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희
해방촌 문학 서점 ‘고요서사’ 서점 편집자.
다음 주면 서점은 새로운 곳에 다시 문을 연다. 개업 6개월 만에 무슨 이전이냐고 물으면 그저 미소 지으며 “독립 이전”이라고 답하고 있지만, 이 “독립”을 이루기까지 좌절과 분노와 낙담, 그리고 내려놓음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새 공간을 구하기까지 약 네 번의 기회(?)들을 우여곡절 끝에 놓쳐 버렸고 이 중 한 번은 다 쓴 계약서를 눈앞에서 찢어 버렸다.
고요서사는 해방촌의 한 카페에 숍 인 숍(전전세)으로 들어와 있다. 카페 사장이 지인인 덕에 월세만 나눠 내고 기타 관리비는 내지 않는 조건이라 ‘경제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커피를 파는 카페와 책을 파는 서점은 왠지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순진했다. 아니 무지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카페는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카페가 아니었다. 카페에 가는 목적은 ‘수다’ 혹은 ‘작업’으로 나뉠 수 있다. 서점과 어울리는 카페는 노트북으로 조용히 작업하거나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는 작업용 카페다. 그런데 내가 들어간 카페는 수다와 회의가 주목적인 사람들이 단골인 카페였다.
게다가 카페가 옆집 식당과 여러 가지로 얽혀 있어 식당 대기 손님을 카페에서 소화해야 했다. 대부분의 대기 손님들은 상상 이상으로 시끄러웠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책을 함부로 뒤적였다. 그들에게 조용한 화가 일어나는 것을 계속 억누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생각한 조용한 서점 분위기를 만들 수 없게 된 나는 점점 기운이 빠져 갔다. ‘고요서사’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카페의 폐업 소식, 그리고 부동산 투어의 시작
그러던 중 카페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본업이 따로 있는 동업자들이 여력이 없어 더 이상 공간을 운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나아지지 않는 카페 매출 때문에 걱정이 늘고, 그 이유를 서점과의 부조화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장의 사소한 말들에 괜한 신경만 쓰이던 참이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해방촌 사정을 조금 알게 됐으니 서점 초기에 독립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것 역시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때는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초였다. 해방촌에는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상가는커녕 그냥 상가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겨울이 끝나기 전에 한두 군데는 나오겠지 싶었다. 정말 순진했다. 꽃이 필 것만 같은 기운이 샘솟는 시기가 될 때까지 부동산에서는 이렇다 할 연락이 없었다.
물론 봄이 되기까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한번은 서점에 왔던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침 그 손님이 출판 사무실 겸 강의 공간으로 쓸 곳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쪽 제안으로 공간을 함께 쓰는 문제를 논의하게 됐다. 또다시 누군가와 장소를 공유한다는 데에 부담도 분명 존재했다. 그래도 일단 카페 사장에게 연락해 인수 조건 등을 확인했다.
카페 사장은 나를 내보내게 된 상황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인수 조건에 들어가 있는 ‘권리금’을 최대한 낮춰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카페 동업자들에게도 권리금 조정 사항을 알리게 되자 동업자 중 한 명인 옆집 식당 사장이 이 공간을 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쩌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니 우겨서 계약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있던 ‘독립 공간’에 대한 갈망과 마침 인근에 저렴한 공간에 대한 제보(?)가 들어와 결국 이사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이 공간의 세입자가 처음에는 권리금 백만 원을 부르더니 며칠 후에는 넌지시 천만 원대 금액을 얘기하며 협의를 살짝 미루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해방촌에 불고 있는 부동산 바람의 실체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해방촌과 젠트리피케이션?
이후 꽤 여러 군데 부동산을 전전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해방촌 이웃이자 자주 오는 손님 덕분에 괜찮은 공간을 알게 됐다. 카페로 쓰던 자리라 권리금은 조금 셌지만, 보증금과 월세가 정말 쌌다. 권리금은 양수·양도 계약서를 쓰면 보호받을 수 있다 하니 마음이 기울어 지금의 세입자와 권리금 조정을 하고 이사 날짜를 맞췄다. 정식 계약을 앞두고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상황을 알리기로 한 날,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세입자의 번호가 뜬 순간 왠지 불길했는데, 그 느낌이 맞았다. 나가겠다고 말을 했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했다고도 하자 건물주의 며느리가 나섰다. 임대 조건을 ‘요즘 해방촌 시세’에 맞게 바꿀 것이고, 새로운 세입자가 나갈 때는 권리금을 주장할 수 없게 특약도 걸겠다는 것이다(나중에 알았지만, 이 조항은 법적 효력이 없다). 실제 건물주인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아 소리를 잘 듣지 못하셨는데, 그 앞에서 “이제 이 건물은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소리를 질러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신 위에 건물주가 있다 하여 ‘갓물주’라는 말이 돌고 있는데 그 갓물주 위에는 ‘갓물주 며늘아기’가 있었다.
그다음 공간은 성에 차지 않았지만 해방촌에서 상가를 구하기 힘든 현실을 깨닫고 계약을 추진하게 됐다. 계약서에 나와 부동산 중개인의 도장을 다 찍고 건물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 하염없이 기다리다 만난 건물주는 오자마자 월세 부가세를 세입자가 내는 조건을 주장했다. 월세 50만 원에 부가세 5만 원. 결국 월세가 55만 원이 된다는 뜻이다. 처음 듣는 얘기에 일단 당황. 왜 임대 사업자가 내야 할 세금을 세입자가 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부가세가 환급이 되든 안 되든 말이다. 아직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음을 덜 깨달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BMW를 타고 온 건물주가 1년에 60만 원을 더 낼 수 없다고 하여 난 계약서를 찢고 부동산을 나왔다.
이 글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자잘한 에피소드를 겪으며 해방촌을 떠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해방촌은 본래 6개월 전만 해도 월세 20~30만 원대로 상가 계약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그런 곳이 서울시의 신흥 시장 개발, 녹사평 공원 조성 등을 빌미로 들썩이고 있다. 점점 문 닫는 상가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새로 공사하는 공간들이 눈에 띈다. 서울 같지 않게 정겹고 활기찼던 동네가 갑자기 익숙한 그곳, 홍대 언저리를 떠올리게 한다. 불과 두세 달 전 한 인터뷰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염려되진 않나?”라는 질문에 “이 높은 꼭대기까지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며 웃었는데, 난 정말 순진과 무지를 버릴 수가 없나 싶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공간의 공사를 시작했다. 사실 이 공간도 만만치 않은 건물주 가족(!)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지난 4개월 동안 마음에 난 생채기들이 어느 정도 아물어 조금 더 단단해졌고, 주워들은 수준이지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약간의 상식으로 촌극 같은 상황에 하나씩 대응하고 있다. 다만, 법으로 보장받은 5년이라도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이것 역시 순진한 욕심이란 사실을 알아서 마음이 쓸쓸하지만 말이다.(워커스 8호 2016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