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슈푀른들리
번역 · 정은희 기자
구트라를 쓴 나이 든 국왕으로 익숙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젊은 왕자가 나타났다. 혜성처럼 나타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자는 예멘 전쟁이나 유가 파동을 보도하는 세계 언론에 종종 등장한다. 과연 그는 누구이고 왜 갑자기 이슈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일까? 지난해 1월 압둘라 6대 국왕이 사망하고 살만 국왕이 왕위를 물려받은 뒤 사우디아라비아엔 ‘왕좌’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살만 국왕은 즉위 3개월 만에 당시 왕세제였던 이복형제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를 물러나게 하고, 친조카 무함마드 빈 나이프 내무 장관(57세)과 자기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국방 장관(30세)을 각각 왕위 계승 서열 1, 2위 자리에 앉혔다. 살만 국왕의 아들 무함마드 왕자는 아버지의 후원 속에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적인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 권력 투쟁을 중심으로 세계 정세를 분석한 쿠스 슈푀른들리(Markus Spörndli) 스위스 진보 언론 〈WOZ〉 편집자의 글을 싣는다.
무함마드 왕자는 얼마 전까지는 그다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제2 후계자로 임명된 이 왕자는 사우디를 개혁해 성장시킬까? 아니면 벼랑으로 이끄는 것일까?
최근 국제 언론은 사우디를 보도할 때면 거의 머리기사로 무함마드 왕자를 다루고 있다. 30세의 이 남성은 2015년 초 즉위한 80세 살만 국왕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 살만 국왕은 지병이 심각해 사람들은 그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무함마드 왕자로 간주된다.
왕좌의 게임
살만 국왕 취임 뒤 사우디는 수니파 군사 동맹과 함께 자신에게 도전하는 후티 반군을 상대로 예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살만 국왕은 자신이 맡고 있던 국방 장관직을 2015년 3월 무함마드 왕자에게 물려줬으며 그는 국방 장관으로 임명된 지 두 달 후 호들갑스럽게 세상에 등장했다. 무함마드 왕자는 현재 미국의 모델을 따라, 예멘 시아파 후티군에 대한 군사 개입을 ‘결연한 폭풍’이라고 부르는 등 이목을 끄는 선전과 언론 캠페인을 병행하고 있다. 또 군사 훈련 장소에 장군들과 함께 나타나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한다.
2015년 4월 말 살만 왕은 57세의 조카 무함마드 빈 나이프를 왕위 계승자로 임명했다. 그것은 균형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국가 건국자 이반 사우드의 손자인 그는 노련한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세대교체(이반 사우드 아들 세대에서 손자 세대로)를 의미한다. 오랫동안 내무 장관을 한 그는 사우디의 대테러 캠페인을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는 2009년 알카에다의 자살 폭탄 공격으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동시에 살만 국왕은 그의 아들 무함마드 왕자를 제2 후계자로 지명했다. 전통적으로 형제 상속의 선임 순위에 따르는 왕가 구성원 다수에 이 같은 지명은 도발적이었다.
무함마드 왕자는 국방 장관뿐 아니라 왕가로의 진입을 통제할 수 있는 궁정 장관이 됐다. 그리고 그는 이제 왕위 계승자인 사촌을 밀어내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무함마드 왕자는 내무 장관의 권한을 빼앗고, 야권을 더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살만 국왕이 부임한 뒤 지난 1년간 집행된 사형 건수는 이전 같은 기간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지난 1월에는 시아파 유명 성직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사형했다.
영국 페미니스트 로리 페니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21세기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WOZ>에 기고한 적이 있다. <왕좌의 게임>은 사우디의 최근 격변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그 이유는 사우디에서 왕관을 중심으로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 또는 앙카라에서도 판타지 느낌이 나는 권력 게임이 진행되긴 하지만 사우디 왕가의 권력 구조는 훨씬 더 〈왕좌의 게임〉의 극적인 연출법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왕국의 소수 권력자들은 실제로 더 고립돼 있어, 어쩌면 더 파국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처’ 클론
무함마드 왕자는 공격적인 대외 정책 외에도 광범위한 경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비전 2030’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는 ‘아랍의 대처’를 자임하며 신자유주의의 아이콘인 영국 대처처럼, 국영 회사와 자산을 민영화하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회사인 사우디아람코가 있다. 무함마드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이 석유 기업을 부분 매각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정유 회사와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또 이 비용을 투자금으로 활용해 새로운 경제 발전을 일으키려 한다.
