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의 추락으로 노땅은 은신처가 경찰에 수일 내 발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노땅의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경찰은 은신처를 찾아냈고, 수일이 아니라 단 하루 만이었다. 샐리가 추락하자마자 은신처 멤버들은 모두 짐을 쌌다.
“성공했어도 어차피 이곳은 금방 발각됐을 거요.”
노땅은 짐을 챙기며 지민에게 변명하듯 웅얼거렸다. 미강이 발가락이 부러진 싫어요정을 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간 사이 지민은 혼자 남아 이사를 도왔다.
“다른 곳으로 옮길 데는 있고요?”
노땅은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쪽 단지는 공실이 많거나 아니면 분양도 못 해 본 텅 빈 건물들이 즐비해요. 삼용만 믿고 무더기로 지었다가 파리만 날리는 건물들이 널렸으니 어떻게든 되겠지요.”
“경찰은요? 장소를 옮겨도 주변의 CCTV를 통해 탐문하다 보면….”
노땅은 다 포장된 박스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의도했는지 몰라도 제법 큰 소리를 냈다.
“그런 게 두려웠다면 우린 이 자리에 없었을 거요. 저 애도, 그런 걸 두려워했다면 저기 없었을 테고. 정말로 두려운 것은 이대로 싸움다운 싸움도 못 해 보고 그냥 끌려 내려오는 거지.”
“탑 위에 있는 사람은 스물세 살짜리 여자애라고요.”
지민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방안은 얼음장 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확실히 말실수했네.”
미강은 김밥을 우물거리며 차 유리창에 머리를 콩콩 찧고 있는 지민을 곁눈질했다.
“그때 그 사람들 표정을 못 봐서 그래요.”
미강은 목이 멨는지 가슴을 쿵쿵 치다가 생수를 들이켰다. 입안의 김밥을 다 삼키고 난 다음에야 그는 태블릿을 꺼내 지민에게 건네주었다.
“아까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미강이 보여 준 영상은 샐리가 경찰 드론을 피하다가 추락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이었다. 거리가 멀고 카메라가 흔들려서 그리 좋은 화질은 아니었다. 지민은 영상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놈은 뭐래요?”
“예거 K. 전년도 드론 그랑프리 챔피언이래요. 드론 레이서 클랜 중에서 꽤 큰 클랜의 에이스라는데 데미앙 J와는 전부터 숙적이라고 소문 났….”
“잠깐, 데미앙 뭐? 그건 누구예요?”
“싫어요정. 머스탱 샐리를 조종했던 그 남자애. 휴브리스 클랜과 루프트바페2 클랜은 오래전부터 앙숙이었는데, 데미앙은 휴브리스 클랜의 에이스, 예거 K는 루프트바페의 에이스래요. 그래 봤자 드론 가지고 노는 꼬맹이들이긴 하지만. 경기장에서 몸싸움까지 벌이며 사고 친 경력도 제법 화려해요. 이 영상은 경찰이 찍은 게 유출된 거고요. 지금 이 떠버리는 신나게 데미앙, 그러니까 싫어요정을 까고 있는 중이죠. 들어 봐요.”
지민은 볼륨을 높였다.
“거봐 씨발, 내가 데미앙 좆도 아니라고 그랬잖아. 저 새끼 스티어링 존나 구려. 좆밥 새끼. 프레임에 카고 달고 급강하 찍다가 급상승하면 추력이 나오냐… 어이구, 어이구. 아주 정신줄 놨네. 선회 로터 조작하는 것도 잊어먹었네. 저 새끼는 나 따라오려면… 몇….”
지민은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이 방송은….”
“드론 커뮤니티 쪽 채널에 쫙 깔렸어요.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더라고요.”
“꼭, 그렇게 꺼낸 말 중에 진짜 재미있는 얘긴 없더라.”
미강은 몇 개의 영상을 찾아 지민에게 보여 주며 설명했다.
