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문화사회연구소)
K팝이 주목을 받고 있다지만 이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영미권에서는 K팝의 어감을 살려 ‘게이팝’이라 조롱하기도 하고 팬들을 오타쿠 취급하기도 한다. K팝과 팬덤이 팬덤 외부 세계와 투쟁해야만 하는 것은 비교적 오래된 일이니 이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다만 게이팝이라는 비아냥은 징후적인 측면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K팝이 지배적 남성성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 나아가 성적 규범 체계와 불화를 일으키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유수의 해외언론들 역시 K팝 남자 아이돌의 헤어스타일, 얼굴, 메이크업, 복근 등에 주목한 바 있다. 헤어스타일: 염색은 기본이고 이마 전체를 덮은 앞머리. 얼굴: 일명 V라인이라 부르는 날렵한 턱선과 도자기 같이 매끄럽고 물먹은 듯 촉촉한 피부. 메이크업: 스모키한 아이라인에 반짝이고 선명한 입술. 복근: 과하게 정련한 결과로 얻어낸 일명 식스팩. ‘부드러운 남성성’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런 스타일들이 K팝을 비롯한 한류 콘텐츠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체성(physicality)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듯 이와 같은 스타일이 글로벌하게 소비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전통적으로 마초적인 남성성을 중심으로 젠틀한 남성성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젠더 위계질서를 구축해온 서구사회에서, 게이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질적인 남성성이 소비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적어도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상적 남성 이미지에 (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대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애적 관계에 있는 한 서구의 남성들도 여성들의 문화적 욕망과 요구에 맞춰 자신의 신체성을 재조직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가장 흥미로운 시나리오인 셈인데, 글로벌하게 조직되어 있는 인종적·젠더적 위계질서가 다른 곳도 아닌 중심부에서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소정·홍석경의 논문 「K-뷰티의 미백 문화에 대한 인종과 젠더의 상호교차적 연구를 위한 시론」은 이 문제를 K뷰티의 ‘미백’ 스타일링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1. 한 사회의 뷰티 규범은 젠더 및 인종적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이며, 주체와 권력의 문제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질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중요한 주제다.
2. 최근 한국 아이돌 그룹의 미백 보정 사진을 둘러싸고 화이트워싱/옐로우워싱 논쟁이 있었는데, 미백이 백인 모방이라고 비판하는 입장과 오히려 그러한 비판 자체가 식민제국주의적 권력임을 주장하는 입장이 맞서는 과정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적 상상력에 비판적인 재고 및 수정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3. 논쟁이 남성 아이돌에 집중된 양상을 들여다볼 때, 백인 남성 중심의 글로벌한 인종 및 젠더 질서 안에서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으로 해석되고 있는 아시아 남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흰 색을 좋아할까. 백인을 닮고 싶어서? 즉, 동양인 특유의 인종적 콤플렉스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다. 단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서구 세계와 접변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백색과 관련된 미적 선호가 꽤 장구한 역사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인을 미의 기준으로 삼고 그에 따라 뷰티 규범과 행동이 작동한다는 진술은 불만족스러운 답변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백옥 같은 피부’ 같은 진부한 관용구는 코카서스인에 대한 단순한 문화적 동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즉, 박소정·홍석경의 언급처럼 “하얀 피부는 어느 사회에서든 노동 없는 삶을 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회의 권력 관계를 내포하는 보편적 요소”일 수 있으며 따라서 “아시아의 미백은 서구의 백인성 논의와 겹쳐지면서도 맥락을 달리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런 맥락에서 K팝 팬들 사이에서 일어난 화이트워싱 (whitewashing)과 옐로우워싱(yellowwashing) 논쟁은 자못 흥미롭다. 포스트-프로덕션, 즉 콘텐츠 제작의 후반 작업이 중요하게 된 환경에서 한류 콘텐츠는 스타의 이미지를 하얗고 밝게 보정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를 비롯한 팬들도 고해상 이미지를 촬영·유포하면서 미백된 아이돌 이미지는 곳곳으로 전달된다. 이를 두고 화이트워싱이라 한다.
그런데 해외팬들에게는 이런 관행이 미심쩍었던 모양이다. BTS를 빗대자면 자기 자신을 사랑(love yourself)해야 하는데, 미백된 이미지들은 아시아인 본연의 미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해외팬을 중심으로 일련의 ‘복구 사진’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조명이나 카메라 필터에 의해 노란빛의 색감을 띠는 사진, 무대의 백라이트나 햇빛의 역광에 의해 또는 어두운 공간이거나 그림자가 져서 피부가 어둡게 찍힌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옐로우워싱이라 한다.
옐로우워싱이 화이트워싱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이제는 옐로우워싱에 대한 재비판도 나오게 된다.
국제 팬들은 언제쯤이면 하얀 피부가 한국 문화에서 오랫동안 기준으로 존재해왔고 백인과 상관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까요?
저자들은 인종이란 (젠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구성의 산물로 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이를테면 ‘아시아인의 백인성’ 같은 얼핏 보기에 모순적인 진술도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백인성은 코카서스인 고유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시아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이들에게 알맞은 피부색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은 ‘또 다른 방식의 인종주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첨예한 문화적 실천과 담론의 심도를 늘려가면서 글로벌 팬덤은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중심적인 인종적 상상력을 다시 써내려갈 시점과 만나고 있다.
다른 한편, K뷰티의 미백 문화는 남자 아이돌을 거점으로 전개되는 것이기에 젠더적 위계에 대한 모종의 변화를 함축하기도 한다. 오늘날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메트로섹슈얼 꽃미남’ 아이돌들은 기존 광고에서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던 표정과 몸짓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한류 콘텐츠에서 이와 같은 기호학적 관습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외부인들이 보면 분명 퀴어한 광경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기존의 지배적 남성성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성성의 헤게모니적 확장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매우 논쟁적인 사안이긴 하다.
그러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 남성의 뷰티가 서구 문화권에 수용될 때는 인종의 축이 교차하며 권력의 질서가 바뀌기에 다른 맥락을 획득”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BTS를 좋아하기 전에는 나는 좀 거칠고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자기 외모에 신경을 쓸 줄 하는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들어요.
K팝 팬들의 이와 같은 반응들은 K뷰티의 남성성, 또는 아시아의 남성성이 기존 서구의 ‘독소적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통로가 됨을 시사한다. 산업구조의 변화, 페미니즘의 지속적인 도전,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장 등으로 이제까지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더 이상 이상화될 수 없는 상황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류 콘텐츠를 통해 전시되는 또 다른 남성성은 “젠더와 인종의 교차축” 위에서 백인 남성 중심의 문화적 위계질서를 흩뜨리는 가능성을 가진다.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한 반향을 얻는 현상은 얼간이, 뚱뚱이, 조력자 등등 아시아 남성에 대한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 즉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을 교정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한 K뷰티 등등의 아시아적 남성성은 문화산업에 의해 조작된 산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정작 현실에서 그런 남성은 희박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 영향력을 가진다면 작든 크든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실제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시아 남성이 오리엔탈리즘적인 재현 체계의 피해자 신세로부터 해방된다는 단편적 사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한류 콘텐츠는 뜻밖에도 인종적·젠더적 위계질서가 흔들림을 알리는 지표이자 새로운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워커스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