목표는 석유 수익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도를 줄이려는 것이다. 지난해 석유 수익은 국가 수입의 약 90%에 달했다. 석유가 50달러 아래로 떨어진 뒤 사우디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왕가가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석유 가격이 최소 두 배 뛰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사회 복지비, 보조금과 국가가 지원하는 일자리로 자국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 이 지역을 지배하는 데 필요한 대외 활동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예멘 전쟁에는 현재 매달 수십만 달러가 소요된다. 사우디는 이외에도 시리아에서 다양한 반군을 지원하고, 이집트에서는 엘 시시 군사 정권을 후원한다.
권력에 굶주린 젊은 왕자가 들어선 뒤 경제 개혁 기조는 이미 정부 개각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 21년 동안 OPEC을 주물러 온 81세의 알리 알 나이미는 5월 7일 석유 장관에서 해임됐다. 그는 OPEC을 통제하며 사우디의 국고를 최상으로 유지했다. 무함마드는 4월 중순 전화 한 통으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간 산유량 동결 합의를 마지막 순간 무산시켰다. 이란이 회의 참가를 거부한 것에 대해 무함마드 왕자가 불쾌해하면서 중단된 것이다. 기존의 석유부는 에너지, 산업과 광물 부처로 확대 전환됐다. 이 부처는 앞으로 재생 에너지 산업을 후원해 국내 소비를 충당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사우디는 자국 석유의 4분의 1을 국내에서 소비했지만 앞으로 이 규모를 줄이고 수출을 늘릴 계획이다.
이외에도 사우디는 태양 전지 생산, 관광 분야와 자체 무기 산업 확대를 통해 경제 규모를 키워 나갈 예정이다. 또 생산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목표다. 2030년까지 실업률을 현 12%에서 7%로 떨어뜨리는 한편 노동 시장에서 여성 비율을 현 22%에서 3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무함마드 왕자는 산업 현대화를 위해 이 같은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통제를 개선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는 여성의 자가용 운전은 아직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야비한 플랜 B
무함마드 왕자는 지난 1년간 자신이 사우디 권력 게임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하지만 대가도 컸다. 대외적으로 그는 사우디를 재앙적인 모험에 빠지게 했다. 무분별한 폭력으로 예멘에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지만 전쟁은 여전히 수렁에 빠져 있다.
대내적으로도 무함마드의 경제 정책은 재앙으로 끝날 수 있다. ‘비전 2030’은 경제를 일으키기엔 허술하다. 이란 출신 중동 전문가 패트릭 코크번은 이를 1958년 마오쩌둥의 ‘대약진’과 비교한다. 마오쩌둥은 당시 농업 국가인 중국을 산업 국가로 전환하고자 했지만 대신 거대한 기아를 유발했다. 논평가들은 이 개혁안이 사우디의 전통적 교육 제도와 보조금에 익숙하며 실제 노동은 이주노동자가 맡는 사우디 고유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무함마드 왕자가 권력을 차지할지는 그의 경제 정책 성공에 달려 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무모한 인물들처럼 그 또한 이 게임에 모든 것을 걸었다. 무함마드 왕자는 자신이 제1 후계자인 사촌 빈 나이프를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계획이 실패할 경우 플랜 B도 있을 수 있다. (패트릭 코크번은 본래 이를 경제 개혁의 ‘야비한 선언’이라고 봤다.) 아람코 부분 매각으로 만들어지는 국영 펀드는 사우디 국영 기관의 자금력을 보장하게 되는데 이 펀드에 대한 통제는 무함마드가 사적으로 하게 된다. 무함마드 자신과 그에 호의적인 왕가는 권력 투쟁에서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나쁜 경우, 외국으로 추방되거나 또는 호화로운 망명 생활도 가능할 것이다. <왕좌의 게임> 어느 대목에서 비슷한 장면이 있었듯 말이다.
*원문 출처(웹 사이트 주소)
www.woz.ch/1619/der-draufgaengerische-prinz/game-of-thrones-in-ri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