2010년대 말 즈음부터 드론 레이싱은 새로운 스포츠로 각광받았다. 초기의 어수선한 성장기를 거치면서 비행 기록으로 경쟁하는 포뮬러 레이싱과 구조물 사이를 비행하는 익스트림 레이싱으로 종목이 나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델타폭스라는 새로운 종목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도그 파이팅3에서 약자를 빌려 온 델타폭스 레이싱은 전통적인 의미의 경주라기보다는 드론으로 펼치는 축구와 같은 스포츠였다. 델타폭스는 다섯 대의 드론이 하나의 팀을 이룬 다음 상대 진영의 골대까지 봄버4라 불리는 드론을 호송하는 경기로 규정이 정리되었다. 네 대의 호위 드론은 적기의 공격을 막아 내며 팀의 봄버를 상대 진영의 골라인에 통과시키면 승부가 나는 방식이었다.
델타폭스 레이싱은 드론 클랜별 대항전이 활성화되고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하는 프로 리그까지 생겼지만 화려한 전성기는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드론이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물류 산업의 깊숙한 곳까지 위협하는 데는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기존 물류 업계의 반발을 불러오는 데는 예상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 드론 물류 산업은 곳곳에 암초처럼 솟은 항공 관련 규정과 군사 보안 문제로 제대로 된 항해도 못 해 보고 좌초되었다. 이 과정에서 물류 업계는 드론 물류 업계에 대한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버금가는 비방과 음해의 난타전을 벌였는데 그중 하나가 드론을 조종하는 파일럿들이 드론 하이재킹에 연루되었다는 폭로였다. 실제로 몇몇 클랜의 파일럿 중에서 재미 삼아서 주파수 변조 장치나 조종 신호를 스캔하는 장비를 만들어 팔았다가 사건에 연루된 사례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수년간의 지루한 법정 싸움 끝에 무혐의 처리되었다. 비록 몇 년 뒤 혐의를 벗었음에도 세상의 인식은 드론 파일럿들을 ‘허공에서 타인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파렴치한 도둑놈들’로 보는 시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휴브리스 클랜은 당시 하이재커 스캔들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클랜이었다. 아주 사소한 우연과 의심 덕분에 그들은 다른 클랜들이 자신들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들은 밀고자로 루프트바페 클랜을 지목했다.
두 클랜은 이제 애초에 그들이 왜 반목하게 되었는지 이유도 잊어버릴 만큼 충돌을 반복해 오고 있었다. 미강이 지민에게 보여 준 영상은 그 반목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했다.
“아까 그 싫어요정이란 애를 병원에 데려다줄 때 얘기를 좀 해 봤어요. 본인은 이번 일에서 빠지고 싶다더군요. 충격이 보통 큰 게 아니었나 봐요. 더군다나… 그 예거라는 떠버리가 채널에서 떠든 동영상을 보고는 완전히 열이 받은 것 같아요.”
“그 떠버리 덕분에 혜영이를 도우려던 사람들이 경찰에 노출될 확률만 높아졌네요.”
지민은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우리는 기혜영이란 애가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하는지 원인을 찾으러 온 거였는데 말이죠. 골치 아프니까 신경 끄죠.”
지민의 말에 미강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 어차피 정 박사님이 하고 있던 일 아닌가요? 역사를 바꾸는 것 말이에요.”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고 에이도스의 가상 현실 모드를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민은 미강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계속)
지난 줄거리
멸망을 앞둔 태양계의 지구 문명을 다른 행성계로 복원하는 오메가 플랜이 진행 중인 가까운 미래. 오메가 플랜의 데이터 분석학자 지민은 복원을 위해 백업 중인 역사 데이터에서 주요 전환점의 사건들에 개입해 역사를 바꾸는 실험 중이다. 지민과 미강은 원래의 역사에서는 없었을, 홀로 고공 투쟁 중인 여성의 정체를 파악하려 한다.
인물 소개
지민 인공 지능체 에이도스에 저장된 역사의 분기점에 개입하는 시간 여행자.
에이도스 새로운 행성에 복원할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백업하는 인공 지능체.
하미강 오메가 섹터의 격리 구역 보안 책임자.
기혜영 삼용나노텍 노동자. 정리 해고자에 대한 복직 투쟁 중.
1 I Walk the line – Johnny Cash, 1957.
2 Luftwaffe, 독일 공군을 지칭하는 단어.
3 Dog Fighting, 공중에서의 근접전을 의미한다.
4 Bomber, 폭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