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고위 관리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라고 해 정부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발언은 망언으로 취급되며 많은 이의 분개를 샀지만, 중요한 진실을 말해 주고 있기도 하다. 민중이 개돼지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사달을 일으킨 나 기획관의 어법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말을 전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는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은 정확하게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였다. “하면 된다”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나향욱 기획관이 누구인가. 그가 맡은 정책기획관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누리 과정, 대학 구조 개혁 등 교육부의 주요 정책을 기획하고 다른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라고 한다. 보다시피 이들 정책은 하나하나가 첨예한 관심사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누리 과정, 대학 구조 개혁 문제로 최근 한국 사회가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나 기획관의 이번 발언은 이런 민감한 사안을 관장하는 고위 관리의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정부가 정책 대상이 되는 민중을 짐승 취급 하면 된다고 여긴다는 사실 말이다.
나 기획관이 ‘양심 고백’을 하고 나섰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지금 국가가 민중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에 대한 거짓 없는 보고처럼 들린다. 그는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며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힘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국가 기구의 내밀한 속내까지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나 기획관은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99%지”라고 답했다. 그가 민중을 짐승으로 취급하면 된다고 말한 것은 그렇다면 ‘내부 고발’인 셈이다. 그는 고위 공직자인데도 국가가 국민을 99%와 1%로 나눠 신분제를 공고히 하고 있음을 ‘양심적으로’ 밝혀 주고 있지 않은가.
한국 정부가 국민 대중을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여긴다는 것은 분명 ‘진실’에 속한다.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가 목숨을 잃은 김 아무개 씨의 경우가 그런 점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나 기획관은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라는 기자들의 말에 대해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라고 반문하고, 기자들이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하자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듣고 분개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그 진실성을 믿기를 권하고 싶다.
나 기획관의 발언이 진실이라는 것은 각종 통계가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금 갈수록 계층 간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한국의 사회적 불평등은 2~3위를 다툰다. 2012년 말 인구 상위 1%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12.23%로 OECD 3위, 상위 10%의 소득은 44.87%로 2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평등을 일으킨 주된 이유는 알다시피 비정규직 양산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3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3.6%인 839만 명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특수 고용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한 데 따른 것으로,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는다. 청년층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다. 2015년 청년층 신규 채용 가운데 비정규직은 6년 만에 10%나 증가해 64%였다. 구의역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 씨도 그런 비정규직 그것도 하청 기업의 비정규직이었다.
‘신분제’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99%에는 속하지 않는 1%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나 기획관은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자신을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아직은 그런 부류에 속하지 못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도대체 정부가 99%를 개돼지로 취급하면서 그토록 안간힘을 쓰며 이익을 지켜 주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최근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 주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검찰 또는 법원의 간부 출신이 부정한 돈을 수십억도 아닌 백억 단위로 모은 것이 탄로 난 것이다. 넥슨 주식으로 120억 원의 차액을 남겨 특임 검사의 수사 대상이 된 진경준 검사장, 검사장 출신으로 개업 2년 뒤인 2013년 월 평균 7억 6천만 원을 번 홍만표 변호사, 그리고 부장 판사 출신으로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대표로부터 100억 원대의 수임료를 받은 최유정 변호사 사건이 그런 경우다.
인구 상위 1%에는 그런 법조계 출신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기에는 올해 배당금만 9500억 원을 챙겨 간 30대 재벌 총수 일가, 일반 직원보다 13.3배를 더 받는 매출 1조 원 넘는 대기업 등기 임원,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수백 수천억 재산을 거느리는 소수의 ‘다이아몬드 수저’도 포함된다. 이들의 소득과 자산은 이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고, 그 삶은 갈수록 생계가 어려워지는 비정규직과 비교하면 구름 위 신선놀음에 가까워졌다.
나 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한 것은 한국의 이런 상황을 정말 ‘진실성 있게’ 반영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 누가 보더라도 오직 1%만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99%는 짐승 취급하면 되는 것으로 굴고 있지 않은가. 나 기획관 같은 관리들은 ‘1% 대 99% 사회’ 또는 ‘신분제 사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하면 된다’고 하는 확신으로 일해 왔을 것이다.
한국 사회 민낯을 적나라하게 밝힌 뒤 나 기획관은 국회에 불려 나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발언이 본의는 아니었다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 본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의 민중은 개돼지가 아니라는 것? 혹은 실제로는 개돼지 같으나 자기가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것? 두 번째 경우라면 그는 말실수를 한 셈이다. 그러나 말실수에도 진실이 담기는 법이다. 그의 눈물은 그렇다면 진실을 진실로 말한 실수를 저지른 데 대한 후회의 표현이 된다. 비밀을 비밀로 덮어 두지 못하고 그만 발설하고 말았다는 것에 대한 뉘우침 말이다. 하지만 나 기획관은 어쨌거나 양심 고백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한국의 더러운 진실을 명쾌하게 밝혀 주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