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했다. 9명의 대기업 총수가 자리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에 전체 질문의 60%가 쏟아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13시간 동안 이어진 청문회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대가성을 끝내 부인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민들이 광장에서 들었던 ‘재벌도 공범’ 피켓을 꺼내자, 이재용 부회장은 “죄송하다. 반성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도 ‘이재용 구속’ 피켓을 들었다. 이 피켓을 본 이 부회장은 시선을 내렸다. 이어 윤 의원이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거론하자, 이 부회장은 “나도 아이를 둘 가진 입장에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해체, 전경련 탈퇴 등을 거론했다.
이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그간 쌓아온 이미지를 실추했다. 언론은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삼성의 위기마냥 보도했다. 하지만 이재용의 삼성은 굳건했다. 청문회가 열렸던 6일 삼성전자 주가는 174만 원, 8일엔 179만 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주가 상승 기반에는 주주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재용을 위한’ 삼성전자의 정책이었다. 이재용은 삼성 내 권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 이재용 이익 확대
삼성전자는 11월 29일 ‘중장기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10조 원대 주주환원 정책을 내걸었다. 2016년, 2017년 연간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의 50%를 주주에 환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영업 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에서 투자 활동으로 나간 현금을 뺀 잔여 현금 흐름이다. 즉, 사내에 유보될 자금이다. 그간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는 30대 재벌 기업이 쌓아 놓은 750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비정규직 노동자나 최저임금 지원을 위해 사용하자고 주장해왔다.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합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2016년 3분기 사내유보금 중 이익잉여금은 재무재표 상 136조 원에 달한다. 삼성SDI는 4조 6천억 원, 삼성디스플레이는 8조 5천억 원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사내 유보 현금은 얼마 되지 않고, 기업의 재투자를 위해 풀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벌의 사내유보금 운용은 노동자에 인색했지만, 주주들에겐 관대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잉여현금흐름은 13조 원이다. 이 중 30%인 3.9조 원을 주주에 환원했다. 주주 배당 규모는 3.1조 원이었고 나머지 8,000억 원은 자사주 매입-소각에 사용했다. 올해 잉여현금흐름은 약 2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작년보다 배가 넘는 약 10조 원을 주주에 환원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4조 원 규모의 주주 배당을 약속했다. 주주 친화 정책에 삼성전자의 주가는 치솟았다. 국내외 개인 주주들도 환영했지만, 이들보다 이익을 더 보는 사람이 있다. 대주주인 이건희, 이재용 총수 일가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지분율을 보면(2016년 상반기, 주식 총수 기준), 삼성전자 주식의 54%는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건희, 이재용 등 총수 일가와 특수관계인 최대주주 주식이 약 16%이다. 자사주는 14%,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이 14%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개인은 2%의 주식을 갖고 있다. 이른바 ‘개미 투자자’들은 전제 주주 수로 보면 97%지만, 전체 지분은 2%이다. 이러한 지분 구조로 10조 원 규모의 주주 환원에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는 이건희와 이재용 총수 일가다. 일부 외국인 주주와 국내 일반 개인 주주는 ‘달래는’ 수준인 셈이다.
자사주 불태우기…이재용 3대 세습 시나리오
삼성전자는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최대주주의 지분을 높일 자기주식(자사주) 매입, 소각 활성화 프로그램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배당하고 남은 잔여재원과 2015년 잔여재원 8,000억 원을 포함해 자사주 매입, 소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대략 6조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사주 매입, 소각은 단순히 대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넘어 이재용의 3대 세습의 시나리오의 일부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단,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남아 있는 주식 가치가 상승한다. 따라서 모든 주주가 이익을 볼 것으로 보이지만, 대주주의 주식 가치가 일반 주주보다 더 커진다. 자사주를 매입할 때, 매입 대상에서 대주주 지분은 제외하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나 기관투자가들이 보유한 지분을 시장에서 자사주로 매입한다. 대주주 지분은 그대로 있고, 나머지 주식이 매입되어 소각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더 높게 올라간다.
그렇게 삼성전자는 올해 유례없던 11.4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주당 배당금은 특별 자사주 매입, 소각 프로그램 효과가 반영돼, 2015년 21,000원에서 28,500원으로 약 36%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이건희, 이재용 등 총수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주식은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지분율이 17.64%에서 18.44%로 올랐다. 삼성전자는 2014년, 2015년에 자사주 소각이 없었다. 따라서 총수 일가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도 17.64%에서 변동이 없었다.
자사주 소각뿐 아니라, 자사주를 다른 회사와 맞교환하거나 필요한 만큼 매각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필요에 따라 자사주 의결권을 부활시키곤 한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합병 과정에서 자사주 5.79%를 KCC에 매각해 의결권을 부활시킨 바 있다.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편법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가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용으로 활용하는 사례에 제동을 걸고 있다. 또 지주회사 체제를 강화하면서 자사주 보유를 제한하기 위한 입법 시도도 늘고 있다. 자사주 보유에 제한이 된다면 대기업들은 자사주에 묶일 필요가 없게 된다. 자사주 보유가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혹은 강화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자사주 소각에 열을 올린다.
