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촛불이 사라져간 자리. 장밋빛 대선이 밀물처럼 밀려든 광화문 거리. 그 곳에서 6명의 노동자들이 하늘로 올랐다. 광화문 사거리 40미터 상공 철제 광고탑. 지상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하늘에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그제야 그들의 목소리가 광화문에 걸렸다. 촛불 광장에서조차 마음 놓고 외치지 못했던 구호다. 가장 절박한 삶을 살아왔던 그들은, 가장 절박한 방법으로 촛불을 켰다.
촛불 항쟁의 승리에도 노동자들은 계속 벼랑 끝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4월 11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2명이 고가다리 위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14일에는 투쟁사업장 노동자 6명이 광화문 광고탑에 올랐다. 그리고 18일, 갑을 오토텍 노동자가 노조탄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구도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똑같습니다.” 광고탑 위로 오른 한 노동자가 말했다.
고공농성과 단식, 그리고 삭발까지. 그들은 왜 또다시 목숨을 건 끝장투쟁에 나서야 했나. 광화문 고공에 오른 6명의 노동자(김경래 동양시멘트지부 수석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콜텍지회 지회장,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 사수 투쟁위원회 대표, 장재영 현대차울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9년 만에 하늘에서 또 만났네요
9년 만에 또 다시 하늘에서 만났다. 김혜진 대표와 이인근 지회장의 얘기다. 각각 다른 사업장에서 일을 했지만, 비슷한 정리해고를 겪었다. 이들은 2008년 10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함께 망원 한강공원 송전탑에 올랐다. 그때도 곡기를 끊었다. 30일을 그렇게 절박하게 보냈다. 그래도 변한 것이 없다.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함께 고공에 오르고 단식을 한다.
벌써 11년째 이어지는 싸움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알려진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이 그렇다. 사측의 위장폐업과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착잡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 문제는 변한 게 없고 더욱 열악해져만 가니까요.” 이인근 지회장이 말했다. 하이텍 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2002년부터 15년째 이어지는 싸움이다. 길게는 98년부터 극한의 투쟁이 시작됐다. 이들의 요구 역시 같다. 정리해고 철회.
광고탑에 오른 6명 중 김혜진 대표와 이인근 지회장만이 고공단식농성 경험자다.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 행여나 그 고통으로 위축될까, 그들은 더욱 극한의 허리띠를 졸라맨다. “2008년 당시에도 이인근 지회장에게 효소 같은 건 먹지 말자고 했어요. 지금도 물과 소금만으로 버티고 있고요.” 김혜진 대표가 말했다. 9년 만에 다시 고공에서 만났는데 어떠냐고 물으니, 두 노동자는 그저 웃기만 한다. 별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같은 고통, 같은 투쟁의 시간을 보내왔던 그들은 이제 말이 필요 없는 관계가 됐다.
가장 미운 사람
정리해고 철폐. 누군가에게는 해묵은 이야기, 혹은 박제된 구호처럼 들리는 요구.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고통의 근원이다. “과거만 해도 한 달 파업하면 장기파업이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업장은 없었어요. 그런데 98년도에 정리해고가 도입되고 나서는 모든
사업장이 장기투쟁사업장이 됐죠.” 김혜진 대표의 말처럼, 정리해고 제도는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함께 노동3권까지 빼앗았다. 사업장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무기도 빼앗긴 채, 길거리에서 하염없는 투쟁을 이어간다.
그래서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은 김대중 정권이 가장 밉다. 정리해고 제도를 도입한 장본인. 노동자에게는 생존권을 빼앗고, 자본에게는 노조 파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어준 나쁜 정권. 이인근 지회장은 “콜트콜텍은 창사 이래 단 한 번의 적자도 없는 흑자 기업인데도 미래에 올지 모를 경영 위기 때문에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며 “정리해고 법은 김대중 정권을 시작으로 계속 완화돼 노동자를 끊임없이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역시 ‘정리해고 제도’가 노조 파괴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눈엣가시였던 노조를 없애기 위해 경영상의 위기를 조작해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김혜진 대표는 “98년 경제위기 당시, 수출기업이었던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영 위기가 왔다며 사람들을 속였다”며 “회사가 거짓말을 하며 정리해고 칼날을 들이댄 건 98년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된 직후”라고 설명했다. 노조의 반발에 부딪힌 회사는 2002년에 공격적 직장폐쇄, 단체협약 일방해지, 휴업, 정리해고를 다시 한 번 시도했다. 그리고 2015년 공장 폐쇄 수순을 밟았다.
비정규직 눈물을 닦아준다면서
비정규직. 사회적 약자로 명명되는 고용형태. 한국사회는 오랜 시간 비정규직 문제로 곪아갔지만, 누구도 이 기형적인 구조에 칼을 대지 못했다. “비정규직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전직 대통령은 비정규직, 파견제를 더욱 확대시켰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소위 ‘개혁정부’라고 통칭됐던 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법을 만들었고, 노무현 정권은 이를 성실히 확산시켰다. 이제는 법원에서 ‘정규직’으로 판결이 나도, 정규직 전환은커녕 해고를 당하는 세상이 왔다.
