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한계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 내 81만개 공공부문 일자리를 단계적으로 창출하고, 민간부문에서도 5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노동소득 증가를 통한 내수 및 총수요의 확장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도모하고, 4차 산업혁명과 IT주도의 혁신성장에 기반한 신규 기업(스타트업)의 창업과 신산업 육성, 산업경쟁력 제고 등을 이루겠다고 밝혔다.1)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고용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철회했으며, 주 40시간(연장노동 포함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민간부문 일자리는커녕 공공부문 일자리마저 예산문제로 발목 잡혀 좌초될지 모른다.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임금소득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여서 노동생산성 향상과 일자리의 질을 높이겠다는 방향이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도,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민간부문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일자리 예산배분 수준으로 문제를 치환시켜 국회에 스스로 발목 잡혔다. 또한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기업과 자본가들이 스스로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일자리를 늘릴 것인가? 줄어든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보전할 것인가? 자본가의 저항은 오히려 본능적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은 이들의 정치적 무능과 한계에서 찾는 것이 더 쉬워 보인다. 정책이 좌초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자본 탓’, ‘노동 탓’만 하면서 자본의 의도대로 끌려다니며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다.
무능이 절정에 달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청년 고용 대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기 “2020년 이후에는 (저출산으로) 생산 가능 인구와 청년 취업 층이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일할 사람 부족이 문제”라면서 “그 기간까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청년 3명을 고용하면 1명의 임금을 정부가 3년간(!) 즉,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2020년까지 전액 지원하겠다는 방안이다. 저출산 결과를 3년만 기다리면 된다는 이런 담대한(?) 정책은 상황이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 봐도 청년고용 대책이 될 것 같지 않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각종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달라고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다.
기업 살리기와 낙수 효과?
정부의 고용정책은 기업의 생산 활동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고용이 늘어난다는 일종의 낙수효과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고용의 질을 확대하고 기업의 활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질 높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노동생산성 향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에서 꼴찌 수준이다. 임금은 낮은데 노동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높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최하위 수준인데, 문자 그대로 임금이 낮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2) 이런 저렴한 인건비는 노동력의 가치가 낮은 것인데, 특히 서비스업에서는 임금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 그러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높여야 하는데 이것이 소득주도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성을 높여봐야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조삼모사와 같다. 왜냐하면 임금을 올리면 물가, 특히 서비스업종의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어 실질구매력이 상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활력을 높여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낙수 효과’가 한계에 도달한 것은 이제 누구나 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그것이다. 대기업의 고용여력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아래에서는 그게 정상이기도 하다.3)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 얘기되는 과정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노동력의 기계 대체는 임금의 하방압력을 더 강화시키기 때문에 실질임금의 상승을 꾀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든다.
이런 낙수효과의 전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일본이다. 일본은 각종 규제완화와 법인세 인하 등 기업 살리기에 나선 끝에 경기가 호조로 돌아서고 실업률이 완전고용을 의미하는 2%대 중반까지
하락했다. 기업이 활력을 보이면서 일자리는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상황까지 왔다.
그러나 이런 일본 경제와 고용상황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명목임금은 2009년 3.9% 하락한 이후 8년간(2010~17년) 연평균 0.1% 상승에 그치면서 명목 및 실질 임금 모두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본은 00~17년 중 여성 및 노년 임금근로자가 각각 464만 명, 284만 명 증가했는데 이 중 438만 명(94.4%) 및 240만 명(84.5%)이 비정규직이다. 또한 같은 기간 남성 임금근로자는 40만 명 증가에 그쳤는데 정규직이 266만 명 감소하고 비정규직이 305만 명 증가했다. 저출산·고령화 진전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여성, 노년층 등을 중심으로 고용이 증가하며 임금상승이 제약됐다.4)
그래도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것보다야 질 낮은 일자리라도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낫지 않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 상황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다. 확실한 것은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은 더 확산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20년 전 20대였던 프리터족은5) 이제 40대가 됐어도 여전히 비정규직과 프리터로 생활하고 있어 중년 프리터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이 계층은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없어 평생 불안정노동을 하며 지내야 한다. 뒤이은 현재의 청년세대도 이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자유를 확대해 기업 활력을 높이는 궁극적인 이유는 불안정 노동에 기반한 노동 착취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고용 문제
지금 상황에서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디지털 전환이 확대하면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은 고용의 질은 물론 고용량도 시간이 갈수록 하락한다. 결국 일자리는 서비스업이나 자영업 또는 독립생산자 쪽에서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최근의 일자리도 제조업의 퇴조 속에 저임금 서비스업과 고용안정성이 낮은 건설업(일용직), 영세 자영업자 등이 일자리 창출을 이끌었다.6)
넘쳐나는 자영업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고 있듯이, 서비스업도 디지털 전환에 따라 엄청난 구조조정을 거치며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지금의 국가 고용정책은 이 상황에서 어떤 방향과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의 문제다.
