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지난 5월 이스라엘에서 열린 ‘유로비전’을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몇 달 간 진행했다. 유로비전은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유럽 최대의 음악 경연대회다. 이스라엘의 ‘전략부’라는 정부부처는 보이콧 캠페인에 대응한다며 ‘보이콧’과 ‘유로비전’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광고를 구글에 등록했다. 광고를 클릭하면 boycotteurovision.net 이라는 사이트로 연결된다. 이스라엘 보이콧이나 BDS에 관한 정보를 검색한 인터넷 사용자가 보이콧을 지지하는 사이트로 오인하고 클릭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사이트는 BDS가 “아름답고, 다양하고, 환상적인 이스라엘”의 약어라며 이스라엘을 “관용의 나라”로 소개했다. 전형적인 하스바라(프로파간다)였다.
애초 BDS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2005년부터 세계 시민사회에 호소한 비폭력 운동 전략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세계 시민사회는 이에 응답해 지난 15년간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공모하는 기업에 대한 각종 기금의 투자 철회를 끌어냈다. 아울러 무수한 캠퍼스에서 이스라엘 대학과 학술 교류 중단 선언이 이어졌다. 보이콧에 동참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이스라엘이 점령과 학살의 이미지를 문화적 세련됨으로 세탁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에서 공연할 것을 거부했다.
이렇게 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이스라엘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졌다. 이스라엘에선 BDS가 ‘이스라엘 국가 정당성 훼손’과 동의어다. BDS를 전담 대응하는 ‘전략부’가 있고, 법무부, 외교부 역시 직접 BDS를 겨냥했다. 특히 이스라엘 전략부는 BDS 저지를 “테러에 맞선 싸움”이라 부르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BDS 운동에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을 찍고 운동가를 중상모략하고 있다. 이 과정에 모사드 등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략부와 정보기관
이스라엘 전략부는 일반 정부부처지만 스스로 업무를 기밀로 분류해 이스라엘 내에서도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다. 최근 이스라엘NGO ‘하츨라하(Hatzlaha) 운동’의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이스라엘 전략부 장관 ‘길라드 에르단’의 2018년 업무일지가 공개됐다. 일지에는 BDS 운동에 맞서기 위해 모사드(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수장과 회동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업무일지에 따르면 전략부 장관은 모사드 수장 ‘요시 코헨’을 만나 ‘보이콧에 맞선 싸움’에 대해 논의했다. 모사드는 팔레스타인의 해방 운동가와 정치가를 암살해 왔기 때문에 모사드와의 연계는 이스라엘 내에서조차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전략부와 모사드의 밀월 관계는 이미 2017년 정보공개청구 때 실체가 드러났다. 또 2016년의 업무일지에는 전략부 장관이 모사드 뿐 아니라 국내 정보기관인 ‘신 베트’와 사이버 감시 기술을 통해 첩보를 수집하는 ‘8200 부대’ 수장과 만난 기록도 있다.
2016년 초 임명된 전략부 최고 책임자 ‘시마 바크닌-길’은 이스라엘 공군 정보기관에서 20년 이상 일한 베테랑이다. 직전 최고 책임자도 모사드 출신이고, 전략부 산하 정보부에는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전략부의 이스라엘 공무원들은 정보기관과 협력하며 수행하는 업무 일반을 비밀에 부쳐왔다. 작업이 노출되면 BDS와 그 운동가들을 향한 비밀작전이 실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속 공무원의 이름도, 사무국의 이전 같은 일도 기밀로 분류돼 있다. 에르단 장관은 2017년에 BDS 대응이 “다른 최전방과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방법론을 비밀”에 부칠 필요가 있다며 전략부를 모사드와 신 베트 같은 정보기관처럼 정보공개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정보공개법을 우회할 다른 방법을 이미 준비해 놨다. 바로 민간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2016년 말 420여 억 원의 정부 자금과, 같은 액수의 개인 출연금으로 ‘콘서트 Concert’라는 이름의 회사가 설립됐다. 이 회사는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캠페인에 맞선 싸움’의 일환으로 ‘대중적 인식의 제고’를 은밀히 진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략부와 같은 일을 하지만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보공개법 적용 대상이 아니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회사 주주와 임원 명단에는 전직 전략부 고위공무원과 정치가, 사업가들의 이름이 즐비하다. 2018년 업무일지는 전략부 장관이 ‘콘서트’와 관련된 인사들을 만나는 데에 많은 일정을 할애했음을 보여준다.
의혹과 활동
전직 정보기관 요원들이 주축이 된 전략부는 BDS 운동이 비폭력 투쟁이라는 점에 아랑곳없이 자신들이 ‘테러에 맞선 싸움’을 한다며 군사적 문제에 준해 활동의 비밀을 보장받길 원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활동을 수십 년간 취재한 이스라엘 기자 요시 멜만에 따르면 전략부의 비밀작전에는 활동가들에 대한 중상모략 캠페인과, 괴롭힘 및 살해 위협, 프라이버시 침해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략부의 활동인지 밝혀낼 수 없었지만, 요시 멜만은 이런 맥락에서 BDS 위원회 홈페이지 해킹 사건과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알하크’ 소속의 스웨덴 변호사 ‘나다 키스완슨’에 대한 살해 위협을 언급한다.
