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매드코리아]
글_윤지연 기자/사진_홍진훤
사람과 섞여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곧 그 사람의 평판이나 평가로 이어지는 법. ‘평균만 하자’고 단도리를 해도, 그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불편함과 공을 들여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꽤 적나라하게 그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여자라서’ 굉장히 값비싼 옵션들을 장착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 현실. 이유도 잘 모른 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 불평등한 일이다. 그래서 그 비싼 옵션을 몸에서 걷어 낸 채 살아 보기로 했다. 나는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마음의 준비
브라 해방. 맨 처음 아이템을 냈을 때, 같은 팀 동료 기자는 “무조건 유두가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흰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다니며 당당하게 나의 노브라를 뽐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경악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여태까지 제안한 아이템으로 수모를 당해 온 그녀. 아무래도 나에게 복수하려는 수작 같았다. 나는 징징거렸지만 그녀는 야멸찼다. 그렇게 해서 전체 회의 시간에 아이템 발제를 했다. 동료 기자의 제안이 반영된 ‘유두 노출 노브라 체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굳이 보일 필요까지 있느냐는 것이었다. “요즘 휴대폰으로 몰카 찍는 사람 많잖아. 사진 찍힐 수도 있어.” “왜 꼭 보여야 해?” “지연 씨가 꼭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하되, 억지로 하는 건 반대야.” 평소에는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지내던 《워커스》 구성원들이 이날따라 참 사랑스러웠다.
No Bra – 1일 차
내 가슴을 옥좨 왔던 브래지어와 작별하는 날. 출근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기온이 30도 이상 오를 예정이라는 뜨거운 초여름. 얇은 반팔만 입어도 더위에 시달릴 날씨, 노브라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나는 여름용 옷으로 얇은 면 재질의 흰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혹시나 해서 입어 봤으나, 역시나 너무 티가 많이 났다. 조금 두꺼운 남색 카라 티셔츠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입어 봤으나, 이번에는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티가 났다. 출근 시간은 다가왔고, 마음은 급해졌다. 평소 잘 입지 않던 남색 면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아주 얇지도, 아주 두껍지도 않은 보통 두께의 여름 반팔 티. 특히 가슴팍에는 알 수 없는 무늬가 있었다. 입어 보니 나름 괜찮다. 빤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쉽게 알아채지는 못할 듯했다. 확실히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와 탈의했을 때 가슴 모양은 차이가 났다. 갑옷을 벗고 전쟁에 참전한 병사 같은 공허함, 혹은 등껍질이 벗겨진 거북이가 느낄 정체성의 혼란 같은 것이랄까. 어찌 됐든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에이, 절대 티 안 나’라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싶었지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브래지어를 벗고 출근 혹은 등교한 건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렇다. 나는 20년간 브래지어의 노예로 살아온 사람이다. 길에서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깨는 몇 곱절 더 움츠러들었다. 평소 내가 이렇게 예민하고 오버스러운 사람이었나 자책이 들 정도로. 불편함을 없애 보려는 의도였는데, 더 큰 불편함을 초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게 편한 것인지, 탈의한 게 편한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동료 기자를 만나 “나 오늘 노브라야”라고 털어놨다.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매우 기분 좋게 웃어 댔다. “에이 전혀 티 안 나요”라며. 아무래도 그녀는 티가 안 나는 것이 조금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은 놓였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세상에는 브래지어 말고도 생각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다음 주 취재 기획 준비, 취재원 섭외, 오후 전체 회의까지. 노브라의 자유를 느낄 새는 많지 않았다. 동료와 회의를 하고, 취재원을 섭외하고,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겠다며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를 땀 뻘뻘 흘리며 걸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전체 회의를 하고, 동료들과 몇 차에 걸친 뒤풀이까지. 새벽 1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들어가며 문득 ‘아, 나 오늘 노브라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가슴 모양에 각별한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 쫄다 말았을 뿐.
No Bra – 2일 차
여유로운 주말을 이용해, 좀 더 도발적인 도전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엔 가슴팍에 무늬가 없는 반팔 티셔츠다. 물론 흰 티는 자신이 없어 남색을 집어 들긴 했지만. 입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어느 정도 티가 나겠구나’ 하는. 그렇다고 매일 가슴팍에 무늬 있는 옷만 찾아 입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호기롭게 거리로 나섰지만, 금세 다시 어깨가 움츠러들 수 없었다. 도대체 나는 왜 내 신체의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건가. 우울해졌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람이 세차게 불 때마다 얇은 반팔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었다. 친구에게 “나 좀 티 나?”라고 물었더니 “어… 좀 티 나는 듯”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여느 때처럼 번화가를 걸었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으며, 만화방으로 들어가 매트리스 위를 뒹굴었다.
첫째 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신체를 옥죄고 있는 또 다른 불편을 감지했다는 것이랄까. 브래지어를 벗어 편안한 상체에 비해, 나의 하체는 몸에 꽉 끼는 스키니진을 걸치고 있었다. 하도 오랫동안 입어, 이제는 불편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스키니진이 그날따라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빌어먹을 바지만 없었어도 나는 훨씬 편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날이 저물었다.