여기에 하나 더 고려되는 것이 자본의 저항이다. 일자리의 질을 강화하려 해도 기업의 이윤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노동비용을 축소하고 착취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려는 자본의 정치경제적 운동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력한 국가 고용보장 정책과 생산의 사회화와 연계된 고용 사회화 정책 없이는 고용문제에 대한 접근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자본 파업(!)으로 자본 활동의 규제를 완화하면 일시적으로 일자리가 넘칠지 몰라도 고용의 질은 계속 떨어져 평생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으로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완전 고용과 사회적 고용
케인스 이래로 자본주의 국가는 완전고용을 명목상의 목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완전고용은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로 실제 (고용이 아니라) 실업이야말로 국가의 고유한 고용정책이 됐다. 현재 자연실업률(완전고용률)은 3.6% 정도로 본다. 신자유주의의 원류인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이 자연실업률 개념도 애초 6%에서 시작했다. 고무줄과 같은 자연실업률은 경제상황에 대한 고려라기보다는 정치적 힘 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규정돼 왔다. 오히려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밑으로 떨어지면 억지 고용이 이뤄진 것이라며, 생산성 향상이 임금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7)
자본주의 경제에서 실업은 상존하는 것으로 자본은 문자 그대로의 완전한 고용을 원하지 않는다. 일정한 규모의 산업예비군은 임금(하방)압박의 원인을 제공하며 반대로 완전고용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은 더욱 강대한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8)
그러나 생산이 사회화되는 만큼 고용 또한 사회화된다. 사기업이 고용을 책임지는 시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조차 공공부문의 고용률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자영업과 독립생산자의 양산 속에 생산은 점점 더 사회적으로 조직되고(되어야 하고), 이를 방치할 경우 기업 구조조정보다 더 한 혼란과 무질서 속에 각자 도생의 길로 갈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사회적, 계획적 구조화와 이를 통한 일자리의 사회화가 가능해지고 있다.
국가 고용보장(job guaranteeing)과 고용의 사회화
국가의 고용보장은 현재의 고용문제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단초를 제공한다. 국가 고용보장은 첫째, 최저임금을 규율한다. 국가 고용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게 되면 누구나 그 일을 그만두고 국가가 제공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고용 일자리는 최저임금 그 이상에서 임금이 결정돼야 한다. 둘째, 사실상의 완전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완전고용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노동자의 정치적 힘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 고용보장은 다른 일자리의 노동자들까지 4대 보험의 테두리 안에 자리 잡게 만든다. 따라서 국가 고용보장과 기본 일자리(basic job)는 보편적 복지(Universal basic services)의 적용과 확대에도 가장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9)
또한, 공공부문의 국가투자로 사회적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다. 공공근로와 같은 단순 노무가 아니라 생산적 기반시설 투자와 사회 서비스 공급의 질적 확대 등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를 양산하고 운영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지역 커뮤니티와의 민주적 계획을 통해 지역 풀뿌리 정치를 확대해 나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 차원의 고용보장은 시장체제를 주도적으로 용인할 경우 정부 부채의 증가로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빌미로 국가의 노동시장 개입을 한계짓기도 한다. 따라서 국가의 고용보장은 단순히 예산과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시설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사회화와 연계된 가운데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하층계열화 된 한국경제의 구조를 재벌의 사회화를 통해 구조적으로 개혁하고 고용의 전국적, 사회적 배치를 가일층 진전시키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워커스 45호]
[각주]
1)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제3차 일자리위원회, 2017. 10. 18.
2) 2014년 기준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생산성은 OECD 평균 90.4인데 한국은 그 절반인 45.1에 그친다.
3) 취업유발계수는 1997년 대비 제조업은 67% 감소했고, 서비스업 26.1% 감소했다. 대기업 고용이 감소하는 것은 다른 말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4) 일본과 같이 저출산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로 청년고용이 확대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일자리의 질 자체도 좋지 못하다. ‘일본 임금상승 부진 원인과 시사점’, 해외경제포커스 제2018-15호, 한국은행, 2018.04.20.
5) 프리터족(Freeter; Free+Arbeit):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노동자 또는 이를 희망하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6)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제3차 일자리위원회, 2017. 10. 18.
7) Macleod는 1960년대 영국의 완전고용(실업률 1%대) 상황에서 줄어든 소득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보전하자 이를 영국병이라고 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만든다. 이후 밀턴 프리드먼도 똑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8) 일본의 최근 고용률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의 양산을 통해서 이뤄졌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계급적 힘이 약화한 가운데 존재한다. 일본 노동조합의 임단협 투쟁인 ‘춘투’ 이후에도 실질임금이 그다지 상승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9) https://www.independent.co.uk/news/business/news/universal-basic-servicesidea-better-basic-incomecitizens-social-housing-ucla7993476.html