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 성지훈 기자
[패널 소개]
윤규 / 큰 머리와 각진 턱이 콤플렉스다. 군대에서 59호 모자를 썼다. 어릴 때 생긴 흉터를 치료하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았으나 양악 수술을 권유받았다. 지금은 잘생기지 않았지만 잘생김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희 /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굳이 꼽으라”는 압박에 내놓은 답은 굵은 종아리. 기회가 되면 성형 수술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으나 바쁘고 귀찮아서 안 한다.
지수 /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나쁘지 않은데 조화가 아쉽다”고 자평했다. 그것 말고는 자기 외모에 큰 불만이 없다. 엄마의 권유로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아 본 적도 있지만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살기로 했다.
지원 /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이 달라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처진 눈이 조금 싫지만 그게 자기 외모의 매력이라는 점도 안다. 다시 태어나면 신민아의 외모를 갖고 싶다.
군대 미화와 제3세계 대상화, 지독한 PPL 논란도
유 대위와 송 선생의 꽃미모를 막아서진 못했다.
아무리 패션 잡지를 들여다보면서 올 시즌 S/S 최신
유행 트렌드를 살펴도 당신의 패션은 완성되지 않는다. 어차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현란한 문장력과 탁월한 식견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치열한 키배(키보드 배틀)에서 승리해도 당신이 ‘오크녀’라면 패배자가 되는 현실이다.
오늘도 개콘에선 박지선과 오나미가 못생겼다고 놀림을 당했다. 우울하고 가난하고 사회생활에서 만난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성형을 권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예쁘고 잘생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놀림감이 되고, 죄가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예쁘고 잘생긴 게 뭔가.
우리 엄마는 내가 제일 예쁘다던데.
지원 예쁜 이목구비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가 이뤄져야 예뻐요. 사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쁜 이목구비는 많거든요. 자주 보는 연예인 중에선 신민아가 그렇게 조화롭게 예쁜 것 같아요. 제가 다시 태어나면 그런 얼굴로 태어나고 싶어요.
지수 연예인으로 들면 박보영이요. 요정 같잖아요. 김태희처럼 깎아 놓은 듯한 미녀는 아닐 수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럽나 싶어요. 그건 생김새만이 아니라 풍기는 매력 같은 걸로 결정되는 게 있을 거예요. 목소리나 태도가 그런 매력을 만드는 거죠.
윤희 저도 연예인으로 예를 들면 공효진이 제일 예쁜 연예인인 것 같아요. 옷을 어떻게 입어도 너무 멋있고. 그건 자기 매력을 잘 알고 있는 거고 감각도 있는 거고요. 외형적으로는 몸매가 좋으니까 그렇게 자기 매력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걸 테고요. 그러니까 잘 보이지 않는 다른 매력들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수 결국 자기한테는 없는 매력에 더 끌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박보영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부분은 없는 거죠.
지원 그런데 없는 걸 좋아하는 거라지만 실은 결국 키 크고 몸매 좋은 걸 예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다들 그런 게 잘 없으니까요.
윤규 인류학 수업 시간에 배운 건데 모든 동물은 자기 유전자에 없는 것, 자기보다 우월해 보이는 유전자에 끌린다고 해요. 그게 종 번식, 진화에 더 도움을 줄 테니까요. 자기에게 없는 매력에 호감을 느끼는 건 자연계의 본성이라는 거죠.
저마다 생각하는 미의 기준은 다르다. 신민아, 박보영, 공효진까지 천차만별. 어쨌든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끊임없이 욕망하게 된다는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말이나 우월한 유전자 운운하는 진화심리학자의 말도 생각나는 중에 든 질문. 그래서 우리는 정말 ‘우리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꾸미고 있을까?
윤규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이 달라요. 일테면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면 더 단정한 옷차림, 염색하지 않은 머리, 정장과 구두. 이런 것들을 챙기게 되죠. 내가 어떤 화장과 옷차림을 좋아하는지는 상관없이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회사가 원하는 외모를 꾸미게 될 거예요.
지수 그걸 노력이나 간절함의 척도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노력이 보상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예를 들면 어떤 면접생이 자기 스타일이라면서 방에서 자다가 나온 것 같은 운동복 차림으로 오고 다른 쪽에서는 외모부터 신경을 쓰고 온 게 티가 나면 아무래도 후자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고 운동복 입고 나온 사람에게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요.
윤희 아무래도 예쁜 사람을 보면 더 호감이 간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저 사람에게 예뻐 보이는 게 중요한 거죠. 내 스스로 예쁜 게 아니라요.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의 눈에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럴 거 같아요. 물론 외모지상주의를 배제하려는 노력이 모두에게 필요하긴 해요. 하지만 자기를 가꾸고 아름다워지려는 노력,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엔 그런 걸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생각하면서.
윤규 면접을 보러 갈 때는 회사의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미겠지만 사실 외모의 기준, 아름다움의 기준을 하나로 획일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잘생김’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해요.
