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훈 기자
집에 들어서는데 우편함에 검은 테두리의 봉투가 들었다. 붉은 글씨의 ‘본인 외 개봉 금지’ 도장이 눈에 익다. 부고장이라도 되는 듯 음침한 색감을 처음 봤을 땐 놀라웠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돈 갚으라는 으름장이다.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은 채 책상 위에 던져 놓고 앉아 통장 잔고를 떠올린다. 다음 월급이 나올 때까지 생활비도 빠듯하다. 당분간 담배도 좀 줄여야겠다. 돈 내놓으라는 부고장은 차치하고 당장 다음 주에 필요한 100만 원이 문제다. ‘엄마는 왜 늘 돈이 없을 때만 아픈 걸까’ 같은 철없는 생각을 해 봤 지만 의미 없다. 우선 돈을 구해야 한다. 친구들한테 전화를 돌려 보려 했지만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운 친구들에겐 모두 이삼십만 원쯤은 이미 빚이 있다. 빌려준 지 너무 오래돼 잊어버린 건지, 고맙게 사정을 봐주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시 돈 빌려 달란 얘기를 꺼낼 수는 없다. 잊고 있던 지난 빚을 굳이 상기하면 어쩌나. 결국 대출을 받아야겠다. 그런데 어디서?
‘한국 사회에선 빚 없으면 부자’라는 말은 이미 상식이 된 농담이다. 그러나 정작 ‘대출’을 받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쉽게 빚을 낼 수 있느냐는 가난의 척도가 아니라 부유함의 척도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한 조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조건을 갖출 수 있으면 빚을 뭐하러 내냐”라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2, 3금융권, 나중에는 사채까지 눈이 간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급전 필요한 사람에게 높은 이자니 추심의 위험이니 보일 턱이 있나.
은행 –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대출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 은행이다. 대학생 때부터 주로 거래하던 은행 두 곳을 찾았다. 대기 번호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괜히 주눅이 든다. 체크 카드를 일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은행 창구에 앉아 보는 게 얼마 만인가. 기억을 더듬다 보니 10여 년 전 학자금 대출을 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 그거 아직 다 못 갚았는데.’
“대출 상담받으러 왔습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창구에 앉은 직원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 같았다. ‘네가 대출을 받을 수 있겠어?’ 하는 눈빛으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자마자 서울신용보증기금에 연체 중인 금액이 있어 대출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나도 잊고 있던 과거의 통신비 연체 내역까지 줄줄 읊는다. 이거 빨리 갚지 않으면 앞으로 모든 금융 거래에 악영향이 있을 거라는 충고까지 더한다. 여기까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방법은 도저히 없나요?” ‘없다’는 대답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왔다. 멘탈까지 탈탈 털리는 ‘광탈’은 취업 시장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했을 뿐인데 나는 이 사회의 경제 주체로서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주로 거래하는 은행 2곳에서 모두 대기 번호를 뽑고 20분을 넘게 기다렸지만 대출 상담도 받지 못하는 ‘신용 잉여’ 도장을 받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찾아간 은행까지 세 군데 은행 총 5개 지점에서 대출 ‘상담’을 신청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그러나 정작 창구에 앉아 상담을 한 시간은 다 모아야 30분 남짓. 그 모든 곳에서 돌아온 대답은 ‘대출이 안 된다’였다. 연체 중인 지난 대출부터 해결하고 오라는 이야기는 마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너 따위 ‘신용 잉여’가 들어오느냐 묻는 듯했다.
대부 업체 – 우리도 이젠 절차라는 게 있습니다
은행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이 다음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건 대부 업체들이다. 요즘 TV를 켜면 가장 많은 광고는 대부 업체 광고다. 여자라면 대출받으라고, 직장인이라면 무이자 무담보로 즉시 대출 가능하다고, 계획적으로 이용하면 안전하다고, 급할 땐 버스 대신 택시 타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은행은 번거롭고 까다로우니 자기들한테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주겠다는 그 대부 업체 광고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30분 만에 대부 업체 전화번호 6개를 메모했다. 이렇게까지 대부 업체 광고가 많을 줄 몰랐는데. 하긴 이제 대부 업체들이 스포츠 구단도 운영할 만큼 보편화했다.