김경래 동양시멘트지부 수석부지부장도 법적으로 엄연히 ‘정규직’ 노동자다.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부, 강원 지노위, 중노위로부터 원청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지난 12월에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해고를 당했고, 감옥을 갔고, 2년 가까이 길거리 투쟁을 벌이고 있다. 회사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바로 항소 했다. 비조합원을 상대로 회유에도 나섰다. “법원 판결이 난 뒤에, 회사는 비조합원에게 500~2000만 원 가량의 돈을 주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냈다고 하더군요.” 김 수석부지부장이 말했다. 간혹 회사 측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원청이 아닌 ‘자회사’로 복직하라는 식이다. 그는 “자회사로 들어와서 청소나 운전 업무를 하라고 회유하곤 한다. 그것도 전원 고용이 아닌 일자리가 나는 대로 개별적으로 들어오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2차 하청 노동자도 고공에 올랐다. 장재영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지난해 2월,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비정규직지회는 그들의 가입을 막아섰다. 논란 끝에 3월 10일 노조에 가입했지만, 7일 뒤 기존 조합원 들은 현대차의 ‘특별채용 잠정합의안’을 받아 지회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해고를 당했다. “2차 하청은 1차 하청과의 차별을 겪습니다. 같은 연차여도 임금은 2배 가량 차이가 나고, 산재도 없고, 장비 불량으로 사고가 나도 내 돈으로 장비 값을 물어내야 해요.” 비정규직이 떠난 자리는 더욱 열악한 비정규직들로 계속 채워진다. 그래서 그의 투쟁은 단지 ‘정규직화’에만 머물 수 없다. “복직만을 위해 올라온 게 아닙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법부터 없애야지요.”
무법지대에 산다는 것
법대로 하라. 6명의 노동자들이 이 말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알고 있다. “법은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 말했다. 지난 2015년, 다국적기업인 아사히글라스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170명을 대량 해고했다. 그리고 작년 3월 중노위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회사는 즉각 행정소송으로 대응했다. 법을 이용한 시간끌기다. 노동자들이 농성에 들어가자 사찰을 시작했다. 용역경비업체는 노동자들을 미행하고 촬영하며 회사에 보고했다. 노조는 회사의 불법행위를 고소 고발했다. “수사는 끝났는데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어요. 회의감이 많이 들어요. 법으로 약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대표적 ‘비리사학’으로 알려진 세종대학교. 그리고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세종호텔. 개 버릇 남 못주는 법. 세종호텔 역시 ‘노동탄압 백화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비리사학’, ‘노동탄압 백화점’이라는 오명의 중심에는 주명건 세종호텔 회장(세종대학교 명예이사장)이 있다. 그가 비리 문제로 퇴출된 시기, 세종호텔은 가장 좋은 노동조건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가 복귀 한 뒤 모든 것은 무너져 내렸다. “주명건이 퇴출됐던 당시, 임직원 289명 중 286명이 정규직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복귀한 뒤 민주노조 조합원 전환배치, 퇴출,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을 단행했고 직원은 200명으로 줄었어요. 그 중 정규직은 100명도 안되고요.”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이 말했다.
노조는 사측의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 등에 법적인 책임을 묻기도 했다. 고진수 조합원은 “불법파견 문제는 1,2년이 다 돼가도록 소식이 없다. 검사는 재조사만 시킨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조합원 부당전보 등에 대해 노동자 편이 돼 주질 않는다. 노동자들은 법과 제도 앞에서도 꼼짝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고공농성에 결합한 6개 사업장은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위원회(공투위)’로 묶여 있다. 이들은 광화문 촛불이 막 켜지기 시작했던 11월 1일, 광화문에서 시국농성에 돌입했다. 가장 오랜 시간 광화문 광장을 지킨 사람들이었음에도, 이들은 목소리는 광장에 닿지 않았다. “노동자 문제로 촛불 연단에 오르는 것조차 계속 거부당해왔어요. 한 번은 자유발언 신청도 했는데 밀리고 밀려서 늦은 밤, 50명 정도 남은 사람들 앞에서 발언을 했었죠. 노동의 문제가 촛불 연단 에서 얘기되는 것에 쉬쉬하는 분위기였어요. 우리는 여전히 고립돼 있었고요.” 고공에 오른 한 노동자가 털어놨다.
그래서 이들은 촛불이 꺼진 광장에서, 다시 한 번 고공에 올라야 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이제 그 누구도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해결하지 않을 것이기에. 절박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길은 이제 하나뿐이란 걸 알기 때문에. 이들은 장미 대선보다 자신들의 투쟁을 더 붉고 강렬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대하지 않아요.” 노동자 6명의 이야기는 같다. 그들은 대선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절박한 사람들의 투쟁뿐이다. “야당들은 대선에서 적폐 청산을 얘기하지요. 하지만 정리해고, 비정규직은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만들어지고 확산된 악법입니다. 자신들이 적폐의 주범이지요. 먼저 사과하고, 자신들의 적폐부터 청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이야기는 이율배반적이에요.” 이인근 콜텍지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하늘로 오른 뒤 비가 내렸다. 단식의 고통이 추위와 함께 몸을 찌른다. 땅 밑에서 경찰이 침탈을 시도한다. 안철수 국민의 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광화문 광장에서 유세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고공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어떤 노동자는 골다공증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고, 또 다른 노동자는 철제 구조물에 머리를 부딪쳤다. 어지러움과 속 쓰림과 탈진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수록 그들은 아득한 하늘을 부여잡고 버틴다.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 재개정. 이제야 그들의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에 전해진다.[워커스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