삼성전자는 또, ‘중장기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회사 성장 및 주주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한 기업구조 검토”를 포함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이은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으로 이재용 체제를 전면화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기업구조 검토에 약 6개월 정도 검토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조대환 사무국장은 “주주환원 정책 발표와 동시에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검토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세습 시나리오에 있던 것 아니냐”며 “이는 총수 일가 지배권을 강화하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나타난 삼성 사내유보금
잉여현금흐름의 주주 환원 확대, 자사주 소각 외에 사내에 유보될 자금이 또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재단으로 흘러간 삼성의 기부금이다. 대부분 기업은 기부금을 손금(비용) 처리한다.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았으면 이익잉여금으로 남을 돈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5년 삼성전자 기부금이 4,464억 원, 삼성생명이 803억 원, 삼성디스플레이가 465억 원으로 대기업 기부금 순위 1, 2위와 9위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기부금 5,000여억 원 중 《워커스》가 확인할 수 있는 기부금은 3,770억 원이었다. 먼저, 삼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재단법인미르에 125억 원, K스포츠재단에 79억 원을 기부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 사업이었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120억 원을 기부했다. 삼성은 또 지능정보기술연구원에 30억 원을 기부했다. 이번 게이트로 ‘비리 올림픽’이 된 평창동계올림픽의 개폐막 운영사를 맡은 삼성이 1,000억 원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전자는 2,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공익재단으로 기부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500억 원, 삼성문화재단 400억 원, 삼성생명공익재단에 659억 원, 삼성복지재단에 260억 원, 호암재단에 50억 원 등 총 1,869억 원을 출연했다.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이재용 부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돼 있다. 삼성복지재단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고, 호암재단 손병두 이사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 시절 삼성에서 일한 인물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2.18%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 등 총 7.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재단과 계열사의 지분 관계를 보면 기부인지 자금 운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나머지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500억 원,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에 12억 원, 대한적십자사에 5억 원, 경기도 LED 사업에 30억 원을 출연했다.
기부금 형태로만 비선실세 및 총수 일가 재단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지난 7일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준 16억 원은 삼성전자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 밝혔다. 또 삼성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위해 명마 ‘비타나V’를 10억 원에 구입해 지원했다. 삼성은 또 ‘정유라 국가대표 중장기 로드맵’을 위해 대한승마협회에 180억 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세웠다. 최근 독일 헤센주 검찰은 삼성이 최순실 씨에게 준 43억 원을 자금 세탁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이를 포함에 게이트에 연루된 삼성의 자금은 1,603억 원이다.
삼성 기부금 5,000억 원 중 3,770억 원 정도가 밝혀졌다. 출연하지 않았으면 사내에 유보될 기부금 상당이 비선실세와, 삼성 계열사로 흘러들어 갔다.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김태연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재벌이 사내유보금을 풀지 못한다는 것은 허구였다”며 “재벌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했지만, 정권의 비선 실세에 뇌물을 바치고 계열사끼리 자금 운용하는 데는 얼마든지 가능하단 것을 증명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기부가 거래였다는 뇌물 혐의의 중심에는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자문기구의 반대 의견에도 2,500억 원대 손실을 보며 합병에 찬성했다. 이로써 삼성은 ‘이재용-삼성물산-삼성전자’ 체계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삼성 지주사 전환에 걸림돌이었던 중간금융지주사 허용 논의가 공정거래위원회 중심으로 활발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연내에 입법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의 연내 법안 발의, 내년 상반기 통과는 삼성전자가 29일 발표한 “지주사 전환 검토에 6개월 소요”와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정부는 삼성의 ‘HT(Health Technology)산업’ 밀어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 지방 의료원인 진주의료원 폐쇄를 시작으로, 투자 활성화 위환 병원 부대사업 확대, 영리 자회사 허용, 메디텔 허용, 영리 병원 첫 허가 등을 연달아 추진했다. 송명관 참세상연구소 연구위원은 “재단을 이용해 사내유보금을 분산 배치하는 편법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라며 “또 기업은 기부로 사회 공헌 이미지 포장과 (감소한 이익 잉여금으로) 세금을 줄이는 효과까지 얻는다”고 비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정경유착의 문제를 터뜨렸다. 사상 초유의 재벌 총수 청문회가 열렸지만, 재벌은 국회의원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주주환원, 자사주 소각 등 자본의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은 ‘이재용호’를 더 견고히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배에는 이재용과 일가, 대주주만 올라탔다. 정작 배를 만든 노동자는 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