 감정 노동!
두 번째 교회에서 한 10분쯤 걸어 다른 교회에 도착했다. 예배 시간은 9시. 조금 일찍 도착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는 피곤한지 졸고 있다. 합창단으로 보이는 성도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목사님이 오고 예배가 시작됐다. 너무 피곤하다. 목사님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성자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잠이 쏟아진다. 그나마 기도라도 길게 하니 다행이다. 대놓고 눈 감고 잘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악몽이라도 꾼 것 같은 졸음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2,000원을 받았다.
네 번째 교회. 여기서는 예배당이 아닌 교회에 딸린 조그만 교육관에서 구제금을 받는 사람들만 따로 모아 예배를 드린다. 목사님이 오지도 않는다. 무슨 장로인가 하는 사람이 와서 진행하고 말씀을 하는데 찬송가만 들입다 부른다. 간단한 예배가 끝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1,000원짜리를 책상 위에 ‘탁탁탁’ 놓고 간다. 1,000원 배급이 끝나자 식판을 날라다 준다. 이곳에서는 무료 급식도 하는 모양이다.
네 번째쯤 되니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몇 번째 교회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계속 같은 코스를 도는 몇몇 아저씨도 눈에 띄고, 거리 홈리스는 아닌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눈에 들어온다. 한 할아버지는 나누어 준 무료 급식을 드시지 않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빈 그릇에 다시 급식을 받아 다 드신다. 앞줄의 할머니도 마찬가지. 짤짤이는 거리 홈리스들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좀 먼 거리로 이동했다. 사가정역으로 출발. 이곳에서는 예배는 아니지만 따로 아저씨들을 모아 성경 공부도 하고 간단한 예배도 드린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무슨 율동인가를 한다. 대부분 아는 율동인가 보다. 눈빛과 표정은 생기가 없는데 팔은 자동으로 움직인다. 진행하는 분이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이신데 김 아저씨의 눈빛과 표정에도 생기를 좀 만들어 주시지…. 그것까지는 힘드신가 보다. 그렇게 다시 1시간이 지나니 2,000원이 생겼다.
짤짤이도 노동이다? 시급 약 1,000원, 엄청난 저임금 노동!
이렇게 김 아저씨와 하루 동행이 끝났다. 끝나고 나니 8,000원의 돈이 생겼다. 새벽 6시 반부터 시작된 노동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시급이 채 1,000원이 안 되는 엄청난 저임금 노동이다. 김 아저씨에 따르면 오늘은 그래도 일요일이라 나은 편이란다. 평일에는 300원 주는 데도 있고, 500원 주는 데도 있단다. 아저씨는 지하철 우대권이라도 뽑을 수 있어서 교통비는 안 드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이거라도 해야죠”라며 웃으신다. 왠지 ‘뭘 그런 걸 물어 봐야 아느냐!’라며 나무라는 듯하다.
짤짤이도 노동이다? 차별만 있고 존중은 없는 질 나쁜 노동!
누군가 “짤짤이도 노동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참 어이없는 말이라 생각했었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이 노동이 되려면 노동으로 인해 무언가가 생산되어야 한다. 생산은 이윤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이윤을 노동자가 자본가와 나누어 갖는 것이다. 이 관계에서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고, 혹은 빼앗고 빼앗기고의 고리가 생기긴 하지만 이런 흐름이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노동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보통 하는 이야기이다.
아저씨와 짤짤이 하루 동행을 해 보니 이것 참 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물론 무엇을 생산했느냐고 하는 질문에는 딱히 할 만한 대답은 없다. 그러나 이른 시간부터 종일 걷고 뛰고 하느라 몸을 쓰니 육체노동이 아니라 할 수가 없고, 꼬박 1시간을 앉아 관심 없는 말들을 듣고 앉아 있어야 하니 감정 노동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 대가로 돈을 받지 않는가? 코스를 짜고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일이다. 경쟁이 치열해질까 싶어 ‘어디가 돈을 많이 준다더라’ 식의 업계 비밀은 철저히 유지한다.
그런데 이 노동은 참으로 고약한 노동이다. 엄청난 저임금에 온갖 차별의 요소는 다 가지고 있다. 구제금을 받는 성도들을 다른 일반 성도들과 공간적으로 분리한다거나, 아예 다른 건물에서 따로 예배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는 말들도 들어 보면 가관이다. 천국 가는 1등은 부자이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꼴찌는 가난하면서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란다. 가난한 사람들 앉혀 놓고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돈을 주면 받는 사람 생각해서 봉투에라도 넣어 주지 그냥 1,000원짜리 지폐를 낱장으로 덜렁덜렁 준다. 무료 급식도 마찬가지다. 왜 숟가락만 주고 젓가락은 안 주나. 오로지 자신들의 편의와 호의(호의인지도 잘은 모르겠다)를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세팅해 놓은 느낌이었다. 당사자에 대한 차별만 있고 존중은 없는 아주 질 나쁜 노동이다.
사실 홈리스들이 돈을 얻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폐지를 주워 팔기도 하고, 몸도 좀 괜찮고 운도 좋은 날에는 건설 일용직이나 철거 용역 같은 데 불려가기도 한다. 김 아저씨처럼 짤짤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공공 근로나 노숙인 특별 자활 근로 같은 공공 일자리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이걸로 한 달을 먹고살 수 없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돌아오는 길, 김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걸 왜 하시느냐. 나이도 많고, 가방끈도 짧고, 기술도 없어서 어디 써 주는 데도 없고, 체격도 작아서 힘쓰는 일은 더욱 못 한다. 가 봐야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만 당하니 차라리 이걸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단다. 이렇게 한 달을 돌아다니면 쪽방 값 정도는 벌고 밥은 무료 급식으로 해결한다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신청은 해 보았는지 물으니 해 보지는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65세도 안 되고 장애도 없어서 안 될 거라고 해 신청도 않았단다.
김 아저씨는 짤짤이로 벌어먹고 산다. 김 아저씨뿐 아니라 복지 수급을 받지 못하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짤짤이 같은 노동 같지 않은 노동으로 각자 알아서 벌어먹고 산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국민이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국가가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명시만 되어 있을 뿐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 현실이 씁쓸하다.(워커스 19호. 2016.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