No Bra – 3일 차
나는 꽤 오랫동안 여성의 가슴이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오르내리는 걸 보아 온 사람이다. 학창 시절, 모 연예인이 노브라로 집 앞에 잠깐 나왔다가 사진을 찍히는 바람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티셔츠 안으로 유두가 살짝 비치는 것도 남사스런 일이구나’ 더럭 겁을 먹었다. 나는 브래지어 끈을 더욱더 꽉 조여 맸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착용한 브래지어였다. 초등학교 5학년, 어른들의 모든 것이 부러웠던 시절, 나는 엄마에게 ‘나도 브래지어 사 줘’라고 졸라 댔다. 엄마가 처음으로 사 준 브래지어는 토끼 마스코트가 새겨져 있는 어린이용 스포츠 브라였다. 철딱서니 없게도,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부럽지?”라며.
브래지어가 굉장히 불편한 물건이라고 느낀 건 중학교에 막 입학해서였다. 꽉 조이는 검은색 스타킹, 신축성 따위는 엿 바꿔 먹은 블라우스와 조끼 및 재킷, 그리고 출렁거리는 주름치마로 이루어진 동복. 주렁주렁 단추가 달린 숨 막히는 반팔 블라우스와, 여전히 무릎 위에서 출렁거리는 주름치마로 세트를 이룬 하복. 답답한 교복을 장착한 무거운 몸뚱어리 안에, 또 한번 나의 몸을 속박하는 브래지어의 압박. 그렇게 불편할 수 없는 교복을 입고 나서부터 브래지어가 번거로워졌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월요일 운동장 조회가 끝난 뒤 교실로 들어온 내 친구는 “조회 시간 내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는데, 들어와서 브래지어 끈을 풀고 있으니 괜찮아졌어”라고 말했다. 그 뒤로 나는 속이 답답하거나 소화가 안 될 때마다 잠깐씩이라도 브래지어 끈을 몰래 풀어 놓았다.
노브라 3일 차. 문득 ‘나는 왜 20년 넘게 브래지어를 하고 다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어른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열네 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그저 “당연히 착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왜 브래지어를 해야 하는지 이유도 잘 모른 채. 물론 간혹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처진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가슴은 원래 처지는 법이다. 지구의 중력에 의해.
욕심이 생겼다. 브래지어 없이, 꽉 끼는 바지 없이 살아 보고픈. ‘내일 당장 시도해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No Bra – 4일 차
아침부터 옷장을 뒤졌다. 내 신체를 자유롭게 해 줄 옷을 찾기 위해. 내 몸을 옥죄이는 것들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면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멜빵 통바지를 집어 들었다. 마대자루같이 통짜로 떨어지는 후들후들한 옷감의 바지다. 반팔 셔츠에 멜빵바지를 걸치고 출근했다.
해방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상체와 하체의 해방. 정말 몸이 가볍고 편했다. 사람들에게 자랑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나는 그날 가뿐한 몸으로 취재했고, 술을 마셨고, 기분 좋게 술값을 계산했다. 그러고 나니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0년 동안이나 유행을 타고 있는 스키니진. 120여 년 동안이나 전 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속박한 브래지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사람들의 시선과 관습, 유행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내 의지대로 내 몸에 자유를 준 적이 있었던가. 왜 항상 가리고 숨기고 쫓아가는 데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던 걸까.
가슴 평등 사회는 올까
기사 마감 날. 오랜만에 브래지어를 했다. 해방을 만끽한 뒤의 속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고역이었다. 숨 쉬는 게 답답했고, 그래서 자꾸 등이 굽었다. 가슴 밑에 박힌 철심이 불편했다. 생각해 보면, 단지 브래지어를 오랜만에 착용한 탓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도 종종 브래지어를 불편해했고, 특히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몸을 배배 꼬곤 했다. 마치 브래지어 때문에 일이 안 풀리는 것 마냥.
그럼에도 나는 관습에 찌들고 시선에 움츠러드는 소심한 인간인지라 여전히 ‘노브라 푸처 핸즈 업’을 외치기에는 겁이 난다. 취재 말미에 노브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활동가 A 씨에게 물었다. ‘너무 티가 많이 나는 것 같고 위축되는데 어떡하면 좋죠?’라고. 그녀가 조언을 해 줬다. “약간 덥긴 하겠지만 조금 두께가 있는 실크 티를 입으면 티가 안 나요. 나시를 입거나 레이어드를 해 입는 방법도 있고요.” 그녀가 약 7~8년간 노브라로 살아온 까닭은 자신의 신체를 불평등하게 속박하는 것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다. 그런 그녀도 간혹 타인의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연스레 그 시선을 맞받아치는 것. “상대방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의도로 쳐다보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두는 것 같았어요. 그럴 때는 상대방의 눈을 같이 쳐다보면 금방 눈을 돌리더라고요.”
여자도 젖꼭지가 있고, 남자도 젖꼭지가 있다. 하지만 유독 여성의 가슴은 성적 대상이 된다. 브라 해방과 남녀 가슴 평등 사회. 그날이 과연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