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전 세계 금융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52% 정도가 EU를 거부한 국민 투표 결과를 잔류파도 탈퇴파도 예상치 못했다고 하니 여론 조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이 영국 국민의 ‘반이민’ 정서로, EU 결성으로 인한 이민자 증가가 안전과 일자리, 복지를 위협한다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영국 국민의 ‘반이민’ 정서와 복지 후퇴에 불을 붙인 것은 미국과 함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국제 경찰 국가를 자임한 결과가 아닌가.
영국의 혼란은 자초한 결과
미국과 EU의 나토가 최근 몇 년 동안 IS 소탕을 명분으로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벌인 군사 작전으로 영국과 EU가 한꺼번에 소화해 낼 수 없는 수많은 난민이 EU의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북유럽까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대재앙이었고 그런 국제 정치적 충격파가 영국의 브렉시트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본다. 투표 결과가 나온 후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는 사임한다고 발표했고, 뒤늦게 재투표 시위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대영 제국의 충격이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투표 결과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지만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노동자 계급의 입장과 투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영국 노동운동의 현 상태를 실감할 수 있다.
EU 탈퇴라는 투표 결과는 나왔으나 영국이 EU를 탈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이후에도 숱한 우여곡절과 협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두고 볼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영국이 대처리즘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를 안착시켜 영국병을 고쳤다는 큰소리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당시의 ‘영국병’이란 노동운동과 복지 때문에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었다. 그 병을 치유한다는 이유로 대처 전 총리는 노동운동을 초토화시켰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유린했으며, 복지를 후퇴시켰다. 대처에 이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똑같은 정책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양극화는 더 깊어졌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좌절한 사람은 늘어났다. 이들에게 생존권이나 기본권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국민 투표를 통해 영국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이 세계 정치 경제의 급격한 변화에 디딤돌을 놓았다.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몰락, 새로운 체제 변화의 전조
현상만 바라보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영국에 나타난 현상은 영국만의 문제, 혹은 EU만의 문제가 아니다. 197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은 단순한 경제적 질서의 변화만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었다.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EU와 미국이 세계의 지배 권력으로 발돋움했고, 소련이라는 표적이 사라진 이후에는 미국과 EU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G2의 시대가 대세로 등장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구소련 붕괴 이후 특정한 표적이 불분명한 가운데 EU는 세계화에 취해 내부 모순을 바라보지 못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했다. 그 원인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대처리즘’이 자리한다.
경제적 쇠락으로 대변되는 자본 축적의 위기는 반복되는 공황을 거듭하고 있다. 이 위기는 한국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보수 신문의 대부임을 자부하는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우리나라는 세계화 흐름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성공을 거둔 나라이지만 그런 만큼 그늘도 넓고 깊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1년 사이 6% 커졌”으며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사회를 저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 英서 브렉시트 부른 양극화, 한국선 어떤 격변 만드나”, 2016.6.26). 일면 타당성이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위기의 주범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비롯된 모순이라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이 주장에는 양극화의 주범이 정규직 노동자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한국에서 양극화의 주범은 정규직,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 축적을 위해 고용 구조를 다층화해 노동자를 분할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이며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이다.
한국의 대처리즘과 노동자의 브렉시트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국식 대처리즘’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서 도약을 이룩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중병을 고쳐 놓겠다”고 굳은 표정으로 강변했다. 더 나아가 노조 문제를 법과 원칙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하고, 기업과 민간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게 ‘박근혜식 대처리즘’의 핵심이다. 경제 위기를 탈피할 박근혜 정권의 정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지만 ‘대처리즘’만큼은 철저하게 도용하여 모방하는 꼴이다. ‘노동자는 때려잡고 기업의 이윤을 보장한다’는 게 박근혜식 경제 정책일 뿐 다른 대안은 없다. 공약 중에 유일하게 ‘박근혜식 대처리즘’만은 지키려는 모양새다.
거리에는 자본과 정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즐비하고, 부정 비리를 일삼는 재벌들의 행태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불안정 노동에 위협받고 있다. 절박한 삶을 지탱하기 어려워 죽음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암흑의 낭떠러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합법 조직인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집회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5년 징역을 받는 가공할 만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의 힘이 약화되는 시기에 일시적 분노 표출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반격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들의 브렉시트를 한국에서 실현해 볼 때다.(워커스 18호. 2017.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