국내 최대의 대부 업체라는 R사에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목표는 이자 없이 200만 원을 6개월간 빌리는 것. 잘 되면 실제로 빌려 쓰기로 마음먹었다. 대부 업체는 필요한 돈의 규모와 성격, 상환 계획을 묻더니 상품을 추천해 줬다. 연이율 34.9%의 직장인 신용 대출. 업체는 신용 정보 조회를 위해 신분증 사본과 월급 통장 사본을 보내라고 했다. 팩스를 보내고 30분이 지나자 전화가 걸려 왔다.
“대출이 어려우실 것 같은데요.” 이번에도 아직 상환하지 못한 대출금이 문제였다. 일부라도 상환을 하고 신용을 어느 정도 회복해야 대출이 가능할 거라는 대답은 은행에서와 똑같았다. 이 업체는 얼마 전에 저축 은행도 하나 인수하면서 사금융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한다더니 벌써 은행 행세인 건가. 메모해 놓은 다른 대부 업체들에도 전화를 걸었다. 모두 비슷한 상품을 추천해 줬고 비슷한 서류들을 요구했다. 여성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곳에도 전화를 걸었다. 여성만 가능하다고 할 줄 알았지만 남성도 대출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통장과 신분증 사본을 모두 보내고 전화를 기다렸다. 여섯 군데의 대부 업체에 전화해서 상담하고 팩스를 보내는 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차례대로 대출 신청 결과를 알리는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대답들은 거의 비슷했다. 나 같은 신용 잉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일까. 결국 대부 업체에서의 대출도 실패했다. 10년 전만 해도 어떻게든 돈을 빌려주려고 노력하던 대부 업체들도 이제는 상당한 수준의 신용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 업체들이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고 사금융 이미지를 벗겨내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이 같은 현상은 대부 업체 취업률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국내 1위 대부 업체인 R사의 경우 2010년 상반기 5.6대 1이었던 입사 경쟁률이 2014년 상반기 24.1대 1을 기록했다. 4년 새 경쟁률이 4배 이상 뛰었다. 취업난에 따른 구직자들의 ‘울며 겨자 먹기’를 감안하더라도 대부 업체 이미지가 예전과 같지는 않다.
그건 그대로 빚이 대중의 삶에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리 잡았는지, 동시에 대출의 벽이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를 설명한다. 결국 서민들이 빚을 내기 위해선 더 높은 이자를 감내해야 하고 더 위험한 추심을 견뎌야 한다. 이를테면 ‘사채’다.
사채 – 믿고 빌려 드리는 겁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어깨에 문신을 새기고 벽돌같이 생긴 일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빌려주는 돈. 알음알음 사채 아저씨를 한 명 소개받았다. 장사하는 친구가 가끔 급전을 빌려 쓴다는 이 아저씨는 일명 ‘엄 부장’으로 통한다. 왕년에는 잘 나가는 건달이었다고 한다. 처음 전화를 걸었더니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소개해 준 친구와는 어떤 관계인지, 뭐라고 소개를 받았는지, 내가 하는 일은 뭔지 꼬치꼬치 캐묻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엄 부장’은 한 시간 후쯤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그제야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친구에게 확인 전화를 한 모양이다.
2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는 첫 거래라 100만 원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곤 계좌 번호를 받아 적더니 선이자를 뗀 95만 원을 입금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는 각종 서류와 보증인이 필요하지만 소개해 준 친구에 대한 신뢰가 있어 그냥 절차 없이 빌려주는 거라고 말했다. 걔가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애가 아닌데.
상환 기한은 한 달로 정했지만 열흘마다 이자 5만 원을 입금하면 기한 연장은 최대한 편의를 봐준다고 했다. 이것도 소개해 준 친구 프리미엄이란다. 100만 원을 빌려 열흘에 이자 5만 원이면, 월이율이 15%나 된다. 연이율로 따지면 180%나 되는 초고이율이다. 은행 대출 이자는 높아 봐야 연이율 2% 남짓이다.
엄 부장과 통화를 마치고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혹시라도 늦지 말고 갚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예전에 엄 부장 ‘동생들’을 만난 얘기를 들려줬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덩치 좋은 남자들이 가게에 와서 별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무서워 죽을 뻔했다는. ‘위클리 매드 코리아’가 ‘미친 한국’을 경험해 보자는 기획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동생들 만나자고 연체를 하고 싶진 않다. 기한 되면 고이 갚겠다고 다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엄 부장으로부터 입금했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전화번호를 건네받은 지 2시간여 만이다. 이자가 높고 추심이 어려운 만큼 절차는 간단했다.