지원 그런 건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거기다 잘생긴 사람은 TV에 좋은 사람으로 나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나쁘게 나오잖아요.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TV에 많이 나와야 해요. 어느 연예인들의 어떤 외모만 미적 기준으로 자리 잡지 않으려면요.
지수 개그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TV에선 온통 못생긴 여자 연예인을 놀리고 괴롭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걸 보면 당연히 사람들은 TV가 요구하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되길 바라겠죠.
윤규 우리나라에선 겨드랑이 털 같은 건 다 제모하고 그런 게 보이면 싫어해요. 수술 자국이나 흉터 같은 것도요. 아이를 낳고 몸에 남은 흔적이나 내 몸에 있는 체모들도 실은 아름다움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몸이 보여 주는 내 개성이고 몸의 역사인데 그런 것들을 가리려고 하는 게 외모의 기준을 획일화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더 많아지고 있어서인지 요즘 TV에는 깎아 놓은 것처럼 생기지 않은 연예인들이 간간이 등장한다. 〈무한도전〉의 ‘못친소 페스티벌’에 등장한 연예인들은 못생겼지만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다. 우월한 외모와 매력은 이음동의어가 아니었던가.
지수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드러나는 태도가 매력에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류준열 같은 경우가 그렇잖아요. 드라마 내의 캐릭터가 생각하고 말하는 게 멋있었어요. 매력적인 인간성은 그 사람의 외모도 다르게 보이게 하죠.
지원 뭐라 한 단어로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분위기’ 같은 게 중요하겠죠. 또렷한 이목구비만으로는 풍길 수 없는 그런 게 그 사람의 외모를 돋보이게도 하고 그 반대기도 하고요.
윤희 어차피 유행하는 외모는 시대별로 계속 바뀌니까요. 예전에 잘생겨서 인기 있었던 배우들을 지금 보면 느끼하고 도대체 뭐가 잘생겼는지 모를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매력적인 모습, 사람 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의 매력은 지속되죠. 우월한 외모는 생김새보다는 그 사람이 보여 주는 매력이 결정하는 것 같아요.
그 의미가 무엇이든 ‘매력적인 외모’는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가 됐다. 그걸 외모지상주의라고 표현해도 좋고 자기의 멋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해도 괜찮다. 자연계의 본성이라도 괜찮고. 그게 무엇이든 자기 외모를 가꾸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엔 돈도 들고.
윤규 너무 살이 찌지 않게 적당히 소식하고 잘 씻는 정도가 지금 제가 하는 외모 가꾸기의 전부예요. 콤플렉스라고 하면 머리가 큰 거랑 턱이 각진 정도예요. 예전에 어릴 때 생긴 흉터를 없애고 싶어서 성형외과에 상담하러 간 적이 있는데 흉터 얘기는 하지도 않고 양악 수술을 권하더라고요. 강남에 있는 미용 성형 전문 병원도 아니고 대학 병원 성형외과였는데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냥 살기로 했어요.
지원 화장 잘하려고 노력하고 좋아하는 악세서리를 사 모으는 정도인데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좀 관심이 적은 편이긴 해요. 아무래도 외모에 신경을 쓰면 돈도 많이 들고요. 친구들 중에는 꽤 많은 돈을 쓰는 애들이 있어요. 머리에 염색을 했다가 조금 자라면 뿌리 부분만 다시 염색해 줘야 하는데 그게 한 번 하는데 4~5만 원씩은 하거든요. 그걸 때마다 꼬박꼬박 하는데 그런 것도 참 대단해 보여요. 물론 돈이 더 많은 친구들은 더 많은 돈을 외모에 투자하기도 해요.
윤희 제가 외모에 신경 쓰며 돈을 쓰는 일은 계절마다 옷을 한두 벌 사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밤에 신경 쓰며 먹어서 살 안 찌려고 하는 정도. 돈을 쓰는 게 부담스럽긴 해요. 다달이 외모에 얼마를 쓰고 있나를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평균치를 내면 한 달에 10~15만 원 정도일 것 같아요. 이것도 적지 않은데 더 쓰기에는 부담스럽고요.
지수 저는 지금 제 외모에서 가장 불만인 건 살이라서 밤에 먹는 거 조심하는 정도지만 밤에 맛있게 먹는 음식은 0칼로리라고 하니까요. 그 외에 딱히 신경 쓰고 사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돈을 쓰는 일도 계절에 맞는 옷을 사는 정도고요.
담당 기자의 외모 콤플렉스는 탈모와 비만이다. 미디어가 놀림감으로 삼기 가장 좋은 외모. 그러면서 동시에 담당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소녀시대다. 미디어가 예쁘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어쨌든 예쁘고 잘생긴 건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외모를 보고 호감을 느끼고 아름답다 칭찬해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제일 예쁘다고 했다.
(워커스 6호 201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