2018년에는 이스라엘 사설 첩보업체 ICS가 저명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린다 사수르를 음해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Act.IL이라는 단체에 제공했고 Act.IL은 이 문서를 대학 캠퍼스에 퍼뜨리며 사수르의 대학 강연 보이콧을 조직했다. ICS도 Act.IL도 모두 전략부와 관련 있으며 특히 이들은 Act.IL의 웹사이트와 콘텐츠 제작에 6억5000만 원을 들였다.
온라인상의 프로파간다 유포도 중요한 활동영역이다. 2016년 전략부는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Ynet에 1억여 원을 펀딩해 BDS가 ‘반유대주의’라고 공격하는 기사와 영상을 제작할 것을 주문했다. 장관의 업무일지에는 예루살렘 포스트와 같은 또 다른 유력지의 편집장들과의 만남도 들어 있다. 2017년 6월과 7월, 단 두 달간 국내외에 메시지를 퍼뜨린단 명목으로 23억 원을 썼다.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 그램 등 소셜 미디어와 검색 엔진에서 컨텐츠를 홍보하는 데는 8억6000만 원을 들였다. 최고 책임자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에는 ‘전사들’도 배치해 놨다.
예산안에 드러나지 않는 자금을 통해 영국과 미국의 유대 단체들도 지원하고 있다. 에르단 장관은 “이스라엘과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전 세계 많은 단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에둘러 밝힌 바 있다. 이 단체들은 전략부의 손발이 돼 영국과 미국 의회와 정치가들에 로비하고 BDS가 반유대주의라는 프로파간다를 유포한다. 또 이들이 수집한 BDS운동 단체와 활동가들의 신상정보로 전략부는 이스라엘 입국금지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길라드 에르단 장관은 2015년부터 전략부, 안보부, 정보부 3개 기관의 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리쿠드당 선거 명부 최상단에 오르며 현 네타냐후 총리를 이을 차기 총리로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전략부의 원래 목표는 이란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전략부는 이전에도 폐지되었다 소생한 전력이 있다. 2015년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후 본래의 목적을 잃은 전략부는 BDS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다른 정부부처와 달리 활동이 지나치게 베일에 싸여 있다는 이스라엘 내의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BDS운동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덕에 전략부는 이스라엘의 주요 대내외 정책을 만드는 핵심 기관으로 등극하고 있다.
BDS운동의 요구
그런데 전략부 등 이스라엘이 BDS를 저지하는 활동 방식이 ‘방어적’이며 “공격적인 전략”과 “선제적이고 더 강경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 2016년 1월 미국 대학 캠퍼스에 등장한, 미국과 캐나다 국적자인 이스라엘군 사병 출신들이 만든 ‘복무 중인 예비군, Reservists on Duty’이라는 단체다. 결성 초기에는 병역거부를 선언한 예비군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이스라엘 점령 정책을 비판하는 이스라엘의 인권단체 ‘침묵을 깨고 Breaking the Silence’에 대항하는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곧 주요 활동 방향을 BDS 공격으로 바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BDS 운동을 ‘반유대주의’라 선전하며 학생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 방식은 다른 기관보다 좀 더 노골적이다. 여성 차별, 종교적 무관용, 어린이 전투원(사실과 전혀 다르다) 같이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에 어긋나는 팔레스타인의 실체를 폭로해 미국 학생들이 BDS 운동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 하게끔 한단다. 뿐만 아니라 BDS 지지가 실제로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억압과 학대, 보복을 권장”하고, 이 또한 미국과 서구의 가치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퍼뜨린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 기관에서도 자신들의 활동 방식이 도입되길 희망하고 있다. 그 희망은 실현돼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막대한 자금으로 BDS에 반유대주의 낙인을 찍으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은 일부 성공을 거둬, 미국 50개 주 중 27개 주에서 이스라엘 보이콧을 불법화하는 법이 통과됐다. 올해 5월엔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독일 연방의회가 “BDS 운동의 논증구조와 방식이 반유대주의적”이라는 결의안을 초당적 합의 속에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BDS운동을 통해 의도하는 것은 간단하다. 팔레스타인 전역과 시리아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세기 넘은 군사점령을 끝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내 인구의 18%를 점하는 팔레스타인 시민권자에 대해 유대인 시민권자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1948년과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추방한 난민의 귀환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어떤 ‘평화 협상’도, 다양한 투쟁도 이스라엘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세계 시민사회가 보이콧 등의 비폭력적 수단으로 이스라엘이 위의 기본적 요구를 준수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점령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을 테러라고 비난했던 각국 정부는, 이제는 비폭력 투쟁도 반유대주의라며 여하한 방식의 해방운동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더 많은 단위의 BDS 동참이 절실한 때다.[워커스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