‘학자금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갚지 못해 신용도가 떨어진 서른 살 대한민국 남성’이 대출을 받기 위해 맞닥뜨릴 현실은 이렇다. 빚을 내기 어려워 위험한 고리의 빚을 낼 수밖에 없고, 이 빚을 갚지 못한다면 더 가난해져 더 돈을 구하기 어려워질 악순환.
여담 – 범죄의 늪
돈이 아주 급하게 필요해지면 어느 곳에라도 손을 벌리고 싶어진다. ‘사채’는 무섭지만 어쨌든 돈을 빌려주긴 했다. 하지만 사채처럼 위험해도 돈을 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돈이 급한 사람들 사정을 이용한 범죄 현장.
급전이 필요할 때 마지막 보루로 떠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 ‘장기 판매’다. 간을 떼고 신장을 떼서 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지하철역 화장실에선 신장을 산다는 광고 스티커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장기 판매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지만, ‘신장 하나쯤 없이 살 수 있어도 당장 돈이 없으면 죽기 직전’인 상황에 놓인다면 ‘못할 것도 없는 선택’이 된다. 서울의 오래되고 낡은 지하철역들을 찾아다니며 장기 판매 광고 스티커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전화번호를 구해 전화를 걸었다.
“신장 상담을 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선 나이와 신장, 체중, 병력을 물었고 며칠 후에 직접 만나서 자세한 상담을 하고 검사를 받자고 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신장은 8천만 원가량에 거래된다고도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 “검사비와 수수료로 250만 원을 준비해 주세요”.
250만 원이라니. 며칠 만에 그런 돈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신장을 팔겠다는 전화를 할 리가 있나. “돈을 구할 수 없을 것 같고, 구한다 쳐도 큰돈을 한 번에 맡길 만큼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했더니 “믿을 수 없으면 거래는 어렵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구한 번호에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여긴 그나마 200만 원만 가져오라고 했고 잘 생각해 보고 다시 전화 달라는 친절함을 보인 정도의 차이. 장기 판매에 대한 기사를 검색했다. 장기 판매 브로커를 가장한 이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사기 수법이 성행한다는 기사가 많다. 금액도 200~300만 원대로 거의 일치했다. 전화 걸었던 곳 모두 사기였을 가능성이 짙다.
가끔 담보도 신용도 상관없이 즉시 1천만 원 이상을 빌려주겠다고 오는 핸드폰 문자 광고도 사기다. 누가 그걸 믿겠나 싶지만, 예전에 돈이 급하게 필요했을 때 전화를 걸었다. 정신만 온전하다면 문제없겠지 했다. 그들은 내 부족한 신용을 대신해 자기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그 수수료를 챙기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신용의 우회를 위해 새로 계좌를 만들고 그 통장을 자신들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대포 통장’을 만들겠다는 수법이었지만 급한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판단’ 따위는 사치다. 통장을 보내고 1주일, 연락이 오긴 왔다. 경찰서에서. 내가 보낸 통장에는 벌써 수십 명의 금융 사기 피해자들이 보낸 돈 400만 원이 들어있었다. 수십 건의 지급 중지 명령이 얽힌 채로. 다행히 피해자로 분류돼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안도보다 걱정이 앞섰다. ‘돈을 어디에서 빌려야 하나.’
돈이 정말 급해지는 상황, 그 절박함에 대해 알고 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 내 건강이나 도덕의 문제마저 외면하게 하고 이성적 판단 따위는 제쳐 두게 하는 절박함이다. 사채 시장 엄 부장에게 고리의 돈을 빌려 급한 불을 끈 사람들에게 그는 고리 대금업자가 아니라 ‘급할 때 날 믿어준 금융업자’다. 가진 게 몸뚱아리뿐인 상황에 그거라도 사주겠다는 사람이 원망스러울까, 몸뚱이도 못 팔게 하면서 돈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울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절박함은 배려받거나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이용된다. 사채업자와 범죄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든 이 미친 세상이 이용하는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