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가 번역되어 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하면서 한국 사회에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그의 수업은 하버드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이 들은 강좌 중 하나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 최고의 강의로 손꼽힌다.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스타 학자이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정의’ 분야의 대가인 자신의 스승에 대해서 건실한 비판을 제기하면서부터이다. 샌델은 자유주의적 관점을 기본으로 하는 존 롤즈(John Rawls)의 사상에 대해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사회 정의를 만들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롤즈는 평생 ‘정의’만을 연구한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정의’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일컬어진다. 195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롤즈는 1958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지속해서 사회 정의 개념에 대한 현대적 해석 문제에 집중해 1971년 후대에 역작으로 손꼽히게 되는 명저 《정의론(A Theory of Justice)》(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을 출간한다.
그는 자신의 정의론을 제시하면서 공리주의의 실질적 내용과 그 방법론적 함축을 비판하고 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사회 정의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약자인 소외 계층에 대해서는 희생을 강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7~18세기의 사회계약론을 현대의 게임 이론과 결합해 부활시켰고, 사회 조직의 기본적 원리로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리를 제시했다. 이러한 정의관은 순수 절차적 정의관으로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직접 답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절차에 의해 합의된 것을 정의로운 것이라 주장한다. 그 원리는 사회 이론 속에서 ‘정의’라는 규범을 제시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영국과 미국의 사회 사상이나 윤리학의 방향을 크게 전환시켰다.
그는 먼저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일치해 합의할 수 있는 정의의 원리를 탐구한다. 그 원리란,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사회적 협동의 편익과 부담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원리이다. 그때 ‘원초적 상태(original position)’라는 것이 가정된다. 여기에서 각 구성원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이고 타인의 이해에는 무관심하다고 가정된다. 각 구성원은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으며, 정치 현상이나 경제 이론 등은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자신이 속한 세대 등에 대해서는 완전히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속에 있다고 가정한다.
롤즈는 ‘무지의 베일’ 상태를 제시하면서 공정한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는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대안들의 결과 중 최악의 것 중에서 최선을 보장하는 대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두 가지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
제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다. 각자는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의 충분히 적절한 체계에 대해 동등한 권리 주장을 갖는 바, 이 체계는 모두를 위한 동일한 체계와 양립 가능하며, 또한 이 체계에서는 평등한 정치적 자유들, 오로지 바로 그 자유들만이 그 가치를 보장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제외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의 자유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에는 생산재의 사유 및 생산물의 점유, 소유물의 상속 및 증여의 자유가 포함된다.
제2원칙은 차등의 원칙으로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게 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첫째, 기회 균등의 원칙이다. 이러한 제반 불평등은 기회의 공정한 평등의 조건하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에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직업이나 직책의 기회만이 아니라 삶의 기회들까지 평등화하자는 원리이다. 유사한 능력과 기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태어난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유사한 삶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최소 수혜자 우선성의 원칙으로서 이러한 불평등들은 사회의 최소 수혜 성원들의 최대 이익이 되어야만 한다.
당연히 제1원칙이 제2원칙에 우선한다.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 차등의 원칙에 우선한다. 즉, 많은 이익을 준다고 해도 기본적 자유에 대한 침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를 두고 자유 우선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제2원칙 내부에서도 첫 번째 기회 균등의 원칙이 두 번째 최소 수혜자 우선성 원칙에 우선한다.
이러한 정의의 원칙에서 롤즈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소외 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하게 결정된 정책이 바로 사회 정의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정의를 기초로 사회 계약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합리적 의사 결정을 정의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합리적 의사 결정은 구성원들이 합의한 공정한 절차를 의미하며, 이는 사회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결국 정의로운 사회의 기준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 즉, 사회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롤즈는 최초의 계약 상황에서 계약 당사자들이 가능한 한 평등한 입장에 있을 수 있도록 배경적 상황을 조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칸트주의적 계약론 전통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유주의적이되 평등 지향성을 갖는 정의 관점과 정의 원칙을 탁월한 이론 체계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자유 지상주의와 공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초래할 수 있는 모순과 부정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로크보다 더 평등주의적이고 마르크스보다 더 자유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자유주의적 평등의 이념을 옹호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등의 원칙은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고, 타인의 이해에는 무관심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와 “천부적인 재능의 분배를 공동의 자산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분배가 주는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가진다”고 하는 평등주의는 양립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그의 두 가지 원칙을 보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재산 소유 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롤즈의 정의론이 ‘재산 소유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민주적 사회주의’를 더욱 지지한다는 논변 역시 타당하다. 전자는 개인적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면서 재산 소유를 평등하게 하는 핵심적인 제도를 추구한다. 반면 후자는 생산 수단에 대한 사유 재산권을 권리의 목록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롤즈는 이를 기본권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롤즈는 정의의 두 원칙의 내용을 예시하기 위해 “재산 소유 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느 체제에서건, … 정의의 두 원칙들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롤즈는 두 체제 간 선택의 문제를 정의론 자체의 귀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해당 사회의 역사적·정치적 전통, 곧 정치 사회학에 의해 결정될 문제로 간주한다. 이 점은 경제 체제의 선택 문제가 기본권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체제 중립성을 표방하는 현대 철학적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정원섭,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복지>, 《통일인문학논총》 제56집, 건국대학교, 2013). 물론 롤즈의 정의론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도 정의를 둘러싼 오랜 전통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의에 굶주려 있으며, 개념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한 야당의 문제 제기를 네거티브 공격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정의의 절정은 1980년대 ‘민주정의당’이다. 가장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의를 내세웠으니 이 얼마나 ‘웃픈’ 일인가.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